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曺選
대한민국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관념적 위기의 핵심은 바로 ‘인생철학의 부재’에 있다. 인생철학이 빈약해지면 시대정신도 희미해지고, 이 공백을 물질만능주의·외모지상주의·집단주의 같은 왜곡된 가치관이 메운다. 이 세 가지 가치관은 ‘무한 비교’를 불러와, 개인은 불행해질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갈등과 혼란에 빠진다.
인생철학의 부재의 근본 원인은 대한민국 교육제도에 있다. 그러나 교육제도 하나로만 탓할 수는 없다. 중등교육에서 고등교육, 다시 취업으로 이어지는 최소 16년의 사이클 전체를 살펴봐야 한다.
학창 시절 내내 우리는 자아 성찰에 대한 기회를 빼앗긴다. 중등교육은 오로지 수능 점수 향상을 목표로, 고등교육은 기업 입사를 위한 스펙 쌓기에 매진하도록 만든다. 이들에 매여 사는 동안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어떤 직업이 나의 자아실현에 가장 적합할까?"라는 질문을 던질 여유는 물리적으로 사라진다.
다음으로 경쟁 통로가 오로지 성적이라는 획일화된 잣대로만 좁혀진 구조가 문제다. 예체능·창업·봉사활동 등 다양한 재능은 평가 절하되면서 진로 선택 폭은 극도로 제한된다. 그 결과 초·중·고 내내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고, 대학과 직장에서도 학점과 승진만이 강조된다. 특히 전문직과 대기업 그리고 인플루언서가 안정된 성공의 대명사로 자리 잡으면서, 이 분야에 인재가 과도하게 몰리고 있다. 또한 이 안에서도 연봉과 지위를 비교하며 갈등이 격화된다.
이처럼 자아 성찰 시기와 다양한 경쟁 창구의 부재 속, 사람들은 철학의 공백을 물질·지위·외모 같은 외형적 요소로 자신을 인정받으려 든다. 성적을 잘 받아 많은 돈을 벌고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 성공의 전부가 되면서, 그 외의 도덕성·성실함·공동체주의·가치관 등의 무형적 요소들이 무시된다.
특히 외모지상주의는 단순한 자기 관리에서 끝나지 않고, 물질과 지위를 초월하여 타인에 대한 비방을 정당화하는 도구로까지 변질된다. “전문직이면 뭐 하나, 외모가 받쳐주지 않으면 퐁퐁남이다”, “헬스 안 하면 에겐남이다”라는 조롱이 일상화되며, 사회적 연대는 금세 무너지고 불신만 커진다.
또한 정해진 성공 공식에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한 이들은 일찍이 공공부문으로 몰린다. 능력은 있지만 철학의 부재자들에게 공공부문은 그나마 숨통을 터주는 안식처로 보인다. 그러나 공공과 민간 간 조직 문화·연봉 차이 및 비교로 인해 이탈과 재유입이 반복된다. 소수의 경쟁 통로에서 탈락한 청년들은 철학 없이 표류하며 실망실업자로 전락하고, 청년 실업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제 교육제도의 초점은 사회적 직업 교육뿐 아니라, 개인적 적성 탐색에 맞춰져야 한다. 그리고 학생 개개인의 인생철학을 설계하는 것에 초점이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강점과 흥미를 발견해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고 달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그 길에 귀천이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모든 영역의 성취가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교육 혁신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수능을 공정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양적 성장기를 이미 마쳤고, 이제 질적 성장에 집중할 때다. 질적 성장의 핵심은 개개인의 개성과 스토리에 있다. 이를 위해 미래세대가 조기에 자신의 인생철학을 세우고 다듬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즉 우리의 교육제도는 점진적이라도 철학을 제공하는 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본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인생철학을 곁에 두고 고민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