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이 말은 언제부터 나온 것일까?
삶과 죽음이 있는 인생을 지배할 수 있는 의지의 힘이야말로 인간의 영혼이 도달할 마지막 종착역이라고 말하며 정신이 지배하는 삶을 살다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한 독일 철학자 니체.
그동안 동서양 철학자들의 명언을 읽으며, 삶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입힐 수 있었다. 그래서 인생이 힘들더라도 애써 밝은 척, 괜찮은 척하며 보기 좋게 살아가려고 애썼다. 그러나 니체의 글을 묶은 책을 읽은 후, 삶을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신랄한 비평과 염세주의적 사고로 쏟아내는 철학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읽히지 않는다.
나는 읽히지 않을 것이다.
읽히지 않는 것이 나의 승리다.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느니,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책을 쓰고 싶다.
아무나 뜯어먹을 수 있는
정신의 고깃덩어리로 사느니,
아무도 먹을 수 없는 돌멩이로 죽고 싶다.
나의 책은 극소수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독자들이 아직 태어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날은 내일 이후.
어떤 사람은 죽은 뒤에 태어난다.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중에서
글, 책.
누군가가 읽어주지 않는다면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들이다.
명언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혹은 어떠한 계기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된 명언이 아닌 이상 직접 철학자의 생각을 알고자 찾아보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므로 일부 철학자들의 명언으로 삶에 대해 전체를 깨달은 듯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니체의 책을 읽으면서, 책의 제목이자 가장 와닿았던 글귀인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로 인해 마음에 묵직한 물음이 생겼다.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걸어야 한다.
그것에는 분명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단련시키는 고통이다.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준다 해도
한 걸음, 단 한 걸음도 타협하지 말라!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중에서
이와 반대로 혼자에 몰입하다 보면 자신을 파괴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고독과 함께 지냈다.
나는 침묵마저 잊어버렸다.
식인종의 나라에서 고독한 자는
홀로 있을 때 스스로를 먹어치우고,
대중과 함께 있을 때는
대중이 그를 먹어치운다.
그러니 어느 쪽이든 망설이지 말고
택하라.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중에서
인생은 혼자가 맞는 것일까, 대중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특히 작금의 시대에서 고립된 상태로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조차도 불가능해 보인다. 누군가는 홀로 있는 공간마저 찾아낼 테니.
나는 번아웃을 경험하는 동안 2년은 고립을 선택했었고, 그전과 후는 사람들과 적당히 섞이는 것을 선택했다. 사회 속에 섞이기로 했다면 대중 속에 삶과 혼자만의 시간의 비율을 7:3 정도가 최대일 것 같다. 30%의 시간을 나를 위해 보는 것이 적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수면 시간을 제외한다면 아마 10%도 채 혼자 지내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누군가는 혼자 여행 가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말 많은 사람들 틈에서 숨이 막힌다고 말한다. 그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홀로 설 수 있는 단단함을 키울 수 있으면서도 대중 속에서 무탈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율. 그 비율만 잘 지킨다면 '나'를 잘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