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는 이유 <붓다, 나를 흔들다>_법륜

by Wealthy 웰씨킴


저자 - 법륜

법륜法輪 스님은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평화 운동가이자 제3세계를 지원하는 활동가이며 인류의 문명 전환을 실현해 가는 사상가, 깨어있는 수행자이다. 1988년,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보살의 삶을 서원으로 한 수행공동체 ‘정토회’를 설립했다.

법륜 스님의 법문은 쉽고 명쾌하다. 언제나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추어 깨달음과 수행을 이야기한다. 법륜 스님의 말과 글은 빙 돌려 말하지 않고 군더더기 없이 근본을 직시한다. 밖을 향해 있는 우리의 시선을 안으로 돌이킨다.




붓다 나를 흔들다_법륜.jpg <붓다, 나를 흔들다>_법륜


하루에 몇 번의 화를 내었는가 생각해 보면, 사람들과 접점이 없는 오롯이 혼자인 순간에는 화를 낼 일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타인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일까?

왜 혼자일 때는 화가 나지 않다가도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어떤 행동을 보면 마음에 화가 이는 것일까?

무엇인가에 의해 화가 났지만, 종국에는 화가 난다는 감정에 얽매여 더 화가 난다.


항상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나의 감정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알아야

더 어긋나기 전에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1일 1독 성장의 시간은 <붓다, 나를 흔들다>를 통해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만약 손님이 가지고 온 선물을

당신이 받지 않으면

그 선물은 누구 것이 됩니까?”

“그야 선물은 가지고 온 그 사람 것이 되지.”

그러자 다시 부처님이 빙긋이 웃으면서

“당신이 나한테 욕을 했는데

그것을 내가 받지 않으면

그 욕은 누구 것이요?”

<붓다, 나를 흔들다> 중에서



<인사이트>

법륜 스님은 즉문즉설을 통해서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말라' 전한다. 그것은 위의 부처님의 일화처럼 타인의 부정적 감정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은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말과 상통한다.


타인의 작은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는다면 그것을 반사하는 자세를 연습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독한 말을 하고 욕을 하더라도 내가 받지 않는다면 그 사람 입만 더러워지는 것이다.

타인의 감정 쓰레기는 타인의 것으로 남겨두어도 괜찮다.






바람을 향해 던진 흙이

오히려 자신을 더럽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화내고 짜증 내고 미워하는 것은

남을 해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해칩니다.

<붓다, 나를 흔들다> 중에서



<인사이트>

화를 내고 싶어서 내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기도 하며 그렇지 않기도 하다.


특정한 트리거가 당겨질 때 화를 내거나, 특정한 대상에게 유독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기억까지 되짚어가며 다시 화를 내게 되는 아둔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반복되는 것을 컨트롤하기는 쉽지 않으니 내버려 두는 것이다.


사실 화라는 것은 순간 내지르고 나면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아도 조금만 지나 보면 후회가 더 큰 경우가 많으므로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기 좋은 수단은 아니다.


그래서 화가 날 때면 수시로 생각해야 한다.

잠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화는 사그라들고 조금 더 나은 방법을 찾게 해 준다.

이 화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 화를 내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화를 내고 나면 나의 기분은 어떠할 것인가.






묵언을 하라는 본래의 뜻은

입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분별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왜 입을 다물라고 하느냐?

입에서 무슨 소리를 낼 때

남을 해치는 말 아니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니까

그럴 바에야 입을 다물라는 겁니다.

이 분별심을 버리는 것이 침묵입니다.

<붓다, 나를 흔들다> 중에서



<인사이트>

침묵의 의미.

쓸데없는 말이나 상처 주는 말을 하려거든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침묵하는 대신 쏟아낸 말들로 인해 속이 시원했던가?

뱉고 나면 찜찜함이 남아있지는 않았었던가?


내 기준에서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의 분별심을 두지 않고

악의가 없는 가치 있는 말을 하도록

침묵을 먼저 배우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당장 부처님처럼은 못 되더라도

백 번 중에 한 번은 흉내를 내면서

자꾸 부처님을 닮아가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는 부처님처럼 될 것입니다.


그래서 번뇌가 없는 사람,

괴로움이 없는 사람,

어떤 경우에도 걸림이 없는 사람,

속박이 없는 사람,

해탈과 열반을 증득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붓다, 나를 흔들다> 중에서



<인사이트>

'닮아간다'라는 말의 방향이 본받아야 할 사람에게 있을 때는 성장할 수 있다.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의 한 가지 면이라도 보고 배우며 닮아가려고 할 때, 나에게 보이지 않았던 혹은 숨어 있었던 그 모습들이 내 모습이 되면서 성장하게 된다.


사업가 백종원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처음부터 선한 마음으로 사업을 한 것이 아니라, 선한 사업가처럼 닮아가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보이게 된 것뿐이다."


꼭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특정 종교적 대상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더라 해도 우리 현실에서 필요로 하는 본받을 점이 있는 대상을 닮아가는 것이 더 쉽고 빠를 수 있다.

백 번에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닮아가다 보면 자신이 바라던 좋은 모습이 체화되어 그리던 모습으로 빛나고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유형

첫째 범부중생 - 어리석은 중생

둘째 현인 - 현명한 사람

셋째 성인 - 불교 식으로 보살

넷째 깨달은 이 - 부처님

<붓다, 나를 흔들다>중에서


<인사이트>

범부중생은 노는 것을 즐기고, 남탓하며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현인은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며 살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돕지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범부중생과 현인 사이에서 머물러 있을지 모른다.


성인은 성실히 일궈낸 과업들을 범부중생이 필요하다면 나누고, 깨달은 이는 무위의 존재로 베풀었다는 생각 없으니 섭섭함이나 원망도 없는 무념의 상태로 사는 것이다. 20살의 나이가 되어 성인이 되는 것과 보살의 단계에 이르러 성인이 되는 것은 다른 의미이다. 내려놓고, 비우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 바로 성인이다.


법륜스님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리석은 범부중생이 되지 않고, 성인과 깨달은 이, 즉 보살과 부처의 길을 가야 한다고 전한다. 그러나 감정을 교류하며 살게 되는 사회에서 보살과 부처님의 단계에 들어서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무에서 유를 만들고 다시 무로 돌아가듯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성인과 부처와 같은 길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은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단계로 나아가든 "왜, 그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붓다, 나를 흔들다>를 통해 자아성찰과 감정을 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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