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여진 Jan 09. 2019

책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2018년 7월 27일 자 둥근달과 함께


우연찮게 선물 받은 책 덕분에,

정말 우연찮게 나의 문제들을 가림막 없이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1.

나는 불안해하지 않고, 나의 짐 또한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간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2.

그 이유는 참 장황하다. 내가 현재를 살아가지 않고 극단적인 미래, 부재(不在)를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언제까지나 내 트라우마라고 '여겨지는' 순간들과 감정들로 인해 과거에 묶여 산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나에게 특별성을 부여하고, 모든 불리한 상황을 합리화시키기에 딱 적당한 정도로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내 자존감을 끌어올리기에는 나름 나쁘지 않은 결론이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더 심해져서, 더욱 불행하게도 나는 과거뿐 아니라 극단적인 미래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3.

텍스트로 이해하자면, 나 또한 손찌검을 할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이 완벽히 맞았다고는 할 수 없다. '나 또한'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 앞에서 떠날 것이라고, 나만의 티베트로 갈 것이라고, 극단적인 미래에 머물면서 그들에게 내 안의 불안을 옮겨 붙였다. 그게 옳은 것이라고 합리화하면서.


다시 말해 내가 경멸하는 트라우마적 요소들을 닮지 않겠다고 주야장천 말하면서, 모순적으로 트라우마를 무기로 상대방들에게 오히려 불안정함을 당당하게 선사했다. 미래에도 이런 태도를 바꾸지 않고 살아갈 것이라는 못난 오기였는지도 모르겠다(사소한 것들 포함).


비겁한, 어쩌면 당연한 변명을 하자면 이건 -텍스트 상에 나타나는 단어를 사용하여- '아버지의 영향'과 '나의 나약함'의 복합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한 문제의 영역인지 경계를 구분 짓기가 어렵다는 것.



4.

아무튼 어떤 이유든 간에 이 문제는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모든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도 타파해야 할 걱정거리이다. 걱정거리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정해져 있지 않을까 싶다.


'언어는 많이 말하거나 힘주어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실천하는 행동. 이미 둘 다 지금은 실패한 것 같지만, 상대방은 물론 나에게 꼭, 꼭 필요한 방법이다.


꾸미거나 덧붙임 없이 그대로를 전달하고 이해하는 것. 그 이상으로 화제를 크게 만들지 않고, 내 트라우마로 끌고 가지 않는 것. 생각은 하되, 상념은 하지 않는 것. 미사여구(정보량에 변화를 주지 않는)를 빼고 진실하고 동시 같은 대화를 주고받을 것.



5.

길어졌지만, 결론은 물리적, 신체적이 아닌 내 세계, 내면의 빛을 무시하지 말고 존중하기 위해 좀 더 성숙한 내가 되었으면 한다. 이 빛이 건강해져서, 사랑을 받기보다 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것이 있을까 싶다.


6.

트라우마 얘기하면서 내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반응을 얻은 적이 있다. 이에 놀라기도 했고 감동받기도 했다. 어찌 됐든 서로 솔직하게, 하지만 힘주지 않고 소통해가며 맞춰갈 수 있는 문제라고 여겨주니 내가 인복 하나는 많구나 느꼈다.


7.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를 위해 현재 나의 관계들을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내가 좋은 사람, 예쁜 사람이 되겠다고. 비약일 수 있지만 이미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난 관계들을 지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관계의 인문학

작가의 이전글 영화 '엽기적인 그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