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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May 30. 2024

빵 이야기

빵공장 설립을 향한 서막

이럴 줄 알았습니다. 언젠가는 제 글감에 “빵”이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이 자명한 것은 제 성장과정의 중심에는 항상 “빵”이 있었습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그 “빵”이 아니라 당연히 먹는 “빵”입니다. ^^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 첫 이야기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제 인생의 첫 이야기는 “빵”입니다. 위로 두 명의 누나 앞에서 혼자만 단팥빵을 먹었던 4살의 보잘것없는 “아들”이 바로 저였습니다. 네이버 밴드의 우리 형제 그룹방 이름이 “미아리 빵집 가족들”입니다. 아버지는 빵을 가게에 전달하는 중간상인이었습니다. 예전에 말을 줄여서 “중상”이라고 불렀습니다.

     

5살 때는 미아리에서 구멍가게를 하면서 동시에 아버지는 중상을 하셨습니다. 배달용 짐자전거에 빵상자를 가로세로 지그재그로 엮어서 하늘 높이 쌓아 올렸기 때문에 어느 방향에서도 짐을 풀지 않아도 다양한 종류의 빵을 손으로 빼어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공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언제든지 먹고 싶은 빵을 상자에서 빼내어 먹을 수 있으니 이 아니 좋을 수 있을까요. 그중에 단팥빵, 슈크림방은 제 단골 메뉴였습니다. 겨울엔 호빵도 제 정확한 타깃상품이었습니다.  

   

7살 때는 집이 이사를 해서 마당이 있고, 장독대도 있는 주택에서 살았습니다. 마당에는 늘 비어 있는 나무로 된 빵상자가 쌓여있었습니다. 당연히 놀이의 재료는 빵상자입니다. 바닥에 상자를 깔아 방을 만들고, 옆쪽으로 상자를 세워 벽을 만들어 봅니다. 레고처럼 다양한 형태로 조립작품을 만듭니다. 자동차도 만들고, 비행기도 만들고, 백두산이며 구름다리도 만들면서 아이들 놀이터로 사용하기 안성맞춤입니다.

    

어느 날 빵상자를 가로 세로로 엇갈리게 쌓으면서 4-5개 정도 높이까지 올려놓고, 플라스틱으로 된 밥상을 위에 올려놓고 앉았습니다. 비행기조종석까지 구비하니 이제 하늘을 날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마지막에 꼭 “사고(?)”가 나는 걸까요? 항상 그렇듯이 정성스럽게 쌓아놓은 빵상자가 균형을 잃고 우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습니다. 사고현장을 수습(?)하고 일어서려는데......  

 상. 다. 리. 가. 세. 개.     

오! 마이 갓! 상다리가 하나 부러졌습니다. 지금도 떨어져 나간 다리의 부서진 접착제 질감이 선명합니다. 아이는 철저하게 완전범죄를 꿈꾸기 시작합니다. 현장을 최대한 깨끗이 정리하고, 빵상자는 원래위치에 가지런히 쌓아 둡니다. 이리저리 흩어진 마당의 흙은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잘 펴서 정돈시켜 놉니다. 문제는... 부러진 다리를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조그마한 심장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하고, 엄마한테 혼날 생각을 하니 ‘내 인생에 왜 이런 고난이 올까’ 비관하던 찰나에 좋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 증거물을 땅속에 묻기로 결정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사고 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는 사건이 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숨고, 감추고 하는 것이 본능인 것 같습니다. 7살 아이는 “감추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장 8-9절)”     

두려움은 은폐하도록 지시를 내립니다. 7살 아이가 그런 영악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저녁때 엄마의 회유와 용서에 대한 설득으로 울면서 낮에 감추어놓은 상다리를 다시 갖고 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나지만 아직도 어이없었던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중학교 때는 빵대리점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상이었던 아버지가 이제는 20여 명의 다른 중상아저씨들에게 빵을 제공하게 되었고, 우리 집 대리점에는 컨테이너 크기의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3개나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여러 색상의 “아이차(쭈쭈바)”가 가득했고, 물론 저는 아무 때나 아이스크림을 빼먹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더운 여름에 냉장고 안에 들어가서 몸을 식히기도 했죠. 안쪽에 안전손잡이가 있어서 내부에서도 문을 열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그 성애 낀 냉장고 안에서 더운 여름날 입김을 내뿜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요? ㅎㅎ


공장에서 대리점으로 빵트럭이 오는 시간은 새벽 4-5시 정도입니다. 트럭에서 나무로 된 빵상자를 던지면 아래에서 손으로 받아 매장에 차곡차곡 쌓아놓습니다. 저도 그 일을 도울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가끔 새벽에 일손을 돕곤 했습니다. 새벽에 눈이 내리고, 날이 밝기 전 골목 가로등에 비치는 함박눈을 보면서 빵상자를 받았던 일은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트럭이 떠나고 공장에서 바로 찍어낸 단팥빵을 하나를 뜯어 입에 뭅니다. 그 연한 촉감은 제과점 빵보다도 맛있었습니다.


인생은 자기만의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결혼을 하고, 직업도 건축 관련 일을 하고 있고, 심지어 글을 쓰는 “브런치작가”라고 은근히 자랑하고 다니는 중에 제 아내는 절친이 보내준 오븐을 선물로 받은 이후 빵 만드는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주야장천(晝夜長川) 빵을 만듭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탁 위에 카스텔라가 놓여 있습니다. 퇴근하면 모두 배달이 끝났습니다. 아침이 되면 또 빵이 곱게 놓여 있습니다. 전기장판 이불을 들추니 발효시키고 있는 밀가루 반죽이 있습니다.

빵, 빵, 빵 이젠 빵공장이 되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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