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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택 Oct 15. 2020

막달라 마리아의 기쁨

산책의 시간 / 소망 002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많이 있겠지만 일차적이고 궁극적인 것은 '기쁨'이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부재로 인해 막달라 마리아가 슬퍼하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요 20:11).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 그래서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한 마리아는, 빈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 속에는 슬픔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이런 그녀의 슬픔이 예수님의 부활로 기쁨으로 바뀌었다. 천사들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 주자 그녀는 크게 기뻐하였다. 큰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빨리 무덤을 떠나 숨 가쁘게 달음박질하기 시작하였다(마 28:8).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그 기쁨 안에는 주님에 대한 사랑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돌아올 때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싫어한다. 그 사람이 돌아올 때 기뻐하는 데에는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성경은 그분을 사랑하되 대충 하지 말고 모든 것을 걸고 사랑하라 말씀하고 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기는 쉬지 않다. 그런데 그것을 잴 수 있는 온도계가 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것이다. 기쁨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사랑의 온도도 올라간다. 반대로 기쁨이 없거나 슬픔이 크다면 사랑의 수은주는 영하로 내려간다. 이런 점 때문에 그분의 부활을 기뻐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것이 왜 또 중요할까? 그것을 기뻐할 때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주님의 부재는 우리가 의지할 곳이 없는 상활을 의미한다. 우리는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 어디에도 의지하거나 소원을 아뢸 수 없다. 하지만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그분이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지 그분을 의지할 수 있고, 또 우리의 소원도 아뢸 수 있다.


  자녀들이 부모를 기뻐하는 이유는 그 부모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부모가 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의지할 수 있고, 부모를 통해 소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과 풍성한 삶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내 주신 분이시다(요 10:10).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궁극적인 의지처가 되시고, 우리의 모든 소원을 아뢰고 소원대로 이룰 수 있게 해 주시는 유일한 주님이 되신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이 우리의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잘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힘(또는 활력) 있게 산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기력하게 사는 사람에게 잘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힘 있게 살 수 있는 근거는 예수님의 부활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분의 부활을 기뻐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강력한 힘이 된다. 예수님의 부활과 그 앞에서 반응하는 기쁨이 이런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 부활절에는 온전히 기쁨으로 반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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