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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Jul 30. 2024

바티칸에서 판테온까지

로마 신혼 여행기

 30여 년 전에 '로마 신혼 여행기'를 썼습니다. 먼지 툴툴 털어 여기에 일부만 살짝 공개합니다.

   



 오전에 바티칸을 오기 위해 '버스 타기 대작전'을 벌인 것을 기억하며 광장 앞 도로를 따라 즐비하게 밀집되어 있는 BAR(구멍가게+피자집)를 지나 로마의 중심을 흐르는 티베레 강에 도착했다. 이태리 사람들은 모두 화가(畵家)가 되길 간절히 희망하거나, 억압된 욕구불만이 그들의 국민정서로 연계되었는지는 내가 알 바 아니지만 악취 내 나는 티베리강의 다리 교각이나 벽면은 실로 베를린 장벽의 한 모퉁이를 보는 듯 낙서로 어우러져 있었다. 그것도 가지가지 색깔로..... 한국사람이 낙서의 광이라고? 아니올시다. 절대 아니올시다. 이들에 비하면.......

버스 타기 대작전 ; (정류장(FERMATA)과 표 파는 곳(T)은 어딘지, 버스는 어떻게 이용하는 건지, 요금은 얼마인지 알 턱이 없는 우리네 촌사람(?)은 수백 명(?)의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결국 목적지의 반대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미남형의 잘생긴 운전기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BUS 246, 49번을 갈아타고 베드로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탄젤로 성(Castel Sant' Angelo) 앞에 있는 산탄젤로 다리(Ponte S. Angelo)는 수많은 천사상들로 다리 난간을 장식하고 있다. 천군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로 승천하는 에녹의 기분을 잠시 느끼며, 한 개에 4,000£하는 노상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티베레 강가 낙엽길을 ‘홀로’가 아닌 ‘함께’ 거닐었다. ‘정의의 궁전’이라는 뜻의 주스티치아 궁전을 지나 이 골목 저 골목을 통과하여 나보나광장(Piazza Navona)에 다다랐다. 광장 중앙에는 오벨리스크를 떠 바치고 있는 피우미분수(Fontana dei Fiumi)가 있었고, 남쪽으로는 모로분수(Fontana del Moro), 서쪽으로는 산타그네세 인 아고네(Sant' Agnese in Agone)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여유롭게 앉아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이태리 사람들... 흑인 장사꾼들... 정오의 태양아래 잿빛건물의 부드러운 파사드가 광장중앙에 부드럽게 반사되고, 시원하게 내뿜는 세 개의 분수, 검고 작은 돌조각으로 모자이크 된 광장 도로면은 작은 비둘기 떼들이 이리저리 먹이를 좇아 날아다닌다. 이태리풍! 이태리식! 이태리사람들의 한가로움! 골목을 빠져나오자 한국인 학생 한 명이 다가와서 나보나 광장이 있는 곳을 물어봤다. 자신 있는 듯한 어조로 "나보나광장은 꼭 가보셔야지요! 이렇게 저렇게 가면 거기가 나보나광장입니다. 재미있는 여행되세요!"

  

  다시 티베레(Tevere) 강 서쪽 가로변을 따라 룬가라(Lungara)거리를 걸었다. 골목길 중간에 세티미아나 문(Porta Settimiana)을 통과하여 로마 식물원( Botanical Gardens )에 도착했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여기까지 왔지만, 8000£의 입장료를 내고 과연 이곳을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 이곳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도 아쉽다. 벌써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며 석양노을이 지는데 어두워지면 집에 못 찾아갈 것 같은 불안도 마음 한 구석에서 포르르 피어올랐지만,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지로 했다. 7천여 종의 식물들이 이곳에 있다던데 뭐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로마시민인지 관광객인지를 모르겠지만 어린 꼬마아이들을 데리고 산책하는 아주머니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30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야자수와 활엽수들이 정녕 이곳은 이방나라였다. 신혼여행 사진답게 이곳에서 사진 좀 많이 찍자! 찰칵! 찰칵! 찰칵! 엄마와 떨어져서 놀고 있는 귀여운 백인 꼬마아이들 붙잡아 놓고 기념촬영시켜 보내고.... 간단한 키스신도 한번 박아 놓고.... 아픈 다리 어루만지며 위안을 삼았다. 이제 가야 하는데도 은근히 욕심이 생겨 브라만테가 완성한 로마 최초의 르네상스 양식 건물인 템피에토(Tempietto) 사원을 가자고 아내를 졸라댔다. 여기까지 오는데 비행기 값이 얼마인지 아냐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해대며.... 그러나, 그러나 결국 이곳까지는 가지 못했다. 생각보다 너무 멀어 나도 더 이상 걷는다는 것이 무리였으니 아내는 오죽했으랴!  

  다시 오던 길을 턴(turn)하여 가겟집(bar)에 들어가 콜라 한 병 사 마시며 호텔로 호텔로 향했다. 오던 길을 역순으로.... 능숙한 솜씨로 버스를 타고 능숙한 솜씨로 버스정류장에 내리고, 능숙한 솜씨로 버스를 갈아타고, 능숙한 솜씨로 호텔 앞에 내려, 능숙한 솜씨로 호텔 카운터를 지나, 능숙한 솜씨로 우리 방으로 들어갔다. 한국에서는 밥먹듯이 하는 기본적인 행동들이 로마에서는 왜 그렇게 내가 대견한고?

     

  ‘<아내의 일기> 로마를 알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또 다른 사회의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어제의 두려움이 오늘은 약간의 편안함과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아침부터 별로 즐겁지 않은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사실이다. 물론 서투른 회화솜씨로 더듬더듬 물어 물어가며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로마의 최고라 하는 교황청이 있는 산삐에뜨로 광장을 갈 수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오빠를 속상하게 했지만 그래도 짜증 내지 않고 열심히 사진 찍고 내 투정받아주고, 이곳저곳 설명하는 오빠는 참으로 멋진 구석이 있었다. 계속해서 투덜투덜...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산삐에뜨로 광장을 이어 나보나 광장에 갔을 때, 또 다른 멋에 절로 놀랄 수밖에 없었으며 다리가 아픈 것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곳을 갔는데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몇몇 이름은 티베르강, 피우미 분수 등 등...  맥도널드에서 간단한 음료와 간식을 먹고, 정말 정말 다리가 아팠지만 걷고 또 걸어 로마 식물원에 갈 수 있었다. 정말 많은 종류의 나무들과 화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빠와 신혼부부로서의 사진을 찍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5:30분이 넘자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다. 지도를 보며 잘도 찾아내는 오빠는 정말로 대단하다.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쯤...... 맥주와 빵을 사들고, 지름길을 찾아서, 무사히......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밤도 평안한 밤이 되길 기도하며... 저녁 8시부터 곯아떨어짐.


  24일(화) 오전 8시 40분 호텔에서 나와 246번 버스와 49번 버스를 이용해 바티칸까지 오고,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Barberini역에 하차! 바르베리니 광장에 있는 트리토네분수가 시원한 물줄기를 하늘로 내뿜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병아리만 한 국민학교 학생들이 견학을 왔는지 분수 주위를 맴돌며 장난도 치고 수첩을 꺼내 뭔가를 열심히 적기도 한다. 분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어가면서 말이다. 귀엽다. 다시 동쪽으로 난 바르베리니 거리를 따라 베네토거리를 향해 간다. 노상에서 파는 인테리어 책자를 하나 샀다. 3세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로 숨진 순교자를 위해 지어진 교회라는 산타 수산나(Santa Susanna) 교회를 먼발치서 바라보고, 맞은편에 있는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Santa Maria della Vittoria) 교회 쪽으로 가서 아내와 간단히 포즈를 잡고 사진한방 찰칵! 지나가던 행인이 미소로서 우리들의 행복한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본다. 까무잡잡한 동양인 남녀가 그들의 눈에 밉지 않았나 보다.

     

  다시 Via Bissolati를 지나 베네토 거리로 들어섰다. 부유충이 사는 동네답게 말끔한 거리가 로마의 여느 곳과는 색다른 구석이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명동과 등급을 같이 한다면 옳은 표현이 아닐까? 여기저기 멋들어진 호텔들과 감히 들어가기 어려운 레스토랑들... 그리고 세련된 옷매무새와 감각 있는 숙녀들의 모습도 간간히 보게 된다. 이곳에서 야경을 볼 수 있었다면 또 다른 로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로마에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야경을 산책하는 계획을 잡아보지 못한 게 무척이나 아쉽다. 물론 그 당시 걷는다는 그 자체도 하루하루가 힘든 노동의 연속이었지만..... 403년에 만들어졌다는 핀치아나 문을 지나 다시 트리토네 분수가 있는 광장으로 빠져나왔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Spagna역에 내렸다. 지하철 역 출구 쪽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흑인 장사치들이 가죽가방과 액세서리 등을 팔고 있다. 선뜻 다가서기에는 너무 나도 무섭도록 까만 얼굴들... 그리고 해진 바지와 얇은 겉옷들.... 그들의 시선 속에 감추어진 가난과 인생,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연민, 그리고 인류 등의 단어가 어렵지 않게 내 마음속을 파고든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내려온 스페인 계단! 출국하기 전부터 스페인계단, 스페인계단을 입이 닳도록 외쳐 댓 건만...  드디어 도착했다. 그런데....  공사 중....??!!   계단공사 중! 낙서 투성이의 투명한 유리 사이로 보이는 스페인계단을 바라보며 화가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아내 왈 "오빠! 정말 너무 아쉽다. 우리도 오드리헵번처럼 계단을 밟고 내려와야 되는데...."

    

  스페인 계단 아래쪽으로는 배모양의 바르카치아(Barcaccia) 분수 가 있다. 이 역시 베르니니와 그의 아버지 피에트로가 설계한 분수이다. 물이 너무너무 맑다. 정말로..... 스페인계단 왼쪽으로는 성모마리아 상을 로마식 기둥이 받치고 있는 콜로나 델림마콜라타가 있고, 그 기둥을 돌아 계단 좌측으로 가면, 스페인계단 위쪽에 자리 잡고 있는 트리니타 데이 몬티(Trinita dei Monti) 교회를 갈 수 있다.


   스페인 계단에서 도보로 약 15분을 걸어가면 포폴로 광장에 도착! 계단을 따라 광장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주욱~ 죽~ 미끄러졌다. 외국사람이 보는 앞에서...... 지나가던 여인이 묻는다. "Are you O.K.?" 옷을 털며 일어나자 내 뒤통수로 그녀의 웃는 모습이 느껴진다. 아이 쪽팔려~   광장에서 C.F 촬영을 하는지 우리에게 약간의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잠시 광장 분수계단에서 아픈 다리를 마사지하며 잠시 에너지를 충전했다. 점심으로 또 피자와 콜라를 사 먹었다.  

    

  아내의 말처럼 ‘조금씩 여유 있는 걸음걸이, 약간씩은 느긋해져 가는 마음....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을 거라는 착각 아닌 착각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는 상태’로 콜로세움에 도착했다. 우와! 감탄사 연발이다. 그 웅장함에 드디어 우리가 로마에 왔다는 것이 실감 나더라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순교지.... 미로처럼 역어진 지하 사자굴들... 황제의 관람석....  그리고  사자에 물어 뜯겨 피 흘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지켜보며 환호하는 로마군중들....  그러나 지금은 예수 믿는 신자들로 가득 찬 지금의 로마........ 역사의 아이러니.... 말은 통하지 않지만 왠지 관광객들의 표정하나 행동하나에도 숙연함이 보인다. ‘철사줄로 꽁꽁 묶여 뒤돌아 보며 뒤돌아 보며.... ’ 단장의 미아리 고개 가사처럼 콜로세움을 뒤돌아 보며 영화에서나 본 듯한 돌포장도로를 걸었다. 찬란했던 로마의 영광도 영원할 수 없다는 역사의 진리를 되뇌어 보며.......


  콜로세움을 바라보며 잔디에 앉아 로마에서의 망중한을 잠시 가져본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우리는 카라칼라 욕장으로 향했다. 로마사람들은 때가 무척이나 많았나 보다 무슨 놈의 목욕탕이 잠실 체육관 만한고?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는 욕장 바닥의 배수구와 중정의 천정고를 보면 그 규모를 가히 짐작이 갈 듯하고,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모자이크 형식의 바닥무늬를 보면 로마의 대중 사우나 탕(?)이 분명해 보인다. 석양 노을에 거친 벽면이 붉게 타오른다.


  오늘은 바티칸 박물관에서 오전 시간을 투자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많은 유물들....  한 가지 한 가지가 모두 귀중해서 자세히 보다 보면 하루해가 다 가도 모자랄 것이다. 이리저리 아래로 위로 왔다 갔다 하면서 엄청난 로마의 유물을 감상한 후 밖으로 나온 곳은 바티칸 박물관 중앙에 정방형의  피냐 정원(일명 솔방울 정원)이었다. 거대한 솔방울 상은 고대 로마 분수의 일부였으며 한때는 옛 성베드로 성당의 안뜰에 있었다고 한다. 아내는 이곳에서 퉁퉁 부어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힘들고 지치고 몸이 안 좋다나~ 피냐 정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노라면 둘 다 힘들고 짜증 난 얼굴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오늘도 피자와 콜라로 점심을 때우려고 하니까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내 의지와 상관없는 반항 아닌 반항을 해댄다. 우리는 인사불성(?)이 되어 최고의 합의점에 도달했다. 오늘은~ 밥을 먹자! 오늘은 밥을 먹자! 밥! 밥! 밥! 밥! 아내 눈에 광채가 발한 것은 로마에 도착한 이후 처음인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바티칸 근처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레스토랑 ‘신라’를 찾아갔다. 김치찌개와 볶음밥을 주문했다. 맛은 한국에서의 여느 식당보다 객관적으로 맛이 있었다. 아저씨 공깃밥 하나 추가요~! 얌냠 쩝쩝쩝 후루룩 짭짭....

    

  다음으로 우리가 이동한 곳은 베네치아 광장! 그리고 빅토르 엠마누엘 기념관! 숨통이 터질 듯 웅장한 기념관이다. 한번 올려다봐선 건물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의 시각이동을 통해 전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외관을 자랑하는 건물이다. 또 측면 가로변에는 건물로부터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건물의 생동감을 가져다주고 있다. 하얀 대리석에 강한 빛! 그리고 그에 따른 강한 음영의 생성이 베네치아 광장의 시각적 점이를 그렇게도 강하게 지배하는 것이 아닐까?


  빅토르 엠마누엘 기념관 뒤로 아라코엘리 층계가 있는데 122개의 대리석 층계가 확실한가? 아내와 올라가면서 세어 봤지만 숫자가 맞지 않는다. 이거 뭐시여~ 시방 우리를 놀리는 거야~! 계단을 내려와 옆에 있는 '코르도나타'라는 계단을 오르면 캄피돌리오 광장이 나온다. 바닥 문양이 매운 인상적인 이 광장은 대부분 미켈란젤로의 손길이 닿은 곳이다.


  캄피돌리오 광장을 돌아 나와 골목골목을 찾아 도착한 곳은 로마 최대의 분수인 트레비 분수(Trevi Fountain)였다. 오히려 넓은 광장의 한 모퉁이나 중앙에 있으면 좋았을 것을... 의외로 그곳은 주변 건물로 곽 차 있었고 그 좁은 트레비 분수 앞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 돈을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다는 전설에 분수 바닥은 엄청난 양의 동전들로 가득 차 있었고 화려한 조각상들과 햇빛에 반사되어 에메랄드 빛 광채를 발하는 맑고 깨끗한 물,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시원한 물줄기는  과연 ‘로마 최대의 분수답다’는 생각을 견고히 하게 했다. 이 분수는 니콜라 살비(Nicola Salvi)가 설계했는데, 1762년에 완공되었으며 중앙의 형상은 바다의 신 넵튠인데 두 트리톤(반인 반어의 바다신)과 접하고 있다.   

   

  26일 목요일 - 상쾌한 마음으로 호텔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 두 사람, 어제본 그 아줌마, 아저씨들, 매일 어디를 출근하시는 어느 노인들, 왠지 모르게 반갑다. 이런 것들이 사람이 살아가는 한 모습들이 아닐까.... 약간은 좀 쌀쌀한 날씨에 입김이 나온다. 초가을 날씨인지라 아침저녁은 좀 싸늘한 감이 있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휴지조각들, 몇 장씩 벽에 붙어있는 광고 벽지들... 한국에서 수고하시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의 엄청난 수고가 새삼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와야 할 버스가 안 온다. 아~ 오늘 가야 할 곳도 많은데..... 1시간은 여유를 가지고  참을 수 있었지만 2시간이 넘어가면서 우리들의 이마에서는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 울그락 불그락 핑 핑 핑...

    

  "오늘은 호텔 가서 좀 쉬어야겠다." "그래, 오빠! 오늘은 좀 쉬자! 우리가 그동안 너무 무리하게 돌아다닌 건 사실이야." 그러나 우리들의 걸음은 호텔이 아닌 시내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호텔에 있기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갈급한 정서적 일체감을 가지고.....


  결국 버스 환승장까지 걸어와서 또 다른 버스를 기다렸다. 바티칸까지 나가려면 버스를 두 번 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이하란 말인가! 1시간 이상 기다려도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오지 않았다. 벌써 시간은 정오를 향해 치닫고 있었고, 길바닥에서 오전시간을 버린 것을 생각하면 또다시 서슬 퍼런 입술에 분노가 서리기 시작했다. 왕 짜증~!  왜 버스가 안 오냐고 손짓 발짓하며 물어봐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비상수단을 강구하느라, 바티칸까지 가는 다른 노선버스를 알아봤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을 듯싶었다.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데 아내가 책을 뒤적이더니 노선버스 하나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아이고~ 귀여운 내 새끼! 이래서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는 말이 생겼나 보다.


  오전시간을 다 허비하고 나니 기운이 쫙 쫙 빠진다. 잠시 쇼핑이라도 해 볼까? 여행선물을 골라야 한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돌아다녀 봐도 특별히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다. 괜찮아 보이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파는 물건에 견주어 볼 때 물건값이 상당히 비싼 편이고, 같은 값의 제품은 품질이 떨어지고..... 게다가 국교(國敎)가 천주교인지라 기념품마다 마리아 상과 성물들이 대부분이라 고민 고민 해봐도 아픈 건 다리요 상한 건 마음이라.... 그냥 호텔로 가서 오늘은 쌓인 피로를 좀 풀어볼까? 밧드(but) 그러나......


  가자! 오늘 그냥 호텔로 들어가 낮을 밤 삼는다는 것은 로마여행의 씻을 수 없는 오욕으로 남으리라... 고대 로마의 정치, 상업, 사법생활의 중심부인 포룸을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다시 전철을 타고 골로세오역에 내려 거금의 입장료를 내고 포룸에 들어갔다. 고대 로마의 원형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그들의 문화재 관리 보존 실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길에 밟히는 돌 하나하나가 고대 로마의 유적이었으며, 아직도 곳곳에 발굴작업이 진행 중인 곳도 있었다. 폐허가 되어 기둥 몇 조각만 남아 신전의 명목을 간신히 내세우고 있는 베스파시안 신전, 새턴신전 등이 맞은편 햇살에 기나긴 그림자를 드리울 때면 마치 우리들은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의 묘한 마술에 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코린트양식의 주두가 땅에 굴러다니고, 닳고 닳아 버린 돌조각들, 풀 한 포기가 옛 로마의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된다’는 말은 로마여행을 다녀와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어휘선택이 아닐까? 포룸을 지나 팔라티노 언덕을 넘으면 로마시민의 거주지로서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던 팔라티노로 이어진다. 이곳도 입장료가 있지만 포룸팔라티노 중 한 곳에서만 입장료를 내면 두 곳을 함께 구경할 수가 있다. 대부분 깨진 돌조각과 허물어진 고대 유적지가 이곳의 전부였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무시해 버릴 수 없는 시대의 연륜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석양노을에 붉게 물든 팔라티노 언덕을 바라보노라면 왜 자꾸 인생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27일 금요일 - 오늘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박해를 피해 예배를 드렸던 지하 카타콤(Catacomb)을 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로마를 벗어나 아피아 구가도를 거쳐 '산 칼리스토 카타콤'을 방문했다.  지하로 연결된 통로에는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 안내자 없이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10여 명이 그룹을 지어 안내자와 함께 땅속 지하 공동묘지로 들어갔다. 과연 어떤 곳일까? 대부분의 로마유적지는 책자를 통해 그 모습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그 모습을 직접 볼 수 없었던 이곳은 당연 우리들의 가슴을 호기심으로 가득 채우고야 말았다. 어떻게 지하에서 예배를 드렸으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두컴컴한 지하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약 90cm 정도의 폭으로 모든 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고, 다른 길로 갈 수 없도록 중간중간에 철문을 만들어 관광객이 그곳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해 놓았다.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살갗에 스쳤다. 맨 뒤에 따라오던 아내가 겁이 났던지 나와 자리를 바꾸어 걸어갔다. 내심 등 쪽이 썰렁했지만, 별도리가 없다. 그대 이름은 연약한 여자가 아니던가!


  좌우 벽은 죽은 시신을 차곡차곡 안치할 수 있도록 격자형의 움푹 파인 공간으로 가득했으며, 그 어떤 벽면도 그냥 놔둔 곳이 없을 정도였다. 또, 더 안으로 들어가면  3평 남짓한 공간에 가족의 시신을 안장할 수 있는 가족묘들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지하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찬을 했던 곳이다. 벽면 곳곳에는 그리스도인 표식과 그네들의 신앙 고백들이 낙서처럼 쓰여 있었으며 가족묘에는 성찬을 위한 그릇들도 있었다. 무덤은 죽은 자가 거주하는 곳이다. 하지만  카타콤은 이미 죽은 자의 공간이 아니라 산 자의 공간이었으며, 좌절과 불안과 공포의 공간이 아니라 믿음과 소망과 빛의 공간! 바로 그것이었다.  그곳은 그들에게 천국이었으며 기쁨을 가지고 주님을 만나던 장소였다. 그들에겐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는 너무나도 큰 비밀이 있었으며, 그 비밀을 안 모든 이들은 그와 같은 기쁨을 누리리라.....


  다시 버스를 타고 나와 로톤다광장을 향했다. 로톤다광장에 있는 판테온은 로마 모든 신의 성전이었지만 중세에 이르러 교회로 탈바꿈한 건물이다. 내부의 거대한 돔과 그 상부에 뚫린 원형구멍(Oculus)으로 빛이 떨어지면서 그 내부공간은 성스러움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로톤다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아 ‘제수’가 있다. 1568년부터 1584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로마 최초의 예수회 교회였다고 한다. 내부는 들어가지 못했고 건물 파사드만 먼발치서 바라보며 로마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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