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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당무 Aug 12. 2022

얼마나 번다고 100만 원이 넘는 오피스텔에 살아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 철이 덜 든 건지. 돈을 벌기 위해 다시 서울에 왔으면 절약이라는 걸 해야 되는데 1년이 넘도록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제주로 이사 간 후에는 서울에는 연고가 없어졌다. 엄마마저 내 곁에 있겠다고 제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시 다니려니 집이 필요했다. 원룸도 알아보고 오피스텔도 알아봤지만 살림살이가 다 갖춰진 오피스텔이 아무래도 좀 편리하긴 했다. 기본적으로 있어야 할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티브이 등등.


최대한 저렴한 걸로 하기 위해 고르고 골라 보증금 1천만 원에 월 55만 원짜리 오피스텔을 봤다. 아 그런데 화장실이 너무 작았다. 부동산에서 옆 집을 한 번 보라고 해서 봤는데 좀 낫긴 했으나 월 60만 원이었다. 그래도 그게 좀 더 나았다. 그러다가 하나 더 보여주겠다며 결국은 마지막으로 본 집이 가장 맘에 들어 계약하기로 했다. 보증금 1천만 원에 월 65만 원이다. 결국은 55만 원 생각했다가 65만 원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다. 거기에 관리비는 인터넷, TV 포함해서 15만 원 내외다. 합치면 80만 원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회사를 다녀야겠지. 집이 없으면 살 수가 없으니. 그렇게 계약하고 난 7개월 만에 집을 옮겼다. 이유는 버스 타고 다니는 게 너무 스트레스였다. 버스 4 정거장 가는데 한 번을 갈아타야 되고 퇴근 시간에 사람은 거의 콩나물시루다. 그 버스가 타기 싫어 퇴근시간만 늦어지고 하루가 피곤하다. 회사 가까운 여의도로 옮기기로 했다. 여의도는 오피스텔이 아주 오래된 것들이 많아 대부분 너무 낡았고 지저분 한 곳이 많다. 넓긴 한데 넓은 만큼 관리비가 20만 원이 넘게 나온다. 새 오피스텔은 몇 개 있지도 않았는데 운 좋게 가까운 곳으로 방이 하나 나와있었다. 창문을 열면 옆 빌딩이 보여 전망은 없다. 하루 종일 블라인드를 내리고 지내야 하는 곳이다. 월세는 90만 원이고 관리비는 14만 원 내외라고 한다. 뜨아, 비싸긴 비싸구나. 고민을 하며 조금만이라도 월세 할인을 해주면 당장 계약하겠다고 했다. 하루 지나 연락이 왔는데 88만 원까지 해준다고 한다.


바로 오케이를 하고 계약을 했다. 관리비 포함 월 102만 원 정도가 나간다. 거기에 인터넷을 별도로 신청해야 했어서 플러스 3만 원 정도가 더 나가는 셈이다. 그럼 총 105만 원을 월급에서 제해야 한다. 버스비 절약하고 하면 지난번 오피스텔보다 약 18만 원이 더 나가는 셈이다. 그래도 걸어 다닌 다는 장점이 뭐니 뭐니 해도 좋았다.


그런데 재택도 생기고 2주에 한 번은 꼭 제주를 내려가니 한 달에 반은 거의 비어있다. 월세는 나가는데 방은 비워놓고 제주를 왔다 갔다 하니 비행기 값도 월 사오십 만원이나 나간다. 주머니에 남는 건 정말 하나도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비행기가 저렴해서 자주 다녀도 큰 부담이 없었지만 위드 코로나로 인해 항공비가 지출을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뭐하자고 서울에서 이렇게 벌어 비싼 오피스텔에 돈 쓰고 하늘에다 뿌리는지 고민에 빠졌다.


이사를 가야겠어서 직방으로 방을 알아봤지만 마땅한 곳은 없었다. 진짜 고시원으로나 가야 하나 그런 생각도 했다. 1년 동안 제자리걸음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에 있으면 나가지도 안는 돈을 서울에선 벌어서 150만 원을 매월 버리고 있으니 차라리 제주에서 대출이자 정도만 버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뿐인가 자잘한 생활비까지 합치면 거의 250은 술술 새는 돈이다. 이걸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던 중 책을 읽으며 다시 깨우친 것이 지금은 절약만이 더 버티는 거라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엔 사업하는 데 마을 발전 기금이 필요하다며 당장 800만 원을 요구한 남편도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나는 당장 돈이 어디서 나오나? 연초에 인센티브 받은 것과 연말정산 돌려받은 것도 몽땅 다 줬는데. 매번 나에게 이렇게 당장 돈을 어디서 꿔오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싸우기 싫어 나는 현금서비스를 받아 800만 원을 줬다. 언제 갚는다는 말도 없다. 생기면 조금씩 준다고 한다. 한숨만 나왔다.


한도가 많은 카드를 하나 줬었는데 결국은 지난달에 230만 원 나온 카드값도 내가 내주고 말았다. 더 이상 나도 나올 구석이 없다. 월급쟁이가 딱 거기까진데 자꾸 어디서 돈을 마련해오라는 건지 신용대출도 받을 대로 다 받아서 도대체 빚을 어디까지 쌓고 살아야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하고는 생각이 너무 다른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 내가 100만 원이 넘는 월세에 산다는 건 너무도 사치이기만 하다. 얼마 전 사촌동생이 제주에 놀러 오면서 알게 된 사실이 외삼촌이 일산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외삼촌은 포항에서 거의 수십 년을 사신 분이다. 무슨 연유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간 건지는 대략 짐작으로 알 수 있었다. 사촌동생이 말하기를 9월에 이사를 가는데 DMC 쪽 신도시로 이사를 간다고 말했다. 나는 그럼 방하나 줄 수 있냐고 외숙모한테 물어보라고 했었다. 외숙모는 다음 날 바로 전화가 걸려왔고 흔쾌히 방을 내주겠다고 했다. 물론 공짜를 바라고 얘기한 건 아니다. 그래서도 안되고 방값은 내고 지낸다고 했다.


나는 뭔가 홀가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약속을 하고는 서울로 돌아와 방을 내놓는다는 걸 계속 잊어 먹고 있다가 어제 집에 들어오는 길에 1층에 있는 부동산에 방을 내놓았다. 그러고는 오늘 아침에 집을 보고 갔는데 바로 계약을 하고 싶다고 해서 나는 최대한 방을 일찍 당겨서 빼주기로 하고 계약을 진행하라고 전했다.


집에 와서 짐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안 입는 옷들은 옷 수거하는 데 전화해서 내일 수거해 달라고 부탁했고 모았던 빈 박스며 버려야 할 것들 정리하고 회사에 보관해도 되는 것들은 내일 갖다 놓으려고 따로 짐을 싸놨다. 제주로 보낼 짐들도 하나씩 챙기며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곳에 가서 큰 박스도 세 개 정도 가져와 담기 시작했다. 보름 안에 집을 비워줘야 되기 때문에 빨리 서두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추석 동안 앞 뒤로 재택근무를 신청해서 열흘 넘게 제주에 가 있을 예정이라 가기 전에 짐들을 다 정리하고 가야 한다. 외숙모가 이사를 하는 날짜는 나보다 더 늦은 날이기 때문에 나는 그 공백 기간 동안 제주에 머물고 이사 들어갈 짐들은 옆집 소영이네 잠깐 맡길 생각이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평소에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던 분들인데 나도 그렇고 삼촌네도 그렇고 나이 들어 만나는 인연인가 보다 생각했다. 생전 연락 같은 것도 안 하고 살았는데 어쩌다 한 번 정도 얼굴 볼까 말까. 외숙모는 오히려 이번 기회에 나랑 친해지면 좋겠다고 말한다.


걸어 다니는 출근길에서 이제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게 됐다. 지하철 타면서 책이라도 보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퇴근시간 지옥철이긴 해도 마음만은 편해진다.

집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친척집이니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고 제주에서 더 많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앞으로 나에겐 좋은 날만 올 거라 믿는다.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이 저기 어딘가에 있다. 요가룸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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