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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Sep 25. 2024

대들보 위에 앉은 도둑

  대들보는 지붕의 하중을 기둥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인 만큼 상징적인 표현으로 더 많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중요도로 따져도 기둥을 떠 받들고 있는 주춧돌과 기고상당(旗鼓相當)하다 할 것입니다. 집안의 대들보와 같은 아들이라 말하기도 하고, 대들보가 무너진 것 같은 슬픔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전통건축을 지을 때 상량식(上梁式)이라는 의식을 반드시 진행했습니다. 대들보를 올리는 절차입니다. 목조건물의 골재가 거의 완성된 단계에서 대들보 위에 대공을 세운 후에 최상부 부재인 마룻대 (상량)를 올리고 거기에 공사와 관련된 기록과 축원문이 적힌 상량문을 봉안하는 의식입니다.(출처 : 위키백과)


  요즘도 간혹 간소하게 상량식을 고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철골조 건물에서도 하고, RC구조(철근콘크리트)에도 상량 없는 상량식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기초 터파기를 한 후 레미콘 타설이 있기 전에 밤에 와서 기둥자리에 막거리를 뿌리고 부적(符籍)을 묻고 가는 것도 본 적이 있습니다. 다시 대들보 이야기로 돌아와서 남대문(숭례문)의 상량문에는 새로 짓거나 고친 집의 내력, 공역 일시 등을 적어 놓습니다. 숭례문 복구 현장에서 서예가 소헌 정도준 선생이 문루(門樓) 지붕 꼭대기에 올라갈 목재에 걸터앉아 '서기 2012년 3월 8일 복구 상량'이라는 한자를 써 내려가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매일경제 사진 기사 2012-03-05


  현대 건축의 대부분은 목조건축이 아니기 때문에 대들보가 없습니다. 그런 연유로 상량식과 같은 절차는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지붕이 덮이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기성 공사비를 지급하는 시기도 마지막 지붕 스라브 타설을 기점으로 계약서를 꾸미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대들보를 올려놓으면 사실 큰 걱정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집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나머지 부재의 축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대들보의 결구(結構)로 구조적인 안정성이 확보된 만큼 차근차근 치목과 조립으로 완성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구조적 중요도를 차치하고 이미 큰 골격을 잡은 셈이기 때문에 대들보를 올리는 행위를 높이 평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지붕을 완성해 놓으면 어떻게든 건축을 완성해 낼 수 있는 것이죠. 대들보 보다는 지붕이라는 상징성이 오히려 더 커 보입니다.


  불법건축물에 대한 판단 기준 중 하나가 지붕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될 때가 많습니다. 건축법상 지붕의 유무에 따라 바닥면적의 증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둥과 보가 있어도 바닥면적이 증가하지 않습니다. 지붕이 없으면 거주가 불가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바닥면적이 늘어나면 연면적이 늘어나고, 연면적이 늘어나면 주차대수나 정화조 등 부대시설의 법적기준이 바뀌게 됩니다. 게다가 늘어난 면적은 세금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허가받지 않은 건축물의 불법 점용은 탈세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원숭이 엉덩이가 빨간 것이 결국 백두산'까지 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20평 집을 지어도, 500평 규모의 건축을 해도 사용자가 쓰고 싶어 하는 공간은 항상 부족합니다. 수십억을 들여 건축한 신축건물 옥상에 패널로 불법건축물을 짓는 것도 보게 됩니다. 전 국민의 90% 이상이 발코니를 불법개조해서 지붕을 만들고 방이나 창고로 사용하다 보니 십수 년 전에 오히려 법적으로 양성화를 시켜서 불법을 합법으로 바꾸는 역사적(?)인 일이 발생합니다. 지금도 발코니를 거실로 확장해도 되는 '야릇한(?)' 건축법을 만들어 놓아서 '확장형 평면'이란 이름으로 실제 평수보다 바닥을 넓게 사용합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것이 금융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건축을 업(業)으로 하면서 살아가면서 제가 느끼게 되는 것은 '불법건축'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사람들이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성직자나 사회적 명망이 높은 인사들도 건축에 있어서는 '법'에 무신경한 경우가 많습니다. 독야청청(獨也靑靑)하면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사회구조라 할지라도 기본을 지키고자 하는 작은 노력이 모여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도둑'을 양상군자(梁上君子) ¹라고 합니다. 대들보 위에 앉은 도둑을 점잖게 부르는 말입니다.


  나도 혹시 대들보 위에 앉아 있는 도둑이 아닐까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주 1 : 출처 나무 위키 - 후한 때 진식(陳寔)은 학식이 뛰어나고 성질이 온화하며 청렴결백하여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태구현(太丘縣)의 현감으로 있을 때 어느 날 밤 도둑이 그의 방으로 들어와 천장 들보 위에 웅크리고 도둑질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도둑의 기척을 눈치챈 진식은 곧 의관을 정제하고 아들과 손자들을 불러들여 설교를 시작했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착하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의 잘못된 버릇이 성격으로 변하여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 들보 위의 군자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니라." 이 말을 들은 도둑은 깜짝 놀라 얼른 들보 위에서 뛰어내려와 이마를 조아리며 죽여주십사 하고 사죄하자 진식은 그에게 "그대의 행색은 악해 보이지 않으니 먹고 살길이 막막하여 이렇게 된 모양이니, 다시는 이러지 마시오"라고 하면서 조용히 타이르고 비단 두 필을 주어 돌려보냈다. 그 이후 고을 안에는 도둑질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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