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엔디 Sep 05. 2024

어뜨케 어뜨케

따라쟁이의 유익함

  한눈에 봐도 예쁘고 공부 잘할 것 같은 아이입니다. 양갈래로 딴 머리에 피부도 하얗고 몸도 야리야리합니다. 초등(국민) 학교 1학년때 제 짝꿍의 모습입니다. 숫기 없었던 저는 당연히 말 한번 제대로 못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가수 김수희의 <애모>가 떠 오릅니다.


  국가고시보다 어려운 '한글 받아쓰기 시험'이 시작되고, 선생님이 내신 문제를 쪽지에 받아 적습니다. 채점 결과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빨간 색연필로 채점한 쪽지를 선생님께서 한 사람씩 호명하며 나눠줍니다. 긴장된 순간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제 짝꿍은 엄살쟁이입니다.

  "어뜨케 어뜨케 이번 시험 망쳤어! 빵점 맞을 거 같아~ 어뜨케" 짝꿍의 이름이 불려지고 채점된 쪽지를 보면 100점! 시험을 못 봤을 때는 90점! 역시 제 이름도 불려지고 빨간 색연필로 선명하게 '20점', '10점' 시험을 잘 보면 '30점' ㅠㅠ 틀린 문항에 그어진 빨간색 채점을 좀 작게 표시하면 안 되는지...... 저렇게 길고 선명하게 쫙! 쫙! 쫙! 쫙~ 부끄러움은 나를 더 작아지게만 합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흑.


  '이상하기도 하지 쟤는 왜 맨날 빵점 맞을 거 같다고 하면서 100점인 거야?'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또 받아쓰기 시험이 진행되고, 선생님이 채점한 쪽지를 나누어줍니다. 저도 제 짝꿍처럼 주문(?)을 외우기로 했습니다. 큰소리로 하면 창피하니까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어뜨케~ 어뜨케~ 이번 시험 망쳤어! 빵점 맞을 거 같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 주문이 통했습니다. '빵점'입니다.




  얼마 전, 36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에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안에서 30분간 갇혔던 일이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이 닫히자마자 '쿵' 소리가 나면서 멈춰 섰습니다. 응급버튼을 눌러서 연결은 되었지만 제 말이 안 들리나 봅니다. 다행히 핸드폰 통화가 가능해서 다른 비상번호로 호출되어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전기사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2-30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에어컨도 안 되는 좁은 공간인지라 고개를 숙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스릴감을 맛보도록 '지지지직 퍽' 정전(停電)도 한두 번 생기네요. 30분 후, 마침내 문이 열리고 아무 이상 없이 구조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이야깃거리'로 좋은 땔감입니다. 과장된 표현을 써가면서 '엘리베이터에 갇힌 일'로 무용담을 늘어놓습니다. "아~ 갇혔을 때 예쁜 여자가 있어야 드라마 한 편 찍는 건데! 아쉽 아쉽"하면서 깔깔거립니다. 아내도 '큰일 날 뻔했다'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때 당신은 어떤 기도를 했어?"
"어? 안 했는데? 그 상황을 그렇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로 했던 행동은 비상벨의 위치를 찾아서 구조요청을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행동은 일반전화로 가능한 긴급연락처를 찾아 두 번째 구조요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긴급조치가 있은 후, 기다리는 시간에 현재 나의 상황을 가족 카톡방에 올리고, 내 머릿속으로 상상을 했습니다. '만에 하나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면 나는 어떻게 할까? 지상 4층 높이니까 충격은 어느 정도 일까? 서 있는 자세로 떨어지는 것보다 누워있는 자세가 더 유리하지 않을까? 누우면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은데 옆으로 눕는 것보다 하늘을 보고 누워야 하나? 떨어지는 순간 위로 뛰어 충격을 완화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겠지?' 하면서 물리법칙에 대해 자유로운 상상을 한 것이죠. 이 정도의 위기는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작은 일'이었으니까요. 기도하지 않았다는 내 말에 적잖이 놀란 것은 아내였습니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기도를 안 하지? 당신은 모든 일에 하나님보다 자기 머리를 의지하는 것 같아" 




    아내는 기도응답을 잘 받는 편입니다. 실제 함께 생활하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응답하시는구나'하고 놀란적도 꽤 많습니다. '우연'인지 '응답'인지는 기도한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작고 사소한 문제부터 큰 위기의 순간에도 기도는 큰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에베소서 6:12)'는 말씀처럼 현실의 문제를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너무나 감성적인 아내와는 반대로 지극히 이성적인 저의 성격과 개성도 주님께서도 적절히 사용하실 것을 믿지만 내심 끊임없이 하나님과 가까이 소통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부럽기도 합니다. 


  '어뜨케 어뜨케' 하면서 가끔은 아내의 기도하는 모습을 따라 할 때도 있습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도 '따라쟁이'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