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이미지
새로운 먹잇감을 위해 그물을 다시 짜야합니다. 제가 본 거미는 아침 동틀 때 꼭 같은 위치에서 그물을 칩니다. 방금 내어 뽑은 실은 말랑말랑하면서 몸에 착착 감길 것 같은 점성(粘性)이 느껴집니다. 그물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화장지를 작게 잘라서 손끝으로 돌돌 말아 거미줄에 던집니다. 손쌀같이 달려든 거미는 이리저리 돌려보다 짜증이 나는지 거미줄에서 끊어내어 아래로 던집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나중에는 미안해서 그만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못된 짓은 하지 말아야죠. ㅎㅎ 벌써 40년도 훌쩍 지난 일입니다. 설마 제가 지금 저렇게 놀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으셨죠?
영화 '스파이더맨'의 배경은 뉴욕입니다. 뉴욕에 대한 미국인의 자부심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뉴욕의 마천루를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과 그 안에 표현되는 도시의 야경과 스카이라인이 '역시 대도시'라는 감흥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2005년 영화 '마다가스카'에 나오는 4명의 동물이 도입장면에서 자기들은 '세계최고의 도시에 살고 있는 뉴요커'라고 외칩니다. 대표적인 할리우드영화의 '자뻑'대사가 닭살을 돋게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스파이더맨이 건물에 뿌린 거미줄은 누가 처리할까요? 도시가 스파이더맨 때문에 엄청 더러워질 것 같다는 괜한 걱정을 합니다.
건축물 외벽에 ‘고압 물세척’을 의뢰한 적이 있습니다. 아내처럼 보이는 직원이 일 하는 모습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찍어가며 기록으로 남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스타그램에 자료를 올리고 의뢰인에게 작업사진을 보내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일도 의욕적으로 하면서 책임감 있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인 업체입니다. '스파이더맨'의 명대사 "피터, 들어봐. 내 말 잘 들어. 넌 선물을 받았고, 힘이 있어. 그리고 커다란 힘에는 반드시 커다란 책임 또한 따르는 거야, 알겠어? -메리 파커 " 영화 상영 후에 스파이더맨이 빌딩외벽에 밧줄을 타고 유리세척하는 장면을 내보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홍콩 빅토리아항구에서 매일밤 8시에 벌어지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s)' 레이저쇼를 보기 위해 저녁이면 많은 사람들이 항구로 모입니다. 2004년에 시작된 레이저쇼가 당시에는 홍콩의 야경을 더욱 빛내게 해주는 획기적 공연이었을 것 같습니다. 현재 홍콩의 레이저쇼의 수준은, '......'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아내와 빅토리아항구에서 레이저쇼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공연 기획자가 우리나라 에버랜드 레이저쇼를 한 번 보면 좋겠다’ ㅎㅎ
도시의 이미지는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의해 각양의 모습대로 생성된다는 것이 신비롭습니다. 동양과 유럽이 다르고, 남미와 북미가 다른 것처럼 각 나라의 문화와 생활방식에 따라 독특하게 만들어집니다. 캐빈린치의 도시의 이미지(Kevin Lynch - The Image of the city)는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작은 책자로 도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최근 공사현장이 중심상업지구 내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침 일찍 현장에 들르면 밤새 화양연화(花樣年華)를 즐기는 젊은이의 자취(?)가 골목에 가득합니다. 출근시간 전후로 청소차가 지나가고 환경미화원의 손길을 거쳐 가면서 평안한 일상의 거리로 돌아옵니다. "어이 젊은이들! 들어봐. 내 말 잘 들어. 넌 젊음이란 선물을 받았고, 힘이 있어. 그리고 커다란 힘에는 반드시 커다란 책임 또한 따르는 거야, 알겠어?" 도시의 이미지는 비단 건물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히어로우는 청소하는 스파이더맨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