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이기는 사랑

《작별하지 않는다》_한강(문학동네, 2021)

by 우주인

작가 한강은 2024년에 노벨문학상 수상 후 세계의 관심을 받으면서, 그의 책 중 어느 책을 먼저 읽는 게 좋겠느냐는 질문에 그때까지 나온 많은 작품들 중 가장 최근작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추천한 바 있다. 이 책은 2021년에 출간되었고, 제주 4.3을 다룬 장편소설이다. 국가 폭력이 자행한 집단 학살과 역사의 트라우마를 다루지만 사건으로 직진하지는 않는다. 화자인 경하의 개인적 고통이 친구 인선의 사고와 고통으로 연결되면서, 경하는 인선의 새 ‘아마’를 구하기 위해 제주로 간다. 이렇게 돌아서 시대와 역사의 비극인 4.3으로 다가간다. 4.3은 국가 공권력(당시 이승만 정부)인 군과 경찰, 그들이 동원한 민간 무장대인 서북청년단 등이 자행한 집단 학살 사건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고통’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고통을 겪고 있다. 경하는 고질병인 편두통뿐만 아니라 죽으려고 작정한 삶의 정신적 고통, 인선은 잘린 손가락으로 겪는 끔찍한 신체적 고통, 인선의 어머니는 어려서 가족을 모두 몰살당한 후 실톱을 요 밑에 깔고 자야만 할 정도로 겪게 된 트라우마, 아버지는 당시 당한 고문으로 인한 손 떨림과 심장병 등, 그런 것들을 알게 된 인선의 마음속 고통, 이들 세 식구는 모두 신경쇠약을 겪으면서 삶을 견딘다.

그러나 고통과 더불어 ‘사랑’이 있다. 비극과 고통 속에서도 사랑은 없어지지 않는다. 자식에 대한, 형제에 대한, 부모에 대한, 친구에 대한, 그리고 반려새에 대한 사랑이 떠나가지 않는다. 몸이 떨어져 있어도 영혼이, 기억이, 함께 한다. 제주에서도 외진 곳에 어떻게 혼자 살 수 있느냐는 경하의 궁금증에 인선은 혼자가 아니라며, ‘아마’가 있다고 한다. 그녀가 키우는 새인 아마에 대한 고요한 사랑을 얼굴에 드러내며. 같이 키우던 또 한 마리의 새, 아미가 몇 달 전에 죽고 난 후, 아마는 아무것도 안 먹고 사흘을 물만 먹었다며, 인선은 말한다.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197쪽) 두 마리 새 중 한 마리가 죽었지만, 정말 헤어진 건 아니라는 거다.

엄마는 일흔둘에서 일흔넷의 나이, 무릎 관절염이 악화되던 때, 신체적 고통도 무릅쓰고 어린 시절 잃어버린 오빠의 유해를 찾기 위해, 관심을 놓는 법 없이, 계속 자료를 찾고, 다른 유족들과 함께 행동에 나선다. 엄마는 유족회에서 가장 열정적인 회원이었다. 형제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다. 한강은 인터뷰에서 인선의 어머니는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한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깊이 다가오는 것은 인선과 경하의 우정이다. 서로 간의 깊은 신뢰, 무엇을 하든 상대를 믿을 수 있고 상대에게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고질병인 편두통과 이어지는 위경련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느낄 때, 경하는 인선이 곁에 있으면 해 줄 말을 떠올린다. “너 전에 콩죽 먹고 나은 적 있지. 가서 콩죽 먹자.”라고 말하며 자신 있는 미소를 눈가에 짓는 인선을 그리워한다.

한강의 글은 천천히 읽어야 한다. 무슨 이야기가 펼쳐지느냐가 아니라, 어떤 문장으로 쓰여 있는지를 봐야 한다.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중에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이 들어 있는데, 더불어 ‘음미하면서 사유해야 할 글’이다. 작가의 마음을 전하면서 독자의 마음도 울리고 성찰하게 만드는 문장들이다. 또한 시어처럼 상징을 띠다가도 상황이나 사물을 묘사하는 장면은 아주 실감 나게, 그림이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인선이 봉합 수술을 받은 손가락 묘사 장면은 보는 독자들도 그 처절한 고통이 그대로 느껴져서 흠칫하게 된다. 작가 한강은 우기는 게 없다. 모든 문장은 물 흐르듯 연결되고 당연히 그렇다는 듯 전개된다. 모든 문장이 살아있고 세심하다.

책장을 덮어도 책이 쉬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읽은 내용을 되새김질한다. 울고 싶기도 할 것이고 화가 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슬픔 속에서 그 어둠 속에서 그래도 빛으로 남아 있는 건, 작가의 바람대로 ‘사랑’이리라.

삶이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이 책을 펼쳐 보자. 한 문장 한 문장 의미를 새기면서 찬찬히 보자. 진정한 고통을 읽으면서 나의 고통은 하찮아질 수도 있겠고, 동질감에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고, 순간을 넘길 용기를 얻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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