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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당무 Aug 14. 2022

그대는 꿈의 샹송을 아시는가?

아르디입니다.

오늘 브런치 나우를 둘러보다가 내가 알고 있는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봤다. 글이 없는 사람도 있었고 글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었다. 문득 홍당무는 모르고 아르디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꿈의 샹송이 생각났다. 1999년에 샹송 동호회 사이트를 만들었었다. 디자인도 내가 했지만 코딩도 직접 해서 만든 나의 첫 웹사이트였다.


그때 기억하는 건 나랑 비슷한 동호회의 샹송 천국이다. 그 사이트는 카페 개설로 만든 간편한 사이트였다. 내 사이트 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샹송 동호회 ‘꿈의 샹송’ 회원은 특별한 사람들만 가입하는 그런 곳이었다. 샹송 동호회를 만든 건 당연히 샹송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원이 늘어나면서 모임도 꽤 가졌었고 친한 회원들도 많이 생겼다. 광주에 월드뮤직 라디오 방송하는 분도 있었고 불어를 잘하는 독일에 사는 친구도 있었다. 모임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동갑내기 친구도 있었다. 그 당시엔 mp3를 시디로 굽는 게 유행이어서 노래를 많이 주고받기도 했었다.


브런치를 통해 혹시라도 옛 회원들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오늘은 그리운 ‘꿈의 샹송’에 대해 글을 써본다.


예전에는 광고 배경음악으로 샹송을 많이 사용하곤 했었다. 음악 시디도 ‘CF샹송 모음’ 앨범이란 것도 나왔었고 월드뮤직 음반도 꽤 발매를 했었던 때다. 나는 유독 팝송보다는 샹송에 매력을 더 느꼈다. 불어도 모르면서 샹송을 왜 좋아하냐고 묻는 다면 불어 발음이 좋은 것도 있지만 발음과 잘 어울리는 멜로디다. 서정적이면서 시를 읊는 듯한 노래를 부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바로 ‘프랑스와즈 아르디’의 노래를 들으면서 샹송을 좋아하게 됐다. 그녀와 함께 유행을 탔던 ‘프랑스 갈’이라는 가수도 있다. 둘의 나이는 비슷하다. 그래서 나의 닉네임은 아르디로 시작했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파리에서 ‘프랑스와즈 아르디’의 공연을 보는 거였지만 아직까지 이루진 못했다. 그녀의 나이는 거의 우리 엄마와 비슷해 백발이 다 돼가고 있지만 간혹 노래는 하고 있는 걸로 안다. 한 번 만나보기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2005년도에 파리 갔을 때가 가장 행복했었던 것 같다. 파리는 나의 동경의 대상이었고 에펠탑이 너무도 그리웠던 시절이었다. 어딜 가든 다 내가 아는 노래만 흘러나왔고 호텔에서 TV를 봐도 다 낯익은 가수들이 나와 마치 파리가 고향처럼 느껴졌다. 그때 파리 시내 한 복판에는 프낙이라는 대형 레코드 가게가 있었다. CD를 인터넷으로 유일하게 해외 구매했던 곳이다. 그런 곳에 와 있다는 것이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레코드 가게에 있는 시디를 몽땅 다 사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파리에 가서 살아보는 것.

요즘엔 음악도 잘 듣지 않아 새로 나오는 샹송이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음악은 항상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언제부턴가 음악을 듣는 시간들이 점차 사라져 갔다.


예전부터 CD 모으는 게 취미여서 아직도 프랑스 가수 앨범은 내 음악 시디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지금은 음원으로 듣는 세상이라 시디를 사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나는 가끔 OST나 좋아하는 가수의 CD를 사곤 한다. 프랑스와즈 아르디의 시디 만도 50장은 넘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시디는 다 사모으는 편이다.

빠뜨리샤 카스, 제인 버킨, 프랑스 갈, 미렌파머, 라라 파비앙 등등.


빠트리샤 카스의 내한 공연은 두 번이나 갔었다. 그녀의 공연 티켓을 ‘꿈의 샹송’에서 홍보도 하고 판매하기도 했었다. 제인 버킨 내한공연도 기억에 남는다. 상상의 나라에만 살고 있을 줄 알았던 그녀가 한국에 온다는 소식에 달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했던 노래 francoise hardy의 <soleil> 제주 가서 샹송 카페 했을 때도 르 쏠레이라는 이름을 지었었다. 쏠레이는 태양이라는 뜻이다. 샹송을 좋아했던 시절 샹송 카페를 하고 싶었는데 결국 이루긴 했지만 오래 가진 못했다. 다시 샹송 카페를 오픈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대성리 가는 길에 그 유명한 봉쥬르 카페는 원래 샹송 카페였다. 그곳 사장님이 샹송을 좋아해서 음악 시디 사러 해외도 자주 다니셨다 한다. 91년도 그즈음에 봉쥬르 카페에 갔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그곳은 전혀 다른 느낌의 카페로 변했지만 여전히 기차는 지나가고 낭만이 살아 있어 보였다. 그마저도 오래된 이야기긴 하다.


샹송으로 하고 싶은 얘기는 아직 많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아직 남아있는 것만이라도 글로 남겨보고 싶다. 그때 함께 했던 회원들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있기를 바라본다.


꿈의 샹송, 방장 <아르디>




프랑스와즈 아르디의 솔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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