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정말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 어렴풋이 직감하는 일에 대해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말해보는 것.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는 약속을 한 게 아니라 약속이라는 위로를 주고받았던 것 같다.
절규와 같던 엄마의 마지막 울음소리, 몸이 쓰러질 때 전해지던 대지의 떨림. 아스라이 저 먼 곳 어딘가에 닿아있던 엄마의 시선, 비어있는 눈동자. 그 눈동자 속 신비로운 빛이 꺼지던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떠나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렇다고 엄마를 지켜내지도 못했다. 엄마의 주름진 눈가에 맺힌 눈물이 눈이 감기면서 후드득 떨어졌다. 마치 그렇게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는 듯 아주 가만히. 그렇게 감긴 눈은 다시 떠지지 않았고 나는 나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했던 그 순간부터 엄마가 이 끝을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굶주린 자연은 썩은 냄새를 풍기며 엄마를 삼켜갔다. 들끓는 벌레들, 고깃덩어리를 노리는 각종 새와 동물들… 두꺼운 피부가 찢기고 뱃가죽부터 파헤쳐지기 시작해 엄마의 몸 곳곳이 파 먹혔다. 엄마의 세계는 사라져갔다. 아니 더 큰 세계로,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엄마였다.
형체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나는 어느새 엄마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옆에 홀로 남겨졌다. 완전히 버려져 누구의 기억 속에도 남지 않을 장면, 나만이 기억할 장면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끝까지 눈에 담아두는 것. 엄마의 마지막 살점 하나가 발라질 때까지 그 곁을 지키는 것. 며칠이나 그렇게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건 뼈를 발라 먹던 들짐승의 탐욕스러운 눈빛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눈을 떴다. 이 센터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동물들이 모여 있다. 구조된 동물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그들이 낯설진 않다.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니까. 우리는 매일 자신을 닮은 눈을 본다.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서로의 시선을 피하는 까닭은 다름 아닌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기 위해서이다. 이야기를 나누거나 대화하지 않는다. 얼마큼의 시간이 흐른대도 끔찍한 기억과 상실을 마주할 용기는 생기지 않을 테니까. 슬픔을 다 헤아리기에 이번 생은 부족할 거니까. 서로에게 약속이나 위로 따위를 섣불리 건네지 않는 것이 우리의 최선이라 믿는다.
회복할 수 있을까.
돌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곳에선 그 어떤 것도 알 수가 없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조차. 나에게 시간의 감각이란 흙의 따뜻한 촉감과 초원의 색깔이다. 혹은 계절에 따라 변하는 햇빛의 냄새와 바람의 온도.
주변의 모든 것이 생경해 나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한없이 아득해진다.
사람들이 다가온다. 개구진 표정의 남자아이와 아이의 부모. 나를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가이드가 설명한다.
“아주 귀여운 수컷 코끼리이죠? 지금은 건강하지만 어릴 적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코끼리랍니다. 엄마 코끼리의 사체가 썩어가는데도 며칠 동안 그 옆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목숨이 위험한 상황까지 이르렀었거든요. 다행히 마을 주민의 제보로 구조되어 이곳으로 옮겨졌고 무럭무럭 자라 이제는 성체에 가까워졌답니다.”
“아기 코끼리가 너무 불쌍해요… 그런데 참, 상아는 왜 없는 거예요? 학교에서 배웠어요, 수컷 코끼리는 멋진 상아를 가진다고요!”
“코끼리를 좋아하는 친구로군요? 좋은 질문이에요. 혹시 날 때부터 상아가 없는 채로 태어나는 수컷 코끼리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 들어보았을까요?”
“아뇨, 그게 무슨 이야기예요?”
“상아 밀렵꾼들이 많아져 일종의 진화와 변이가 나타난 건데요. 그러니까 상아가 없는 채로 태어나는 편이 생존에 유리해졌다는 것이에요. 이 코끼리도 그런 경우고요. 사실 일반적으로 단기간에 관찰하기는 어려운 일인데…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죠. 슬픈 현상이에요.”
아니, 그런 말은 나를 설명하는 게 아니다. 내가 겪은 일을 나의 이야기를 고작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아빠의 상아를 떠올린다. 언젠가 돋아날 나의 상아를 떠올려본다. 희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