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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Jul 15. 2024

패셔니스트

딸 같은 아들

  어렸을 때부터 기호(記號)에 대한 인지와 습득력이 뛰어나서 한글을 읽고 쓰는 능력과 문자에 대한 해독력이 탁월합니다. 또 언어소통에 있어서는 언어 구사력이 또래 아이보다 우수하여.. 어른과의 대화에 있어서도 무리 없는 의사교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래 언어학자 또는 문학가로서 대성(大成)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원이는 아무래도 누나에 비해서 말이 좀 느리고, 기호에 대한 인지력도 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공간지각력이나 상황 분석력, 위기 대처능력, 위험에 대한 감지......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섬세한 관찰력이 가끔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감기 기침 때문에 찬물을 먹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며.. 3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찬 것을 입에 대지 아니하며......, 외출할 때에는 모자를 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여름이 지나도록 반드시 모자를 쓰고 외출하며......, 지하철 역사 안에서는 모든 위험 요소로부터 자신을 방어하여 철로변은 아빠가, 자기는 안쪽에서 걸어야 하며......,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은 절대 안 됨', 의사 선생님이 "찬 것을 먹지 말라"라고 했으니까...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때를 쓰는 누나를 호령하며.. "누나는 아토피잖아! 아이스크림 먹으면 안 돼!"라고 일침을 가하여 그 기선을 꺾을 줄 알며...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절대 차도로 다니지 않고 인도로 가고, 찻길로 방황하는 누나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나타내며 그 길을 돌이키게 하고......, 엄마 차의 작은 접촉사고에도 "빨리 달리니까 부딪혔다"라고 조심해서 운전할 것을 어머니게 충언하여 경각심을 갖도록 엄히 다스리며......, 항상 몸가짐이 바르도록 자신을 돌아보는 바......, 역시 성원이는 '심지가 견고한 자'로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자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성원아..!  바지에 오줌 좀 싸지마...!
  2004년 7월 2일의 성장일기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우리 아들은 털모자를 쓰고 나갑니다. '빼션'때문이죠. 신발장에서 우리 아들 신발만 족히 열대여섯 켤레는 보이는 데 신발이 없어서 하나 구매해야겠다고 살살 엄마 아빠 눈치를 봅니다. '빼션'때문에 깔맞춤이 필요한가 봅니다. 퇴근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에 도착하면 한 무더기 택배가 와 있네요. 우리 아들이 만원도 안 되는 싼 티셔츠를 구매했으니 잔소리 안 했으면 하고 가족 카톡방에 사전 공지한 그 물건 같습니다. '빼션'때문에 안에 받쳐 입을 옷이 필요했나 봅니다. 어젠 '저녁때 아내와 다이소나 한번 가 볼까?' 했다가 피곤해서 다음에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 아들 방에 '액세서리 걸이'가 필요할 것 같아서 하나 사 주려고 했죠. 드러머라서 그런지 이해 안 되는 액세서리를 자주 착용합니다. 이게 다 '빼션'때문이죠.


  어릴 때는 아들이 나를 닮아 차분하고, 내향적인 성격이고, 큰 딸이 엄마를 닮아 쾌활한 성격에 덤벙거리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아이들의 성격이 정반대로 바뀌어 있습니다. 딸은 아빠를, 아들은 엄마를 닮았네요. 유전자의 힘이란...... 대단합니다. '딸 같은' 아들 탓에 함께 있으면 집안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살갑고, 정 많고, 친구 많고, 말 많고......ㅎㅎ


  어느 날 가족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아들이 한마디 합니다.

"내가 생각할 때 엄마한테 있어서 아빠는 최고의 남편인 거 같아!"
"왜?"
"술 안 마시지...... 담배 안 피지...... 친... 구... 없지...... ㅋㅋㅋ "


  유쾌 발랄한 아들덕에 나중에 손주 볼 때까지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빠가 요즘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야! 아빠 때랑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촌스럽게'하고 다니면 '인싸'가 못돼! 아빠가 청년시절에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는지 몰라도 지금은 틀리거든..." 하면서 일장 연설을 하고, 아빠 옷매무새를 고쳐주거나 약간의 코디로 아빠의 '촌스러움'에 지적질을 하곤 하죠. 저도 한마디 합니다. 으로 '그래 너 잘났다!'


  1989년 마광수 교수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자유문학사)"가 출간되고,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죠. 쾌락주의와 여성 상품화를 거론하며 문인, 교수, 종교계 등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으니 아마 '80년대를 함께했던 사람이라면 당시 사회 분위기를 이해하실 것 같습니다. 내용의 모든 것을 거두절미하고 당시 제가 이해했던 책 내용의 골자는 '자유로움'이 아니었나 합니다. 어느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감정이라는 '은밀함'을 세상에 끄집어내고자 했던 일종의 '도전'처럼 여겼습니다. 양자역학의 '슈뢰딩거 고양이' 실험처럼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지라 '열기 전' '열어본 후'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함정일 수 있겠지만 제 안에도 분명 '빼션'에 대한 욕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도 노랗게 혹은 빨갛게 해보고 싶은 때도 있으니까요. ㅋㅋ 실현되진 않겠지만....


  제 이름의 이니셜은 'HIP'입니다. 고등학교 때 이니셜로 싸인을 만들려고 알파벳 첫 글자를 따왔더니 '어라! 엉덩이(힙)네!' 이런 난감한 일이..... 있을까요? 영어사전을 펼쳐 보았습니다. 형용사로 '유행에 밝은'이라는  두 번째 뜻이 있네요.  'very popular or fashionable' 아하! 패셔너블! 제 이름의 이니셜은 '패셔너블'하기까지 합니다.  


아들! 잘 들어!

아빤 이래 봬도 힙(hip)한 사람이거든!

  주 : '빼션'은 '패션 Fashion'을 지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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