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클럽에서 만나요 #11
1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wearycarp115/16
회원님들 사이에서 나는 꽤나 싹싹한 직원이었던 듯싶다. 옷장과 수건을 채우러 몇 번 왕복을 할 때면, 부지런히도 움직인다며 칭찬해 주셨고 정수기 주변을 닦으면 깔끔해서 보기 좋다며 좋아라 하셨다. 너무 열심히 하느라 살찔 틈이 없어서 이렇게 마른 거냐며 칭찬과 타박의 사이에서 밥 좀 많이 먹어야겠다며 간식을 쥐어주는 결말로 끝을 내셨다.
어느 날, 한 70대 어르신께서 데스크와 마주한 운동기구에서 운동을 하시며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혹시 불편한 점이 있는데 말을 못 붙이시는 걸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도움이 필요하신지 여쭈었다. 그랬더니 고개를 저으시면서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쳐다보았다며 껄껄 웃으셨다.
그러시더니 곧장 옆에 계신 한 회원님에게 나를 대화 주제로 도마에 올리셨다. 말라서 체구가 가느다란 데다가 얼굴이 주먹만 해서 예쁘지 않냐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절대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남의 말을 옮기려니 손가락이 펴지질 않아 글을 쓰는 필자도 괴롭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길...)
뚱뚱한 걸 보고서도 보기 좋게 토실토실하다며 예쁘다고 말씀해 주시는 게 어르신들이 하는 특유의 외모 칭찬법이 아니던가. 내가 10살 어린애도 아니고, 이러한 칭찬이 쑥스러웠지만 어르신들 눈에는 한참 어린 손녀뻘로 보일 테니 그러녀니 하고 감사하다는 말로 대충 넘겼다.
그렇게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던 회원님과도 자연스럽게 말문이 트였다. 다른 회원님들과 비슷한 질문들이 날아왔다. 멀리서 오는지, 아침은 먹고 오는지, 일 끝나고는 무얼 하는지, 헬스장 알바 말고 다른 일도 하는지 등등. 스몰토크로 흔하게 오고 가는 대화 소재였다.
그가 내게 비타민을 놓고 갔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이 역시 다른 회원님들처럼 으레 먹고 힘내라는 의미로 전해준 것이라 여겼었다.
하루는 회원 명단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엑셀파일 정리를 해야 하므로 회원정보를 일일이 검색해 보며 확인하던 중이었다. 이는 꽤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는데 숫자와 문자를 번갈아 보다 보면 눈이 돌아가는 일이었다. 반쪽으로 나누어 띄운 창을 모니터 화면 위로 눈알을 좌우로 바쁘게 굴려가며 열중하던 중, 회원님의 참견이 일었다.
"뭐 하길래 그렇게 바빠?"
내 어깨너비보다도 넓은 모니터 화면을 엿보기란 어렵지 않다. 데스크 옆에 서있기만 하더라도 일을 하는지 딴짓을 하는지 훤히 보일 정도로 화면이 크고 넓다.
집중의 바다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나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고개만 살짝 돌린 채 회원님들의 명단을 정리 중이라 간단히 대꾸를 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이름이랑 연락처까지 회원정보를 다 볼 수 있는 거야?" 그는 굳이 데스크 안으로 머리를 숙여 넣으면서 내게 물었다.
"그럼요, 그래야 누가 누군지 알죠."
"내 것도 볼 수 있겠네?"
당연지사다.
개인정보를 훔쳐볼 마음 따위는 없지만, 여기 데스크에 앉아 일을 하는 이상 이름은 물론 나이와 폰 번호 같은 기본 정보를 다 볼 수밖에 없고 봐야만 했다. 아, 너무 염려마시라. 주소는 애당초 기입 대상도 아닐뿐더러 애당초 나는 타인에게 꽤나 무심한 성격이라 이름과 폰 번호로 내가 불법적인 무언갈 저지를 인재는 못 된다.
"그럼 거기 내 번호로 문자 좀 넣어봐."
"네?"
"내 번호만 알고 있는 건 불공평하잖아. 나도 자기 거 알아야지 공평하지."
이건 또 무슨 도롱뇽이 걸어가다가 하수구에 빠지는 소리인가.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무슨 의도가 담긴 말인지 해석하는 데로 머릿속 작업을 옮겼다. 번호를 달라니. 설마 내가 글로 읽으며 깔깔거리던 그 상황에 놓인 건가?
헬스장에서 근무할 당시 나는 이미 애인이 있는 상태였다. 반지 같은 걸로 딱히 애인 유무를 티 내는 건 아니었으나, 스마트폰 배경화면에는 남자 친구가 떡하니 들어앉아 있었고 최신 트렌드(?)를 따라 증명사진을 투명케이스 뒤쪽에 넣어두는 정도로 나름 무장하고 있던 참이었다. 폰 앞뒤로 박혀 있는 남자친구의 얼굴이 다른 남자들의 추파를 물리치는 일종의 퇴치 부적 용도로 제 역할을 하리라 믿었었다.
어이가 뺨을 치고 갔지만 나는 근무 중이고, 매일 마주치는 단골 회원이므로 거절도 정중해야 했다.
"번호는 가끔가다 동명이인이 간혹 있어서 구분하려고 필요한 것뿐이에요."
나는 당황하는 티를 내지 않고, 불쾌해하지 않을 법한 선에서 적당히 잘 쳐냈다고 생각했다.
"아니, 내 말은 혹시라도 일하다가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라고."
무슨 일이 생기면 매니저님이나 점장한테 연락할 일이지, 내가 당신에게 왜 연락합니까. 설령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도와주시려고요? 경찰이라도 되시나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앞서 말했듯 나는 그저 카운터에서 일하는 일개 아르바이트생이지 않는가. 나름 중립적으로 이렇게 받아쳤다.
"무슨 일 생기면 헬스장 번호로 연락 갈 거예요."
그는 나의 퇴짜를 맞고서 다시 운동을 하러 저만치 사라졌다. 나는 그가 멀찍이 떨어진 것을 눈으로 좇고 난 뒤 바로 정보를 검색했다. 한눈에 보아도 나보다야 나이가 많을 줄로는 알았으나 나와 16년 차이로 더 많은 50대에 가까운 나이었다. 아무리 연상 취향이라 할지라도 띠동갑을 훌쩍 넘는 남자를 애인으로 둘 정도를 두기에는 일반적으로는 무리지 않나 싶다. 게다가 내 번호를 따가기 위해 날렸던 방금 전의 멘트를 다시 곱씹어봤다. 홍대에서 여자만 발견하면 번호를 달라고 무작위로 외쳐대는 청년들도 이거보단 더 잘할 텐데.
이후, 나는 이 회원님과 되도록 말을 섞지 않기 위해 바쁜 척 돌아다녀야 했다.
계속해서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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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 작가 [지친 잉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