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클럽에서 만나요 #12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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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이 건네셨던 피로회복제는 큰 도움이 되었다. 곧장 몸살이라도 날 것만 같았던 몸에 좋은 영양분이 되어 그날의 근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회원님들이 주시는 간식처럼 그저 고생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게 화근이었을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특정 회원님이 건네주시는 먹을거리를 거절하는 것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가.
내가 여기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사람이 자주 바뀌었다고 한다. 누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보겠다며 근무 한 달 만에 나갔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일주일도 안 지나서 갑자기 집에 어머니가 아프시다며 일을 그만두었으며 누구는 일이 전산 업무가 어렵다고 하루 만에 포기를 했다.
헬스장을 이용하는 회원님들 입장에서도 직원이 자주 바뀌는 탓에 이만저만 불편한 점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다못해 사람이 구해지지 않는 동안에는 여자탈의실의 꽉 찬 수건 포대를 회원님들이 직접 갈아치운다거나 탈의실 청소를 해가면서 운동을 다니신 듯싶다. 실제로 빵빵하게 가득 찬 수건 포대를 회원님 중 한 명이 직접 꺼내서 나오시는 장면을 면접날 직접 목격할 정도였다.
이렇듯, 일손이 필요한 도중에 새로운 인력이 들어왔으니 안 반가울래야 안 반가울 수가 없을만하다. 따라서 회원님들의 간식 공세와 나를 향한 호기심이 담긴 질문들, 오래 일하면 좋겠다는 덕담 등이 모두 납득이 될 만도 했다. 물론 누군가의 간식과 질문에는 흑심이 섞여있을지는 몰랐지만.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주장하며 내게 공평성으로 보상하라며 번호를 요구하셨던 회원님은 꽤나 규칙적인 사람이었다. 언제나 정각 7시 즈음에 입장하셨고, 약 2시간가량 운동을 하다 떠나셨다.
이 패턴을 어떻게 알았냐고요?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동안은 그저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하듯 매일 헬스장에 나온다는 사실정도만 인지되고 있던 중이었다. 직원으로서 의무를 다해 인사를 건네다 보면 자연스레 매일 오는 사람들의 얼굴 정도는 익혀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구체적인 시간대를 체크해 두기 눈여겨보기 시작한 건 그가 건넨 피로회복제의 효과라 볼 수 있다. 그걸로 자신이 몇 시에 헬스장에 오며 얼마간 머물다 가는지, 관심을 끄는 데는 대성공을 한 셈이다.
그의 전략이 단순히 관심을 끄는 것에 그쳤으면, 그렇다. 대성공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행동 패턴이 파악된 순간부터는 해당시간에 좀 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품을 챙기러 창고로 잠시 피신을 가 있다던지, 조금 이따 해도 될 일을 미리 앞당겨서 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가 입장하거나 퇴장하는 시간대에 맞추어 종종 자리를 비우는 식으로 나의 근무 루틴을 변경했다.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었을 때다. 블로그에 홍보용 게시글을 작성해서 올리는 일이었는데, 썸네일 이미지를 직접 제작도 했어야 했다. 포토샵도 다루어 본 적도 없는 데다가 저작권에 걸리지 않기 위해 궁리를 많이 해야 했다. 내용 역시 다른 헬스장 홍보글을 참고해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글을 새롭게 썼어야 했으므로 꽤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몇 주가 지나 바쁘게 타이핑을 하는 날이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피로회복제는 위장에서 소화되다 못해 몸 밖으로 배출된 지 오래된 기억이었으며, 회원님도 내게 딱히 그 이후로 별다른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아서 누워서 고개만 두리번거리는 미어캣처럼 경계가 흐트러졌을 때다.
"요즘 일이 많은가 봐? 많이 바빠 보이네?"
탭댄스 추는 거미다리처럼 자판을 두드리던 내 손가락 위로 그림자가 불쑥 덮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회원님이 모니터 화면을 보겠다며 데스크 내로 몸일 한껏 기울이고 계셨다. 이거야말로 회사정보 유출에 해당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도 어쩌랴. 배고픈 호랑이를 물리치는 방법은 먹이를 주어 배를 채워주는 것처럼, 회원님을 빨리 물러나게 하기 위해서 그의 호기심을 채워주기로 했다.
"아, 오늘 블로그에 홍보글 올려야 해서요."
그는 흥미롭단 듯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타이핑하는 손놀림에 따라 채워지는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내가 던진 먹이가 맛이 있나 없나 가늠하듯 멀뚱히 서 있는 그가 옆에 서 있건 말건 내 할 일이 바빴던 지라 크게 호응해주지 않은 채 타이핑을 이어갔다.
"그렇게 앉아만 있으면 어떡해. 가서 짬짬이 운동 좀 하고 그래."
근무 중에 운동하면 그건 근무태만입니다만? 사장님이 아시면 저 잘려요.
"아, 저 퇴근하고 나면 운동해요."
이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사도 흥미도 없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리기 위해 부러 웃음을 똑똑 부러뜨렸다.
"내가 봤을 땐, 자기는 다른 것보다 스쿼트를 해야 해. 엉덩이가 처져있잖아."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듣고만 있기 어려워졌다.
계속해서 4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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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 작가 [지친 잉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