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땜했다 생각하자. 다 지나갔으니 이제 잘 살일 만 남았다." 라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짐정리를 하기로 했다.
집 계약 당시 주차 공간이 4자리 있으니 선착순으로 주차를 하면 된다고 해서 이 집을 선택한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이삿짐을 내리며 주차를 하려고 하니 거주자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서 "당장 차를 빼세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아, 000호 이사 온 사람인데요. 여기 주차 가능하다고 하다고 들었어요."라고 말하니,
"주차장 수리에 돈 낸 사람만 주차 가능하니까 차 빼세요. 당장."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후 사정을 모르니 우선 짐만 내려놓고 차를 옮기겠다고 말한 뒤 주차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이 집 주변은 오르막 경사가 심한 구간들이 있어서 경사각 70도 이상의 오르막 구간에서는 차가 오르내릴 때 미끌리는 사고가 많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오다 베테랑 기사분도 미끄러지는 차를 어쩌지 못해 바퀴만 헛돌다 뒷차를 박는 것을 보았으니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평지 주차 자리를 알아보았으나 며칠 후부터 자리가 난다고 하여 예약을 해두고 집 근처 골목 끝 주차자리에 임시로 사용하기로 했다. 좌우, 후방까지 2미터 정도의 벽으로 둘러싸여 전방만 뚫린 곳, 나름 안전한 곳에 주차했다는 생각에 가뿐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 나머지 짐 정리를 했다.
자연재해의 위력을 느끼게 된 날.
이사 다음날부터 장맛비가 거세게 시작되었고, 험난한 이삿날은 피한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뉴스에서는 연일 대서특필을 하며 강남과 신림 지역에 침수가 우려되니 저지대의 사람들은 피하라는 방송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삼일 연속 이어지는 비에 '신림지역 침수'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주민센터에서 수시로 울리는 경고 사이렌을 들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 느낄 수 있었고, 방송에서는 “피해가 우려되니 외부 출입을 자제하라”는 당부를했고, 나는 성실히 수행하며 3일간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며칠만에 집 밖을 나와 보니 내가 사는 곳과 주변 다른 집들의 침수 피해는 없어보였다. 차량을 예약한 주차자리로 옮기기 위해 집 근처로 나갔다. 세상은 다시 평온해졌고, 언덕 아래 침수지역들도 긴급 복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빨리 복구되길 바라며 차를 타려고 오른발을 운전석 밑으로 넣는 순간, 발 밑으로 질퍽하는 느낌이 들었다....
싸했다. 다시 육감과 직감이라는 것이 발동했다. 꿉꿉한 냄새와 함께 처음 느껴보는 질펀한 불쾌함... 생전 처음 겪는 일이지만 이것은 누가 보아도 차량 침수였다. 발매트를 들어보니 물이 자박하게 차 있었고, 라인을 보니 차량 시트 아래까지 물이 찼었던 것 같았다. 엔진룸을 열어보니 물기는 보이지 않았고, 뒷좌석 발매트를 들어보니 역시 물기가 남아있으며 트렁크를 둘러보니 역시 젖어있었다. 도대체 왜, 어떻게 그 언덕배기에서 차량이 침수가 된 것일까?
이것은 머피의 법칙일까?
집 주변 빼곡한 빌라들, 그 많은 주차장에서 침수차는 단 하나. 내 차뿐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도저히 설명할 수도 없고 어이없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며칠 거세게 쏟아진 빗줄기들이 주차장 벽에서 튕겨 벽과 가까웠던 트렁크 부분으로 유입됐던 것이 아닐까 짐작했다.
서둘러 차량 스팀세차가 가능한 곳을 수소문해 봤지만 강남과 신림일대에 있는 클리닝 업체들은 이미 예약이 3개월치가 차있었고, 외곽으로 나간다고 해도 견인을 해서 대기해야 한다는 답변들이었다. 그러다 집 주변에 위치한 클리닝 업체 한 곳에 자리가 있어 70만 원에 가능하다는 말에 눈 뜨고 코베이는 격이지만 차량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차를 맡기고 3일 후에 찾아왔다.
차량 보험으로 침수 피해 보상을 받아 50만 원의 지원을 받았기에 20만 원을 자비로 부담했지만, 그래도 차를 지킬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배터리가 방전되어 출동 서비스를 불러 시동을 거는데, 갑자기 엔진 이상음이 느껴졌다. 차가 달달달달 얕은 소리를 내며 떨림이 발생하는 것을 배터리가 충전되는 20분간 지켜보며 출동 기사는 침수로 인한 엔진 손상이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말했다. 급히 보험사에 연락하니 침수차는 엔진 부분이 가장 큰 손상을 입어 운행이 불가할 수 있으므로 조속히 전손처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답변을 들었고, 이튿날 차량 인수인에게 애지중지 아끼며 10년은 함께하자 했던 차를 10개월도 안 되어 폐차장으로 보내게 되었다.
이사 후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아 겪은 벌레 떼와 지네로 인한 공포, 홍수로 인한 차량 침수까지.
평상 시 혹은 평생에 한 번 없을지도 모를 일들을 며칠 사이에 겪게 되면서 이것이 삼재나 머피의 법칙이라 불리는 일련의 패턴이 아닐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일은 이미 일어났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할 수 있었던 한 가지는 피해에 대한 생각에 잡혀있지 않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그래 이미 일어난 일을 어쩌겠는가.
"주차 자리가 없으니 고생하지 말라고 자연이 이렇게 차량을 정리해 준 것이구나!"라는 되지도 않는 위로였지만 가장 큰 위로의 말을 건네며 마음에서 떠나보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