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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Jul 12. 2024

얼어붙은 감정

브런치 작가로 누리는 자유함

"요즘 브런치스토리에 글 쓰니까 좋아?"

 운전할 때 옆에 앉아있던 아내가 묻습니다.

"응"

"자존감이 높아지고 막 그래?"

"그런 것도 있지만 흩어져있는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고, 나중에 내가 세상에 없을 때, 아이들이 내 글을 읽고 '아빠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았구나'하고 나를 좀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즉흥적으로 답을 했지만, 아주 조금은 아빠에 대한 기억을 자녀의 기억 속에 보관해 두고 싶은 심리가 있었나 봅니다. 평소 생(生)과 사(死)를 선 긋듯이 구분하는 성정인지라, 어떤 형태로든 이 세상에서 '남겨짐'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는 저에게도 놀랍습니다.


  연예인들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인터넷상의 SNS계정이 계속 남아있어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고, '90년대에 온 국민을 울렸던 영화 "편지"에서 사랑하는 아내 '정인'에게 남겨진 남편의 영상은 단지 소통하고 만질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성장할 때는 '성장일기'를 써서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북한도 무서워한다는 '중2' 질풍노도의 시기에 그동안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서 자녀에게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너희를 키울 때 아빠의 마음은 이랬었고, 너를 끝까지 응원하고 사랑한다는......'   그런 글입니다. 풍족하게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부모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가족이라는 가치 안에서 '소중함'은 지켜내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을 향한 일기가 아니라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성장일기'가 아이들의 이야기였다면 '위엔디'의 글은 그동안 분산된 나를 하나로 모아 '나의 이야기'를 엮어가는 중입니다.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판화 중에 단테가 묘사한 지옥이 떠 오릅니다.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코키토스호수(Cocytos, 빙판호수)는 모든 육체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얼어붙어 있는 잔혹한 장면을 판화로 보여 줍니다. 도레 판화집을 구매하고 접한 지 30여 년이 지나가건만 판화 속 하부 지옥의 강한 이미지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단테는 신뢰를 저버리는 것을 가장 안 좋게 생각해서 제9지옥에 그리스도를 저버린 자들을 포함해 각양각색의 배신자들을 배치했죠.


  중국에서도 의리와 정직, 신의를 중요시해서 삼국지의 관우(關羽)를 높이 평가하고 신의 경지까지 치켜세우지만, 삼국지 최후의 승리자로 여겨지는 사마의(司馬懿)는 경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욕을 할 때 “에이! 이 사마의 같은 x아!”라고 한다니 무슨 말을 더 할까요?


  사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단테가 정의한 ‘배신자 또는 신뢰를 저버린 자’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까지 얼어 있는’에 있습니다. 절규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보다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를 지옥의 밑바닥, 즉 하부지옥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살아있는데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 보고 있는데 느끼지 못하는 것, 존재하고 있지만 존재가 부정된다는 것이야말로 '지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사실이죠.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오늘도 저는 모든 감정을 조각하고, 짜 맞추며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코키토스호수'에 갇힌 '부정된 자아'가 아닌 만물의 생기와 함께 호흡하며 '자유함'을 누리는 '브런치 작가'로, 아내와 자녀,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네트워크에서 여전히 '살아'있고자 합니다.

생(生)과 사(死)를
선 긋듯이 구분한다는 것은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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