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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압축된 삶

나를 반기는 것들

함께 하는 이웃들의 '사람 사는 향기'로 다가오길

by 위엔디

아파트 공동현관에 쌓여 있는 재활용 쓰레기 더미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집안 정리라는 게 하루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니, 한 달은 매일같이 들고 빼고 해야 비로소 정리가 된다. 하지만 오늘도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그네들의 쓰레기봉투들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쓰레기 분리수거가 상당히 편리한 편이다. 아무 때나 정해진 장소에 재활용과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수 있다. 예전에 살던 집처럼 요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직장인에게는 더없이 좋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 달 두 달이 흘러도 이웃집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승강기 문이 열리면 애인도 아닌 쓰레기 봉투가 나를 제일 먼저 반겨준다. 사랑받고 싶진 않지만 마주치는 건 피할 수 없다. 문득 지난 여름 다녀온 대만 가오슝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고 습도까지 높으니 공기조차 무겁고 축축하다. 그래서 낮엔 사람 구경하기 어렵다. 이 도시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쓰레기 처리 방식이었다. 쓰레기 수거 차량이 정해진 시간에 동네를 돌며 도착을 알린다. 주민들은 그 소리에 맞춰 직접 쓰레기를 들고 나와 버린다. 그 짧은 순간, 여기저기서 나온 이웃들과 얼굴을 보며 눈인사라도 나누게 된다. 단순히 쓰레기를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이웃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대만 가오슝지역의 쓰레기 처리차량

우리나라도 과거엔 그랬다. 1970~80년대에는 쓰레기차가 종을 울리며 골목마다 다녔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뛰어놀다 차를 보고 달려와 종소리에 맞춰 현관문 앞을 뛰쳐나오곤 했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대형 아파트가 늘고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서 시스템은 대대적으로 개선됐다. 1995년에는 쓰레기 종량제가 전면 시행되며 분리배출 문화도 자리 잡았다. 그렇게 한국의 쓰레기 처리 방식은 '편리함'을 중심으로 진화했던 것이다.


같은 건물에 살지만 서로를 모르는 시대다. 더 가까이 사는데, 더 멀어진 느낌이다. 아파트라는 공간이 더욱 익명이 되면서, 승강기 안에서 누군가를 만나도 마냥 어색하다. 나라도 먼저 반갑게 인사하지 못하고 있으니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 없겠다. 추운 겨울에도 아낙네 너댓이 냇가에 둘러앉아 빨래 방망이 두드리며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던 시대도 있었고, 대문 열어두고 마을 소리 들으며 살던 때도 있었다.


편리함과 제도는 대만보다 우리가 앞선 거 같은데, 사람 사는 것 같은 부러움도 한 편으로는 밀려온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서 어릴 적 들었던 '찹쌀떡, 메밀묵' 외치는 소리가 그립고, 강냉이 장사 아저씨의 철컹철컹 가위질 소리가 생각나는 이유는 오늘날의 각박함과 메마름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퇴근하면서 나는 아파트 승강기를 타고 올라간다. 문이 열리고 나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어제의 그 종이박스들이 아니라, 함께 하는 이웃들의 '사람 사는 향기'로 다가오길 꿈꿔본다. 오늘은 엘리베이터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분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볼까 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는 그렇게 한마디에서 다시 시작될지 모르니까.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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