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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여진 Jan 09. 2019

영화 '엽기적인 그녀'


칼럼 하나를 읽고, 그곳에 있는 스틸 이미지가 영화 '엽기적인 그녀'길래 당장 찾아서 감상했다.  칼럼은 소심인과 대범인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고, 이 영화를 보면 내가 둘 중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냥 전지현이랑 차태현 둘 다 매력이 넘쳤다. 이분법적으로 누구라고 결정지을, 나눌 필요가 없겠더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녀와 견우가 다시 만나는 장면이 나의 대범과 소심 또한 저렇게 섞여 있는 문제라고 충분히 말해준다.


다만 칼럼에서 나온 소심인의 고귀함에 대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젊은 시절, 나는 스스로 만든 관계의 틀을 상대에게 선물했다.
이것은 꽤나 훌륭하고 견고했기 때문에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상황들은 배척하고 혼자 해결하려 노력했다.



내가 만든 '우리'의 '고귀함'을 호소했다.
이 완벽한 세계에서 왜 이 작은 규칙조차 지키지 못하고 망가뜨렸냐고 몰아붙였다.



그런데 돌아보니 착각이었다.



그저 내 것이었을뿐, 견고한 만큼 부담스러운 요새였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추억의 조각들은 상대를 가늠하는 단서가 되었다.
그것들을 무기 삼고 말았다.


개인적으로 고귀함이란 표현에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중요시 여김과 동시에 어쩌면 허영심도 들어가 있는 표현.


나는 알게 모르게 내 논리 체계 속 고귀함을 꾸준히 지켜왔는데, 당연하게도 그는 수많은 허영심, 이기심, 사랑, 배려를 내포하고 있었다. 다시 강조하자면 '내' 논리 체계 속에서.


칼럼 속 글쓴이는 상대라는 인물 자체가 지난 세월 동안 면밀하게 구축한 법칙이나 논리를 채워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과, 나, 너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난 아직 그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했으며, 못할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객관적으로 쓴 소리를 해주고 아니면 오히려 토닥거려주는 사람들에게의 감사함과. 당신들의 고귀함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우리의 배려와. 그리고 고귀함끼리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 솔직함을 가져야겠다는 약속 혹은 다짐을 해보려 한다.


+) 이 문제로 상당히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대부분 그렇지 않겠냐는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괜한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참 위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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