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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택 Nov 02. 2020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산책의 시간 / 믿음 007


  두로’(Tyre)는 갈릴리 북서쪽 64km 지점에 있는, 레바논 남부 지역의 해안 도시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페니키아의 연맹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예수님은 그곳에 있는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머물기 원하셨지만, 그 사실을 숨길 수 없었다. 그 소문이 두로 지방에 퍼졌고,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여인의 귀에도 그 소문이 들렸다. 그녀는 헬라인이자 수로보니게 족속이었다. ‘수로보니게’는 ‘수로’ 지방의 ‘보니게’라는 뜻으로, ‘시리아’(Syria)에 속한 ‘페니키아’(Phoenicia) 지방을 말한다. 한 마디로 이방 여인이었다.




  그녀는 소문을 듣자마자 즉시 달려와서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간구하였다. 그 간청에 예수님은 싸늘하게 말씀하셨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 7:27). 평소 같으면 불쌍히 여기면서 흔쾌히 병을 고쳐주셨을 예수님은, 예상을 깨고 그녀의 간청을 거절하셨을 뿐만 아니라, 개 취급하듯 대하셨다. 비록 그 이면에는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었지만, 그녀가 받았을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무리가 에워싸서 밀고 들어갈 틈이 없다 해도 애써 노력하면 그 틈을 헤집고 들어갈 수 있다. 사람들이 비난해도 그것을 한 귀로 흘려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정작 구원을 베푸실 주님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해 버리시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개 취급하듯 모멸감까지 안겨주면서 거절하시면, 한 가닥 남아 있던 소원도 사그라들고 맥이 풀려버린다. 상황이 그 정도에 이르면 자신을 그렇게 대하신 주님께 욕이라도 한바탕 내뱉고 소금을 뿌리면서 돌아설 만도 하다.




  그런데도 그녀의 믿음은 한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여, 옳습니다”라고 인정한 후에, “그렇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하였다. ‘옳습니다’라는 말은 주님이 유대인의 특수한 권리를 우선시하신 것에 대한 인정이다. 하지만 ‘그렇지만’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주님의 은혜에서 제외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즉 “상 아래 있는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는 말을 통해, 그것이 왜 그런지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런 점에서 그녀가 가졌던 믿음은 불굴의 믿음이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불굴의 믿음’은 주님 앞에서 그냥 생짜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불굴의 믿음’은 주님의 생각과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그분의 뜻대로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구하는 것을 말한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바로 그렇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녀가 비록 이방인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느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보다 더 정확하게 예수님을 알고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의 뜻은 유대인들의 생각처럼 그들만 구원받는 데 있지 않다. 주님은 유대인들을 넘어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주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속에 그 뜻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영생은 유대인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분을 믿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사실에 기대어 불굴의 믿음을 구사하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 믿음으로 자기 딸에게서 귀신이 나가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였다. 이제는 우리가 그런 믿음을 구사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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