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의 시간 / 믿음 005
마가복음 5장에는 12년간 혈루증으로 앓아 온 여인이 나온다. 그녀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며 고생하였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로 인해 가진 것을 모두 허비하였고, 증상은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하였다.
‘혈루증’은 ‘피의 유출’을 뜻하는 것으로, 보통 월경과 관계없이 자궁에서 불규칙적으로 피를 흘리는 ‘만성 자궁 출혈병’을 말한다. 구약 시대뿐만 아니라 예수님 당시에도 혈루증에 걸리면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종교 생활뿐만 아니라 여타 사회적 활동에도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12년 동안이나 계속된 증상이 점점 더 심해졌다는 것은, 그 병이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치병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녀는 절망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한 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그녀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그 소문을 듣고 달려왔지만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댔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자신의 문제를 아뢰고, 그분으로부터 직접 병 고침 받았다는 말씀을 듣거나 그분이 따스한 손길로 자신의 병을 만져 주시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 것을 바라기에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다만 그분의 옷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였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소망은 소박하고 겸손하기 그지없는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동시에 그렇게 소박한 소망 속에서 무엇보다 큰 그녀의 믿음을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장애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리는 간절한 믿음도 볼 수 있다. 비록 큰 믿음을 가지고 달려왔지만, 예수님께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기도 하였다. 그녀가 앓아 온 혈루병은, 유대 사회에서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고, 혈루병에 걸린 사람과 접촉한 사람도 부정하게 되므로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어야만 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정한 중에 죽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레 15:25-31).
만약 수많은 사람이 그녀의 질병을 알게 되면, 자신들이 부정하게 될 것이 두렵고 귀찮아서 그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돌을 던질 것이다. 그 많은 무리가 그렇게 돌을 던지면 중상을 입을 것이 빤하고,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무리 가운데 끼어 예수님의 뒤까지 온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그 병에서 낫는 것이 그렇게 맞아 죽는 것보다 낫겠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믿음은 죽음을 넘어설 정도로 그토록 간절하였다.
혈루증으로 앓아 온 여인의 믿음과 비교할 때, 오늘 우리의 믿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녀처럼 소박하지만 큰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 그 어떤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옷이라도 만지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 애석하게도 오늘 우리는 이 두 가지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