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앙숙의 칼로 물 베기

유아 일기장 15

by 박준택


이슬이에게는 사촌 누나가 둘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 연년생 자매이지요.


이슬이와 큰누나인 현진이는 사이가 무척이나 우호적인데, 작은누나인 유진이와 서현이는 개와 원숭이처럼 영원한 앙숙입니다. 큰누나는 제가 보기에도 모든 면에서 이슬이 편에 서고 양보를 잘합니다. 그러나 받고만 자란 막둥이 작은누나는 결코 양보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 이슬이와 상을 찌푸리거나 쨍그랑거립니다.




한번은 우리 집 베란다에서 세 녀석이 머리를 맞대고 병원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큰누나는 의사, 작은누나는 간호사, 그리고 우리 이슬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환자 역할을 하고요.


“어서 오세요. 어디가 아프신가요?”

제법 의사 티를 내면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하는 큰누나.

“주사 놓습니다.”

연기력이 뛰어나서 가장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소화해 내는 작은누나. 그리고, 누나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덩이를 발랑 까는 이슬이. 여기까지는 잘 돌아갑니다.


그런데, 간호사인 유진이가 주사를 놓는 시늉을 하자마자 이슬이가 갑자기 일어나 유진이를 퍽 치는 게 아이겠습니까.

“너무 아프잖아!”

황당하게 얻어맞은 유진이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병원 놀이하면서 아프다고 간호사를 때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

곧 서부 활극이 벌어집니다. 급기야 유진이는 이렇게 소리 지르고는 현관문을 꽝 닫고 나가 버립니다.

“죽어도 너랑은 안 놀아!”




병원놀이는 싱겁게 끝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현진이랑 이슬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로운 놀이를 시작합니다. 블록 쌓기를 사이좋게 하고 있습니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요? 살짝 문을 여는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화를 버럭 내면서 나간 유진이가 빼꼼히 머리를 내밉니다.

“왜? 죽어도 이슬이랑은 안 놀고 이모 집에 안 온다더니?”

제가 살살 약을 올리자, 머쓱해진 유진이는 딴청을 부리면서 텔레비전 쪽으로 가더니 텔레비전을 켭니다.


저녁밥을 짓다가 요 녀석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싶어, 셋이 모여 있는 베란다에 가 보았습니다. 세 녀석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시시덕거리며 놀고 있네요. 앙숙이 되어 하얀 이빨을 사납게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던 녀석들이 다투던 일을 다 잊고 말입니다.


부부 싸움이 칼로 물 베기인 것처럼, 형제 싸움도 칼로 물 베기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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