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함에 대하여
이것저것 들고 다니는 것을 싫어합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겠지만 빈손으로 다니거나 소지품을 최소화해서 작은 가방 하나 정도면 충분합니다. 노트북(laptop)만 있으면 설계, 모델링, 문서작성, 글쓰기 모두가 가능하죠. 설계도서는 모두 외장하드에 들어있고, 문서는 PDF로 보관하기 때문에 제 사무실 책상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모니터와 프린터 정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A4용지를 반으로 접으면 A5, 또 접으면 A6, 한번 더 접으면 A7입니다. A7의 크기는 105㎜X74㎜가 됩니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죠. 하루 16쪽의 메모장으로 더없이 훌륭합니다. 새해가 되면 예쁜 다이어리를 구매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만 막상 수첩 자체가 '짐'인지라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한두 번 사용하다 책장에 꽂히는 일이 다반사인지라 언제부터인가 아예 눈길도 돌리지 않습니다.
A7은 단어장으로 활용해도 좋고, 메모장으로도 훌륭합니다. 또 아이디어 스케치도 가능하고, 필요 없으면 재활용 쓰레기통에 그대로 버리면 그만입니다. 중요한 기록이나 다시 옮기기 힘든 메모의 경우 스캔해서 PDF로 보관하면 되죠. 사용감은 아이패드보다 훌륭합니다. 전원도 필요 없고, 보조 배터리도 필요 없습니다. 그마저도 몸에 지니기 싫으면 노트북가방 앞 주머니에 살짝 끼워 놓으면 그만입니다. 고급기능 활용 편으로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화장실 갈 때 책갈피로 사용해도 됩니다. 열받을 때 종이를 박박 찢을 수 있는 감정해소기능도 갖고 있습니다. 뭉개진 연필 심을 갈아서 뾰족하게 만들 때도 사포대용으로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기능입니다. 간혹 새 제품을 사용할 때 날 선 모서리에 손이 베일 수 있으니 조심은 해야 하지만 흔한 일은 아닙니다. 화장실에서의 사용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꼭 필요하다면 구김을 많이 가게 해서 연약한 피부가 다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루 A4용지 한 장이면 하루의 기록도 충분합니다. 핸드폰의 메모장 기능도 너무 훌륭하지만 디지털 기기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끼기엔 최고의 성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A4용지 모서리가 예각으로 보여서 종이 재단이 잘 못된 줄 알았다가 내 시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A4용지는 직각을 검토할 때도 유용합니다. A4용지의 긴 방향 길이는 297㎜입니다. 정확하진 않아도 대략 한 자(尺) 또는 1 피트(ft)에 해당되는 길이입니다. 눈금 자가 없을 때도 대략적인 길이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A4용지가 메모장으로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그 활용성이 무궁무진합니다. 머릿속으로 떠오는 것만 해도 수십 가지가 떠오르는데 시간관계상 여기서 줄여야 할 듯합니다. 오늘도 제 노트북 컴퓨터 옆에 A4용지 서너 장이 있습니다. 업무 요약본입니다. 서너 장의 요약된 문서를 엮을 때도 저는 스템플러보다는 상단 모서리에 딱풀을 이용합니다.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역시 활용이 끝나면 과감하게 휴지통으로 버리고, 워드프로세서로 업데이트된 새로운 문서를 출력해서 갖고 다닙니다.
'다이땡'에서 5000원짜리 문서 분쇄기를 구매했습니다. 3-4장 분쇄하면 통이 꽉 차지만 개인정보가 담긴 용지 한 장을 없애기는 최적입니다. A4용지 한 장을 긴 방향으로 접어서 밀어 넣고 우측 핸들을 돌리면 칼국수 마냥 깨끗하게 분쇄가 됩니다.
고등학교 2학년 생활기록부에 저에 대한 담임선생님의 한 줄 평가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모나지 않은 성격에 근면 성실함' 모나지 않고 단순하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섬기고 봉사하다가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인생이고 싶습니다.
A4용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