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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Aug 21. 2024

200자 원고지 6-7장의 힘

이규태 코너

  지금은 신문이 모두 한글로 되어있지만 7-80년대만 해도 국한문 혼용이었고, 소설책이나 웬만한 전문서적들은 세로 글쓰기였습니다. 신문을 펴고 읽을 수 있으면 좀 배운 사람 같은 인상을 주는 그런 때였습니다. 학생은 식견도 넓히고 한자를 익히는 수단으로 신문 읽기를 하곤 했습니다. 저의 경우, 사설(社說)은 너무 딱딱하고 재미가 없어서 보는 듯 마는 듯 통과였고, 4컷 만화, 한컷 만평, 만물상, 간혹 연재소설도 흥미를 끄는 섹션이었습니다. 그중에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보던 곳이 조선일보 논설고문이었던 고(故) 이규태(李圭泰·1933~2006)씨의 '이규태 코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동서양과 고전을 넘나들면서 시대를 해석하고, 특유의 어법으로 사건의 맥락을 짚어주는 마력 같은 글솜씨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사회적 이슈나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그것을 주제로 다음날 신문에 200자 원고지 6-7장 정도의 칼럼이 '이규태 코너'라는 섹션에 실리게 됩니다. A4 용지 한 장이 조금 못 미치는 분량 같은데 제가 교회에서 대표기도할 때 쓰는 기도문 정도의 양인 것 같습니다. 칼럼에는 이규태 씨의 얼굴이 조그맣게 캐리커쳐로 삽입되어 있습니다. 입에 담배나 펜을 든 모습이었는데 어느 날 칼럼에 '시대가 변했으니 이제 컴퓨터 앞에 있는 모습으로 바꿨다'는 설명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학창 시절 위인전을 읽으면 항상 등장하는 것이 '그는 누구 아래에서 수학(修學)을 했으며, 누구의 사상을 전수받았고, 그의 삶에 이렇게 영향을 받아 이런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뭐 이런 식입니다. 저는 감히 위인(偉人)이 아니기 때문에 ㅎㅎ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다'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따름이지만 굳이 말한다면 '이규태선생님'이 아닐까 합니다. 제 글쓰기의 롤모델입니다. 논리와 해학(諧謔)이 있으면서도 본질을 꿰뚫은 사고(思考)와 널브러져 있는 방대한 지식을 하나의 구슬로 엮어내는 그런 작가(作家)가 되고 싶은 맘인 것이죠.


대문사진 출처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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