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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당무 Aug 05. 2022

처음 걸어보는 우리 동네 올레길

20코스 김녕리

제주살이 9년 차, 이제야 처음으로 올레길을 걸었다. 무엇이 그리 바빠 제주 올레길도 못 걷고 살았을까. 올레길을 걸었다고 하는 것은 정해진 코스대로 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난 그렇게 걸어 본 적이 없었다. 올레길을 지나다닌 적은 많았을 테지, 사진 찍으러도 다녔을 테고 여행하며 지나다닌 게 전부다.


오름은 많이 다녀봤다. 한라산도 많이 올랐고 오르는 걸 더 즐겨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평지를 걷는 일보다 등산처럼 오르막 길이 더 좋았다. 올레길을 걷는다는 건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 글쓰기 모임 3인방이 올레길을 시작했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어 백련사에 모였다. 멋진 일출까지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정한 코스는 백련사(19코스 끝자락)부터 김녕 하수처리장까지. 대략 5km의 거리이다. 아침 산책은 한 시간 정도가 딱 좋다. 오늘은 환해장성 길, 지질트레일 길을 걷느라 시간이 지연된 것도 있었다.


햇살은 눈부셨고 바다는 잔잔했다. 파도는 없었고 찰랑대는 바닷소리가 예쁘게 들려왔다. 이른 아침이라 마을은 고요했고 거리에는 길냥이들이 가끔 반겨주곤 했다.


아기자기한 마을의 좁은 골목을 걷고 바다가 나오면 바라보고 끊이지 않는 이야기는 걷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예쁜 벽화라도 만나면 사진을 찍는다. 아침에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다. 제주에 살며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일상이다.


환해장성 길을 갈 때는 운도 따라야 한다. 만조시에는 물이 차서 걸을 수가 없다. 다행히 물이 빠져 있었고 우리는 그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 길에서 만난 강아지풀을 보며 또다시 소녀시절로 돌아간다. 집 앞에서도 보고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강아지풀을 거기에서 만난 것도 우리에겐 이야깃거리가 된다. 


바위를 밟고 지나가는 길엔 수없이 많은 '게'들이 도망 간다. 그렇게 많은 '게'를 본 것도 처음이고 신기했다. 이른 아침이라 풀과 풀사이에는 거미줄이 많았다. 난 거미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행히 친구가 앞장을 서서 거미줄을 몸으로 감싸며 지나가 줬다. 고맙다 친구야.


여름이라 구석구석 텐트를 치고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난 이미 10년도 더 이전에 캠핑 고수의 길을 걷다 왔기 때문에 별로 부럽진 않았다. 걱정만 될 뿐이다. 가장 힘든 취미는 캠핑이다. 장비도 많고 돈도 많이 들어가고 할 일도 많다. 


내 젊은 날 번 돈은 카메라와 캠핑으로 다 써버린 듯하다. 지금처럼 가볍게 산책하는 취미가 최고다. 걷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고 돈 안 들고 힘도 들지 않는 완벽한 취미다. 


동쪽 방향으로 걷다 보니 걷는 내내 햇살이 눈이 부셨다. 그래도 햇살은 밉지가 않았다. 우리에게 영롱한 기운을 준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걷고 또 걸었다.


올레길의 매력이라는 게 분명히 있구나! 그 길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걸어보지 못했을 아름다운 길. 그 길에선 생각도 잠시 쉬어간다. 모든 걸 잊고 편안한 마음과 명상하는 느낌으로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머리가 맑아지는 이 아침에 상쾌함 가득한 산책은 그야말로 꿀잠 보다 더 달콤하다. 미라클 모닝 하는 우리 셋에게 좋은 기운과 행복이 함께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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