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을 들이기도 전에 임대인과 전 임차인이 청소 문제로 다투고 있었던 그날, 내가 청소할 테니 우선 이사부터 마치자며 호기롭게 건넨 말이 나에게 가장 큰 대미지를 입힐 것이라고는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사 당일부터 이틀에 걸쳐서 욕실 창틀을 뜯어내서 거뭇거뭇 한 곰팡이를 씻어내기 위해 락스와 곰팡이 세제를 섞어 물티슈에 적셔 붙여두고, 천장과 벽면 청소를 했다. 천장은 가정집에서 이렇게 많은 곰팡이를 처음 본다 싶을 정도로 심하게 얼룩덜룩하게 덮여 있었고, 입주청소를 부르자니 번아웃 기간 동안 2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 수입 없이 지출만 있는 상황에서 청소비 지출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천장에 있던 곰팡이들과 세균들을 샤워기로 뿌려가며 박박 솔로 문지르던 중 수시로 물방울이 눈에 튀는 것을 느꼈다. 장장 8시간에 걸쳐 화장실 겸 욕실 과싱크대 등 청소를 마무리했는데, 그날 저녁부터 팔다리에 붉은 반점들이 생기고 이상반응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괜찮아지겠지 하며 녹초가 된 몸으로 쓰러져 잠에 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눈이 떠지지 않았다. 진득한 것이 굳어서 눈썹을 뒤덮은 채, 눈을 뜰 수 없도록 막는 느낌이었다. 부리나케 욕실로 가 세수를 하고 겨우 뜬 눈으로 거울을 보니,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고, 눈두덩이는 퉁퉁 부어 있었다. 수시로 끼는 짓무른 눈곱에 눈이 따가웠고, 반쯤 뜬 눈으로 안과 검진을 받으러 갔다.
의사는 곰팡이균 감염이 있을지 모른다며 100여 가지의 알레르기 검사를 실시했고, 결막염 진단을 내려 독한 약과 스테로이드제를 처방했다. 약을 복용할수록 피부에 발진과 눈 두 덩이가 부어 낫지 않는 부작용이 발생했고, 2주면 나을 거라던 의사는 한 달, 7개월 이상 차도가 없자 다른 병원을 추천했고, 또 그 병원은 다른 병원을 추천하며 안과만 5곳 이상 바꿔서 다녔다. 마지막 안과에서는 이렇게 안 낫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더 이상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는 것도 무리가 될 것 같고, 최대한 자연적으로 회복되도록 안약만 넣고 기다려 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안과 검사와 약 복용을 반복하면서 눈 상태가 나빠졌는지 녹내장 의심으로 대학병원 검진 의뢰서를 써주어 대학병원까지 가게 되었다.
그렇게 이사 후 1년 넘게 안과와 피부과를 전전하며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채 그야말로 방콕 생활을 했었다. 이러려고 이사를 한 것이 아닌데... 왜 나를 일어서지도 못하게 계속 힘든 일이 몰려오는 것일까.
의사도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안과 질환의 후유증으로 나의 눈은 예전과 전혀 다른 눈이 되었다.
항상 눈의 실핏줄들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고, 눈 흰자는 황반변성이 일어나 맑은 눈을 볼 수 없다. 그리고 매년 대학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하고, 시력은 더욱 저하되어 안경을 쓰며 생활하게 되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나의 성급한 오지랖이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일까?..
청소비를 아껴보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맸으나, 병원비로 청소비의 몇 배를 지출했으니 아낀 것은 아니게 되었다. 이사 온 일주일 사이에 발생했던 말벌 출몰, 지네 물림, 홍수로 인한 차량 폐차 그리고 피부· 안질환까지 발생하는 이러한 일들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회복될 사이도 없이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나의 머리를 휘감았고 그 속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지경에 달했었다. 그리고 병원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1년여 기간 동안 나는 이사 온 집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라는 물음만 반복하면서.
그냥 "그런 때가 왔구나" 생각하자.
일홍 작가가 쓴 <행복할 거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의 한 부분이 생각난다.
외국의 한 토크쇼에선
꽃이 시들면 그게 꽃의 탓이냐 묻더라.
내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시들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 꽃처럼,
혹은 때에 맞춰 시들게 된
자연의 순리처럼.
그러나 시든 자리엔
무엇이든 또 피어난다.
계절 지나듯 머무른 공기가 바뀌고
땅이 비옥해지며 화창히
피어날 때가 반드시 온다.
결단코 피어날 자신을 믿어야만 한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꽃이 시들면 그게 꽃의 탓인가"라는 문장에 유독 끌렸다.
각자 자신의 상황과 생각에 맞게 살아가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일들도 경험하게 된다.
그럴 때는 자연의 이치인 듯, 순리인 듯, "그런 때가 왔구나" 생각하며 의연하게 넘겨 보자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동생은 이런 나의 상황을 보았기에 “당장 그 집에서 나와 다른 곳을 찾아보라”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만약 아홉 수나 머피의 법칙이 있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다른 형태의 힘든 상황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 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생겼다. 오히려 번아웃의 침울한 시간보다 다사다난하게 무언가가 내 주변에서 일이 일어나며 생동감을 느낄 수 있으니, 살아보겠다는 의지도 강해지고 전보다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2년만 참자. 2년 계약이 만료되면 미련 없이 떠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2년이 지나 나는 재계약을 선택했다.
나의 손길로 되살아 난 이 집, 나의 의지로 되살아난 나,
그 모든 것이 힘든 상황이 몰려올수록 태연해지는 나를 만들었고, 사사로운 것에 연연하지 않는 나를 만들었다. 경사진 언덕을 오르내리며 종아리 근육은 탄탄해졌고, 언덕 아래 홍수로 침수되었던 신림 별빛내린천은 복구가 되어 한 시간씩 산책길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막막하게 보이던 것들은 시선 전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