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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실 Jan 26. 2024

호박 폭탄

희미한 상아 4

 차가운 물줄기가 얼굴로 쏟아졌다.

 “에텔라, 제발.”

 뭐지…….

 “정신을 좀 차려봐”

 이건…

 “에텔라, 에텔라.”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내뿜어주는 물줄기.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눈을 살며시 뜨자 걱정스러운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꿈인 걸까. 나를 내려다보는 엄마의 얼굴 뒤로 파랗게 맑은 하늘과 눈 부신 햇빛이 보였다. 어디에선가 물 흐르는 소리도 들려오는 듯했다.

 “엄마…”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투명한 물이 흐르는 개울, 개울가를 따라 자란 풀이 있었다. 꿈만 같은 장면이었다.

 “정신이 좀 드니?”

 “엄마, 여기가 대체 어디예요?”     

 의식을 회복한 나는 흥분하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동안의 갈증과 허기를 채우니 기력은 금세 회복되었다. 반면 엄마는 주변을 경계하며 나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어서 드셔보세요, 엄마. 정말 싱싱하고 맛있어요.”

 재촉하는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주린 배를 조금 채웠지만, 자신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이내 쓴웃음을 지어 보이는 엄마였다.

 “정말 다행이에요, 엄마. 이제 걱정 없겠어요.” 안도하는 나의 말에도 엄마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따지고 보자면 이상한 부분이 있긴 했다. 바로 이 근처에서 수일을 배회했는데 왜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인지. 그저 엄마가 이끄는 대로 따라다닐 뿐인 나는 알 길이 없지만, 원래의 우리 서식지에서부터 반나절 정도 거리인 이곳을 엄마가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을 떨쳐냈다. 의심보다는 기쁨이 훨씬 컸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희망이 샘솟았다. 다른 건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엄마와 내가 무사하니까.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마주하게 된 희망에 나의 눈은 가려졌다.     

 싱그러운 풀들 사이 고운 흙에 몸을 뒹굴었다. 이게 정말 얼마 만의 진흙 목욕인지.

 “에텔라, 주변을 좀 더 둘러보자꾸나.” 엄마의 말씀에도 나는 여전히 흙에 뒹굴며 “네~ 둘러보세요!”라고 밝게 답했다.

 “같이 따라와야지.” 엄마가 다시 말했다.

 “엄마, 전 여기 좀 더 있고 싶어요. 다녀오세요, 얌전히 있을게요!” 엄마는 그런 나를 그저 가만히 눈에 담고 있었다.

 진흙 목욕을 하고 있으니 바타카 아저씨 생각이 났다. 아저씨와의 진흙 놀이가 가장 재밌었지. 어디에 계신 걸까, 함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일 아빠도 생각했다. 쓰레기인 줄을 알면서도 먹는 것을 멈추지 못하던 아빠의 모습, 잘려버린 상아, 거대한 회색 동산과 죽음의 땅…

 너무 많은 일이 지난 며칠 새 한꺼번에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양쪽으로 펼쳐진 드넓은 초원. 정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우와…”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길을 떠나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엄마는 어쩐지 담담한 표정이었다.

 “에텔라, 전부 설명해 줄 수는 없지만 서식지를 이동할 때 원래 이쪽 방향으로는 오지 않는 것이 원칙이란다. 하지만 오늘 아침 정신을 잃은 너를 발견했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역시. 엄마는 이곳을 알고 있었던 거였다.

 “궁지에 몰리니 가릴 게 없더구나. 그래, 바타카도 어쩌면…” 순간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눈이 흔들렸다.

 “엄마, 바타카 아저씨에 대해 알고 계신 게 있는 거예요?”

 “…에텔라, 너를 위험에 빠뜨릴 일은 절대 만들지 않을 거다. 엄마가 지켜줄 거라고 했던 약속 기억하지?” 엄마는 나의 말은 못 들은 척 말을 이었다.

 “너도 한 가지만 약속해 주겠니?”

 “왜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엄마. 바타카 아저씨 이야기는 또 뭐고요…”

 엄마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았다.

 “약속해 주렴. 어떤 상황에서도 엄마 말을 잘 듣겠다고.”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나를 바로 응시하는 엄마의 깊은 눈을 보았을 때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걸어갈수록 주변 곳곳에 먹을거리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어떤 울타리까지 이르렀다.  어떤 경계를 상징하는 그곳에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너머로는 가지런히 정렬된 채소와 과일들을 있었고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호박이었다. 탐스러운 둥근 호박은 황금빛을 뽐내고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자태에 군침이 돌았다. 얼마나 넋을 놓고 바라보았을까, 문득 호박 근처로 시선을 옮겼고 내팽겨쳐져 있는 그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눈을 의심케 만든 것은 한때 우리 중 누군가였다. 그러니까 끔찍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몰골, 아니 몰골이라고 할 게 없던 처참한 광경이었다. “저게 대체…….”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쳐다보는데 속이 뒤틀려왔다. 방금까지 신나게 먹었던 것들이 모조리 올라와 구역질이 났다. 그러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거둘 수 없었다.

 "에텔라, 돌아가자." 그렇게 말하는 엄마는 내가 볼 수 없는 저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그렇게 큰 목소리의 엄마는 처음이었다. 다그치는 엄마의 말에도 나는 꼼짝할 수 없어 그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엄마, 저기에…" 홀린 듯 울타리 쪽으로 다가갔다. 눈도, 코도, 입도 없지만 어딘지 익숙한 모습… 엄마는 그런 나를 막아섰고 그 순간 엄마의 오른쪽 몸통이 울타리에 스치는 듯했다. 치지직, 무언가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엄마의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내 중심을 잃고 쿵.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엄마!"          




 “제대로 걸린 것 같지가 않은데?”

 “그러게 울타리에 전압을 좀 더 올려야 할까 봐.”

 “총은 챙긴 거지?”

 “물론이지. 흥분해서 날뛰기라도 하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그래. 그나저나 저것도 오늘 중으론 얼른 치우자고.”

 “그렇게 합세. 실은 요 며칠 보기가 힘들었어.”

 “뭐, 치우는 것도 다 일이라.”

 “……”

 “…”

 “…근데 저, 기발하긴 한데 사실 좀 잔인하다고. 호박에 폭탄을 심어놓다니…”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호박 한입 베어 물었다고 얼굴이 쾅. …통째로 저렇게 날아가 버리니 원.”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고? 곡식을 꺼내러 창고에 갔다가 코끼리 습격에 앞집 부인이 죽은 게 지난주 일이었어. 벌써 잊은 거야? 엊그제는 달려오는 코끼리를 피하다 옆집 아이가 도랑에 빠져 죽었다고.”

 “……”

 “피땀 흘려 일군 일 년 농사를 망치는 건 또 어떻고? 배 곯아 죽어가는 사람이 지금 당장 우리 집에도 한두 명이 아니야. 언제까지 남의 일일 것 같아?”

 “…진정하라고. 그런 말이 아니라…”

 “생존이 달린 문제야.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내가 죽는 거라고.”

 “그래, 내가 잘못 말했네. 그런데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사실 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 아니겠나? 공항 개발이다 뭐다 하면서 초원을 싹 밀어버리니 코끼리들이 계속 내려오는 거지. 저쪽 쓰레기장 최근에 가본 적 있나? 정 먹을 게 없으니 세상에 코끼리가 이제는 그걸 먹고 있더라니까. 썩은 내가 진동해. 우리뿐이 아니라 이 땅이 이제 끝난 거라고.”


 웅성웅성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두 남자가 보였다.

 “에텔라…” 엄마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엄마는 여전히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 나는 쓰러진 엄마 옆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였다.

 남자들 쪽을 힐끔대던 나는 끝내 보고 말았다. 저 흰색 반점은…

 “바타카 아저씨…?” 얼굴이 없던 끔찍하고 처참한 사체, 사체의 오른쪽 앞발, 흰색 반점… 그 반점의 모양은 내가 너무 잘 아는 것이었다.

 “에텔라……”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정말 보고 싶었는데.

 “에텔라…” 보고 싶던 얼굴인데 얼굴이 없었다. 그건 바타카 아저씨가 아닌 바타카 아저씨였다. 머리가 새하얬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에텔라!” 엄마는 얼마나 나를 불렀던 걸까. 나는 그제야 엄마 쪽을 바라보았다.

 “엄마…? 엄마, 정신이 좀 들어요?”

 “에텔라, 엄마 말 똑똑이 들어.” 힘주어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있는 힘껏 뛰어야 해. 뒤돌아보지 말고, 엄마가 그만 뛰라고 할 때까지 말이야. 앞만 보고 뛰는 거야. 할 수 있지?”

 “…엄마, 그런데 저기 바타카 아저씨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 것인지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몸을 일으킨 엄마는 나를 아주 거칠게 떠밀었다. 나는 서러움에 눈물만 쏟아졌다.

 “약속을 지켜야지.” 그때 엄마가 말한 약속이란 자신이 했던 약속이었을까, 내가 했던 약속이었을까.

 탕,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났다.

 “싫어요싫다고요…”

 탕! 더 큰 소리가 엄마의 몸에 깊이 꽂혔다. 우리의 약속이 깨지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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