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까

유아 일기장 19

by 박준택


얼마 전 시댁이 있는 목포에 가서 우리 이슬이는 대히트를 날렸습니다. 애교 백 단의 실력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을 너무나 흡족하게 해 드렸으니까요. 모두 사전에 철저히 훈련한 결과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서울로 돌아와서 또 시작되었습니다. 목포에서는 그렇게 말도 잘 듣고 똥오줌도 잘 가리던 녀석이, 방심하고 훈련을 게을리하였더니 말도 잘 안 듣고 응가와 쉬를 가리지 않고 아무 데서나 시도 때도 없이 합니다. 다시 기저귀를 채워 주겠다고 하니까, 만 이 년 조금 넘은 녀석이 싫다고 난리를 칩니다. 옷도 자신이 좋아하는 파란색 옷만 입겠다고 우기면서 고집으로 날을 세웁니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이웃집 손님이 찾아오실 때, 녀석은 엄마가 자신을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는 상황을 파악하고 더욱 말썽부리고 고집 피워서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손을 써야 할지 몰라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저는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이슬이의 이런 문제를 두고 하소연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보, 대체 애가 왜 이러는 거예요?”

그러자 남편은 나의 마음을 헤아리고 두둔하기는커녕 딱 세 음절로 제 입을 막아 버리네요.

“애니까!”


저는 남편의 말이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 다시 날을 세웠습니다.

“아니, 그렇게 얘기하면 어떡해요? 당신은 이슬이 문제가 아무렇지도 않아요?”

남편은 흥분하고 있는 저를 진정시키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문제라면 조금 빠르고 늦고 하는 것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이슬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이로서 지극히 정상이라는 표시예요.”


남편의 말에 흥분이 채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 말도 없더군요.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의 정상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눈높이로 재단하면서 조금 더 기다려주지 못한 저의 모습이 클로즈업되기도 하고요.


이윽고 남편이 이렇게 마무리하네요.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가 성장하지만, 부모인 우리도 성장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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