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아껴서 지출을 절약해 보자는 마음이 누군가에는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중고거래를 하면서 경험하게 되었다.
서울로 이사를 온 후, 누군가에게는 무용한 물건이 나에게는 유용한 물건이 될 수 있고, 나에게 무용한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물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거리 중고거래에서 많이 활용한다는 당근 앱을 설치한 후 식탁 의자 세트를 3만 원에 구매하고, 와인잔 4개 세트와 와인잔 걸이를 나눔 받기도 했다. 그리고 소장하고 있는 물품 중 컨디션이 괜찮지만 사용하지 않는 제품들을 비워내기 위해 중고 거래로 저렴하게 판매하였고, 나름 중고거래도 신용과 신뢰가 있어서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배달앱 상품권이나 음료 상품권 등도 저렴하게 거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식비라도 줄여보겠다는 생각에 배달 상품권을 5만 원권 2장에 86,000원에 판매하는 자와 거래를 하게 되었다. 계좌주 이ㅇㅇ, 국민은행 끝자리 6677. 이체를 하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느낌이 나쁜 촉은 아닐 것이라 여기며 입금을 완료했다.
채팅 창에서 빠르게 답신이 오가던 그 자는
"2장 86,000원 입금했어요."라는 나의 말에 "이름은요"라고 물은 뒤 잠적했다.
요즘은 입금 후 은행 앱에서 알림이 바로 뜨기 때문에 이름을 묻고 말고 할 것도 없이 해당 금액이 바로 입금 됐다면 나 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물을 때 확신했다. "이런 것이 상품권 거래 사기구나."
판매 계정을 다시 들어가 보니 당근의 온도 41도, 31명 거래 중 31명 만족, 그리고 1년 전 등록된 거래 댓글까지 그대로였다. 그러나 주유 상품권, 배달 상품권, 음료 상품권, 중고 물품 등 수십 건 올려져 있던 판매 내용들이 모두 삭제되어 있었기에 사기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었다.
마치 당할 일을 당했다는 듯, 싸게 사려고 하다 당했다는 듯. 내 속에서 순간 여러 생각들이 뒤섞여 오갔다. 그럼에도 놀라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아, 저런 사람은 저렇게 돈 벌고 사는구나.", "내 돈을 꽁으로 먹고 잘 될 수는 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갈 뿐, 그 사기꾼에게 추가 채팅이나 상풍권을 왜 안 보내는지 묻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애타게 상품권을 달라며 글을 쓴다고 해도 들어줄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사기를 벌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질없는 애원은 사기꾼에게 더 큰 희열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돈 조금 아끼겠다고 저렴하게 판매하는 상품권을 구매하려다 돈을 잃었다는 안타까움보다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 일을 초래한 것은 그러한 사기 수법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의 과오가 첫 번째요,
그런 사람은 어떻게든 사기를 치게 된다는 것이 두 번째요,
사기꾼을 처단하겠다며 경찰서 조서를 쓰고 장기간 스트레스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현재 나의 삶에서는 무가치하다는 생각이 세 번째였다.
그러므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앱에서 사기 신고를 하고,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당 사항을 알리고 계정을 중지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고 후 10분이 지나도록 그 자의 계정은 오픈되어 있었고, 다시 한번 신고를 했다. 5분 뒤, 해당 계정이 사용 중지 되었으며, 나와의 거래 채팅창 역시 사용할 수 없으니 상품권 회수는 영영 안녕이 되었다. 그럼에도 속이 후련했다. 해당 계정을 신고하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나처럼 거래 만족도 100%와 거래 후기 댓글에 속아 신뢰할 수 있다며 또 피해를 입었을 테니, 그것을 방지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해당 계정의 거짓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일말의 사기를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했을 그 자에게도 통쾌한 복수를 한 것이라 생각한다. 저렴한 가격에 상품권 대량 판매 글에 더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터, 큰 사기를 저지르지 못하고 나로서 거래가 끝나면서 그 계정에 쏟은 노력이 물거품 되었으니 그것으로 나름의 위안을 삼으면 된다.
생각해 보면 나는 종종 이런저런 일로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피해를 입어도 피해를 입은 나 자신이 부끄럽고 속상하지만 불쌍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말 못 한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호주에서 중고차를 한국 사람과 거래하면서,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수리할 부분을 정비소에서 확인하고 청구하면 비용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을 자필로 작성해 주었다. 그래서 믿고 거래 하루 뒤 정비를 하고 연락했을 때 하루 사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험한 말을 하며 알아서 하라던 사람도 경험했었고, 그 외 장외주식이나 기타...
믿음이 믿음으로, 신뢰가 신뢰로 오지 않더라도.
가만히 글을 쓰다 보니 하와이대저택의 <생각의 연금술>에 나온 문장이 떠오른다.
"당신의 세계는 당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
위 내용과 비슷한 의미로 예전에 읽었던 책의 한 문장과 연결되는 것 같았다.
'사람 참 좋다고 소문난 사람인데, 자주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있다. 학식도 있고, 사회생활도 잘하는 사람이지만
왜 사기꾼에게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일까?
바로 상대를 자신과 같은 사람일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상대를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거래에 있어서는.
그러나 좋은 사람 옆에 좋은 사람이 일반적이겠지만,
좋은 사람 옆에 불청객도 언제든 붙을 수 있다.
그래서 세상에 자신의 생각을 투영하면서 살아가더라도 타인 역시 자신과 유사한 생각을 할 것이라는 예단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번아웃을 겪기 전, 믿었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게 되면서 대인관계를 차단하려 노력했었다.
만약 이와 같은 상황을 그 당시 겪었다면 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며 모든 사람들을 경멸했을지도 모른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에피소드는 번아웃을 극복할 즈음 겪었다. 다시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지금은 이런 일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가 달라졌다.
마음이 깨져있을 때의 상처는 스치기만 해도 쓰라리고 모든 것이 네 탓처럼 생각되지만, 마음이 단단해졌을 때는 창을 던져도 방패로 방어할 수 있는 힘이 있어서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고 현실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내 안에서 생각하는 방향대로 흘려보낼 수 있다.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남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