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다운 삶에 대한 고찰과 그 기록
임보 중인 강아지의 국내 입양 건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어리고 작으며 소위 ‘귀엽다’라고 불려지는 개들의 입양 문의에 비해 진도 믹스인 임보 견에겐 단 한 건의 입양 건이 들어왔다. 늦은 시간 이 글을 쓰지 않으면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 누구도 아닌 임보 견을 위하여, 그리고 세상의 모든 진도들을 위한 글이다.
임보 견 다코타는 진도 믹스의 중형견이다. 진도라는 개들은 대부분 시골집 마당에 묶여 생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울의 곳곳에 진도들을 본 적이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개들도 몇몇은 묶인 채 반경 1미터 남짓한 공간에서 자신의 생애를 펼쳐나간다.
물론 아닌 개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다. 길을 가다 보면 산책을 하는 진도들을 만나면 신기하고 반가워진다. 하지만, ‘어떤 개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진도들에게는 특별한 행위가 되는 것일까?’ 나의 질문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가, ‘진도들은 왜 마당개여야만 할까?’로 그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인 ‘마당개여야 한다는 편견이 입양 건에 영향을 미쳤을까?'
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나의 직업을 살려 통계 지표를 확인해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저번 주 밤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의 대상은 엄마를 포함한 많은 이들을 거쳐 숙모의 차례가 왔다. 숙모는 임보 견에게 관심을 가졌다. “숙모, 다코타는 집에서 생활해야 해요.” 숙모는 수화기 너머로 소리를 질렀다.
“이상한 거 아니니? 개는 개답게 생활해야지! 개가 집에서 생활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그러니 개들은 밖에서 살아야 해)”
아차, 당황해서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개답게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마당개여야 한다니… 전화를 끊고 개다운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했다. 아니, ~다운 삶이라는 것에 대한 것은 뭘까. 그럼, 고양이는. 소들은. 닭들은. 사람은. 인간은… 그들은 그들답게 생활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집에서 사는 것이 언제부터 인간 다운 삶의 형태가 된 것일까. 우리의 아주 오래전 조상들은 채집 생활을 하며 유목생활을 했을 텐데, 우리는 인간답게 살고 있는 것이 맞을까? 숙모의 한 마디와 매우 저조한 입양 신청건에 대한 소식은 며칠간 나를 맴돌았다.
진도는 마당개가 아닐지도 모른다. 크기가 크기 때문에, 진돗개이기 때문에 밖의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맞다는 생각은 사실 틀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있다.
임보 견 다코타는 마당보다 집을 좋아한다 것을 안다. 다코타를 통해서 알게 된 다코타라는 개는 개들도 감정이 있어서 기분이 좋으면 귀를 찰싹 붙이고 헤~하고 웃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받지 못한 사랑의 결핍 때문인지 다른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면 먼저 달려와 뽀뽀로 질투 어린 애정을 표현하고 목줄에 의지한 채 산책하기보다 안전한 공원에서 자유롭게 뛰고 뒹구는 것을 갈망하며, 폭신하고 부드러운 이불에서 자는 것을 좋아하고 방금 끓어오른 바닥엔 빨래처럼 널브러져 버릴 줄 안다. 다코타는 개들도 나와 다르지 않음을, 다른 강아지들과 같은 대우를 받아 마땅하다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사지 마세요, 입양해주세요. 나는 매주 글을 올린다. 진심을 담아서 그 말이 현실이 되기를 바람에도 나는 다코타가 진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이제는 나보다 더 사랑을 주는 그를 위한 가정이 어딘가 있다면 그게 해외여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진도들이 차별의 시대를 넘어서는 시기를 맞이하기를, 한국에서도 진도라는 강아지가 마당개라는 프레임을 깨고 집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위액트다코타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누군가를 겨냥 또는 지목하는 글도 아니며, 다코타가 다코타 답게 생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이 글로 진도들의 편견에 자그만 금이 갔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