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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택 Oct 15. 2020

추수 감사절에 드릴 것은?

산책의 시간 / 절기 002


  '추수 감사절'은 그리스도인들이 한 해 수고의 결정체인 곡식을 거둔 뒤에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1620년에 영국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다음 해 가을에 처음으로 거둔 곡식으로 감사제를 드린 데에서 유래하였다.




  대부분 도시에 사는 현대의 우리는, 그들처럼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거둘 곡식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면 수확으로 거둔 것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학생들의 수확물은 일 년 동안 배움을 통해 머릿속에 쌓인 지식과 지혜이고, 교사들은 바로 그 제자들이 그들의 수확물이다. 직장인들은 그들이 받은 월급이 수확물이다. 주부들은 가족의 편의와 건강, 그리고 행복한 얼굴이 그들의 수확물이다.


  이 모든 수확물은 우리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주어진 것 같지만, 실상은 그 속에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돌보시고 인도하신 주님의 손길이 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수확물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고, 오직 그 수확물의 주인공이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드려진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그런데 앞서 언급한 수확물 가운데 정작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바로 천하보다 귀한 우리의 생명이다. 예수님은 생명의 가치를 이렇게 매기셨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그러므로 우리의 손안에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생명이 유지되고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추수 감사절인 오늘 주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보다 더 놀랍게 감사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이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하여 주셨다는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이 세상 그 어떤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그것도 죄인인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주기 위하여, 친히 제물이 되어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을까? 도대체 이 세상에 이것보다 더 감사할 제목이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자신의 목숨을 우리에게 생명으로 주신 예수님 한 분 때문에라도 온전한 감사를 드릴 수 있다.




  주님이 우리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주셨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의 반응은 감사의 제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런 반응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최종적인 목적이 아니다. 우리가 그분 앞에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으면, 우리를 위하여 바치신 그분의 목숨은 헛수고가 되어 버린다. 그렇게 하는 것은 주님 앞에 정말 큰 죄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목숨이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우리는 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추수 감사절에는 그것을 주님 앞에 감사로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렇게 드려지는 추수 감사절보다 더 의미 있는 추수 감사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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