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감독 박강아름 (독립잡지 언니네 마당 Vol.09 中)
살다 보면 자꾸 상황 탓을 하게 됩니다. 나약한 의지와 신념 따위가 밥벌이에 무슨 도움이 되나, 라는 생각을 인정하기 싫어서 버둥거리면서요. 다큐멘터리 감독 박강아름 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는 것이 얼마나 구차한지 쥐구멍으로 숨고 싶습니다. 손에 낫을 들고 장애물을 하나씩 베어가면서 한발 한발 전진하는 혁명적 소시민의 얼굴이 보입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삶의 진정한 혁명가, 박강아름 언니가 프랑스에서 보내온 글입니다. - 언니네 마당
안녕하세요.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를 연출한 감독 박강아름입니다. 일여 년 전에 남편과 함께 프랑스의 중서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 푸아티에(Poitiers)에 유학 차 도착했습니다. 최근에는 딸 보리를 출산해서 현재 이곳 푸아티에(Poitiers)에서 남편과 보리 그리고 세 살 된 강아지 슈슈, 이렇게 네 식구가 살고 있어요. 저는 지금 전기장판 위에 이불 깔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고요. 제 발 옆에는 슈슈가 잠을 자고 있고, 남편은 딸에게 분유를 먹이고 있답니다.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한 방법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를 제작하게 된 동기는 개인적이에요. 저는 십 대 때 체형과 머리 스타일로 또래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어요. 이십 대 때는 옷 입는 스타일까지 더해져 친구들과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한테 외모에 대한 조언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십 대와 이십 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몸과 외모에 대해 타인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살아온 셈이죠. 저는 오히려 이에 대해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지속적으로 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호호, 하면서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사람들이 던지는 말에 무척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진짜가 아닐까, 싶었거든요. 내가 연애를 하지 못하는 게 내 외모 때문이 아닌지 자문하게 되는 순간이 와 버린 거죠. 그래서 영화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산 넘어 산을 넘어야 했던 제작 과정과 배급
제작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사적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기본 제작비는 있어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기획서를 써서 사전제작 지원에 응모했지만 모조리 떨어졌거든요. 3-4 년에 걸쳐 꾸준히 냈는데 정말 다 떨어졌어요.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제작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일하면서 학자 금 대출금도 갚아야 했고, 제 입에 풀칠하기에 바빴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어느 정도 안정적 생활이 가능해져서 촬영을 이어갔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받아줄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은 늘 따라다녔어요. 국내 모든 다큐멘터리 영화 사전제작지원에 기획서를 제출했지만 모두 거절당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상처가 컸던 것 같아요. 한 번은 국내의 한 영화제에서 진행하는 사전제작지원 면접장에서 중년 남자 심사위원이 제게 ‘뭐가 그리 외롭냐, 그리고 영화가 무슨 학예회냐'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었죠. 저는 거기서 바보같이 울어 버리기도 했고요.
그렇게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하고 있을 때, 모임에서 만난 또래 친구들한테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에 대한 지지를 받았어요. 거기서 만난 한 친구가 현재 프로듀서로 지원을 해주었고, 또 한 친구가 현재 제 남편인데 같이 영화 구성을 다시 짰죠.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지지해주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완성해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퇴직금으로 영화의 후반 작업을 할 수 있었죠.
어렵게 영화를 완성했지만 한국 독립영화의 배급 구조는 처참했어요.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부딪치니까 울고 싶더라고요. 영화제에 출품하면서는 ‘픽미, 픽미’를 외치고 있는 꼴이었고, 첫 번째 영화제에서마저도 픽업이 안 되면 ‘픽미, 픽미’를 외칠 수 있는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게 현재 독립영화의 배급 구조라는 걸 체감했죠. 영화제를 통해 소수의 관객들이라도 만날 수 있었던 건 정말 운이 좋았어요.
2016년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신인경쟁부문에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가 진출했어요. 영화제가 열리는 시기가 출산 직후였던 터라 저는 직접 관객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영화제에 참석한 저희 스태프들이 전해준 말에 의하면, 해외 관객들과 국내 관객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지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대요. 국내 관객은 영화 속 박강아름이라는 캐릭터가 본인의 외모에 대해 타인들로부터 꾸준히 지적을 받는 부분을 보며 무척 공감을 하는 데 반해 유럽 관객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고 해요. 어떻게 타인의 외모에 대해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느냐, 는 거죠. 이런 다른 반응이 흥미로웠어요.
보이지 않는 거대 메커니즘 속에서 소모품이 되길 거부하고 재미를 찾아서
프랑스로 유학을 오게 된 건, 여러 이유들이 섞여 있어요. 프랑스 행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시스템에 지쳐 있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관심을 갖는 소재와 주제는 모두 우리 사회에 어떠한 거대한 메커니즘에 의해 자꾸 무시되고 거절당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데 결국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윗세대로부터 소모당하고 무시당하는 일에 지치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동안 이를 악물고 모은 최소한의 돈만 들고 남편한테 이 나라를 뜨자고 해서 일단 떠난 거예요.
그런데 막상 오니까 삼십 대 중반에 어학부터 시작하는 유학 생활이 만만치 않았어요. 5년은 버틸 거라고 생각하고 모아 온 돈은 1년 만에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불어가 느는 것보다 외국인, 그것도 아시아인으로 유럽 땅에서 체류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악착같이 재밌는 게 뭐가 있을까를 찾았어요. 요리를 공부하는 남편의 아이디어로 저희가 사는 집에서 예약제로 받는 식당을 열었어요. 이름은 <외길 식당>이라고 이름 붙였고요(네, 맞아요. 웹툰 <이말년 시리즈>에 자주 등장하는 상호예요). 영화를 공부하는 아내를 따라서 프랑스 유학 길에 동참한 삼십 대 중 반 남성이 아내에게 밥해주면서 1년을 버티다가 아예 집에서 식당을 열기로 한 이야기예요. 저는 이 식당의 매니저고요. 일주일에 금요일과 토요일, 하루에 한 테이블만 예약제로 손님을 받고 있어요. 촬영에 응해 주시는 손님에게는 맛있는 디저트를 무료로 드리고 있답니다. 헤헤.
외국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출산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제가 딸 보리를 출산한 지 41일째 되는 날이에요. 프랑스에서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한국에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 가장 와 닿는 극명한 차이는 ‘돈’인 것 같아요. 한국은 임산과 출산까지 모두 개인의 호주머니에서 비용이 나가는 반면에 프랑스는 국가가 이 비용을 책임진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어요. 게다가 프랑스는 3개월 이상 체류한 외국인에게도 내국인과 동일한 내용의 복지 혜택이 주어져요. 임신 6개월부터 출산까지 모든 비용이 무료죠. 아마 제가 한국에서 비정규 직 노동자로 여전히 일하면서 임신과 출산을 겪었다면 거절과 착취라는 경험만 제 안에 계속 쌓였을 것 같아요. 아마 속에서 불이 났을 수도 있어요. 기간제 교사 생활을 4년 하면서 그렇게 위가 자주 아팠던 게 이 이유였던 것 같아요.
불안정하지만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생활 선택
저는 이곳에서 외국인으로 불안한 생활을 몇 년 더 하면서 영화 몇 편을 더 만든 후, 한국으로 들어갈 것 같아요. 어쩌면 한국에서보다 더 불안하고 불안정한 생활이지만 이곳에서는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어요. 출산으로 인해 <외길 식당> 촬영을 잠시 쉬었는데 다시 식당 문도 열고 촬영도 다시 시작하려고 해요. 그리고 이 작업이 끝나면 바로 한국의 페미니스트이자 화가이며 작가인 ‘나혜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거예요. 가제는 <혜석 언니>예요.
<외길 식당>에 놀러 오세요!
프랑스의 작은 도시 푸아티에에 오시면 <외길 식당>에 한 번 들르세요! 메뉴와 예약 방법은 제 블로그(http://blog.naver.com/ areumfilm)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비어 있는 작은 방이 있어서 매우 합리적인 가격으로 숙박도 가능해요. 저희 집에 머물면서 ‘외길 식당’ 밥도 드시면서 하는 프랑스 여행도 괜찮지 않을까요? 헤헤. 일 년 후쯤 완성된 영화 <외길 식당>으로 다시 찾아뵐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박강아름 Filmography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2015, 다큐멘터리, HD, 93분)
- 2016 제29회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 신인 다큐멘터리 경제부문 진출 2015 제20회 인디포럼 올해의 돌파상 수상
<균형> (2010, 실험, HD, 44분)
<육체의 방> (2008, 실험, HD, 4분)
<내 머리는 곱슬머리> (2007, 다큐멘터리, DV, 7분)
<똥파리의 꿈> (2006, 극영화, DV, 26분)
<파리의 노래> (2006, 애니메이션, DV, 4분)
<유실> (2004, 극영화, 16mm, 16분)
<물어보는 거야, 너한테> (2000, 다큐멘터리, DV, 25분)
<섹스> (1999, 실험, DV, 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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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마당 9호 "하자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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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잡지언니네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