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에서 일하면 번호 따이나요?

헬스장 클럽에서 만나요 #10

by 지친 잉어

'헬스장 데스크에서 일하려면 얼굴 예뻐야 하나요?'

'저 뚱뚱한 편인데, 안 뽑아주겠죠?ㅠㅠ'

'헬스장인데, 어느 정도 마른 애가 앉아있어야지 그래도 운동 다닐 생각이 들죠.'

'헬스장 데스크는 얼굴 마담'


헬스장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런저런 검색을 하면서 조사를 하던 때였다.

어떤 조건의 근로자를 선호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시작된 검색에서 연관 검색어를 따라 타고 타고 흘러들어 간 인터넷게시판에서 재미난 글들이 꽤나 눈에 띄었다.


어떤 글에서는 글쓴이가 다니는 헬스장에서 근무하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너무 예뻐서 번호를 따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눈도장을 찍기 위해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운동을 간다며, 번호를 물어봐도 괜찮을지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글이었다.

그 밑으로 달린 댓글들은 더욱 재밌었다. 남자는 도전적이어야 한다며, 일단 물어나 보라는 의견을 달린 댓글을 읽자, 나까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식도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사실 이런 의견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상대방이 번호를 줄지 말지에 대해서는 상대방의 반응과 선택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문제다.


예측불가. 즉 여성분이 연락처를 내어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5대 5의 상황. 이 도박에서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와 번호를 받아가면 그야말로 러키다. 아르바이트생도 매일같이 같은 시간대에 운동하러 오는 남성 회원을 은근히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뒷면이 나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른 댓글에서 내놓은 반대의견처럼, 섣불리 번호 물어봤다가 거절당하면 민망해서 그 헬스장은 다니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데스크에 항상 상주하고 앉아있는 여성분을 지나쳐야 하는데, 그때마다 서로 의식되는 순간순간이 얼마나 뻘쭘하겠는가. 그렇게 되면 글쓴이가 그 여성분이 일하는 시간대를 피해서 운동을 다녀야 하는 불편함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섞인 댓글도 발견할 수 있었다.



글을 읽는 내내 장난기 서린 댓글들과 나름 진지하게 번호를 딸 방법을 궁리중일 글쓴이를 상상하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성분에게 먼저 용기 있게 다가가 친밀함을 쌓고 연인관계가 되는 목적을 이루고 싶어 하는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호기심. 자기 일이 아니라고 무조건 직진하라는 댓글, 추후에 일어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좀 더 조심성 있게 접근하자는 댓글과 무슨 좋은 구경거리라도 발견한 마냥, 어떻게 되었냐고 후기 좀 올려달라며 호들갑스럽게 재촉하는 내용들까지 빠짐없이 읽게 되었다. (나도 궁금했는데 올라온 후기글은 없었다. 아쉽다.)


반대로, 헬스장에서 번호를 많이 따이느냐는 예비 근무자의 입장에서 올린 질문도 있었다. 맥반석 계란 껍데기 같은 피부색에 돌멩이 같은 근육알이 팔다리에 덕지덕지 붙은 트레이너들과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를 기대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글들이 모두 귀엽게 느껴져 구글에서 찾아준 게시글을 모조리 다 읽어보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실제로 내게도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놀랍게도'라는 수식어를 집어넣은 이유를 대자면 다음과 같다.



1. 필자는 서른이 넘었다. 번호 따일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2. 썩 호감 가는 부드러운 인상은 아니다

3. 해당 헬스장에 오전에 나오시는 회원들의 평균 연령대가 높다.



1번에 대해 이야기를 먼저 좀 풀어보자. 서른이 넘었다고 해서 연애를 못할 이유는 분명 없다. 서로 공통으로 알고 지내는 제3의 인물이 없는 경우니, 불가피하게 번호를 물어보는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실제 주변에서도 여전히, 서른 넘어서도 어디 놀러 갔다가 마음에 드는 이성의 번호를 물어보고 사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럼에도 굳이 나이를 걸고넘어지는 것은 나의 이십 대를 돌아보았을 때 번따를 당한 적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2번에 대한 답으로 이어진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딱히 외모가 수려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길이나 다니는 교회에서 마주치는 영유아들 친구들은 나만 보면 표정을 굳히고 피한다. 아기 엄마가 돌고래 음역대로 목소리를 변조시켜 언니한테 인사하라며, 강제로 안아 올려 눈앞에다 날 들이대면 열이면 열 고개를 휙 돌려버린다. 지레 겁먹고 울지나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에 들어가도 반응은 비슷하다. 그래도 학교를 다닐 정도의 나이에 들어선 나이들은 말로써 내게 느끼는 비호감적인 포인트를 거침없이 짚어준다.

그들의 객관적이고 냉철한 지적을 종합해 보면, 보통 여성들보다 굵고 진하게 그리는 아이라이너가 가장 먼저 언급된다. 그들 말로는 그 화장이 무섭다고 한다. 그러나 나도 나름대로 굵고 진하게 그리는 이유가 다 있다. 쌍꺼풀 수술은 수술 측에도 안 낀다는데, 그걸 할 용기가 없어서 짝짝이 무쌍 커플을 보완하려고 아이라이너를 굵게 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남들 따라 점막만 채워보기도 했지만 그리면 티가 안 난다.

한국의 화장 트렌드는 언제나 '한 듯 안 한 듯' 꾸안꾸를 선호하지만 하필 또 내 개인적 취향은 그와 정 반대다. 화장을 하면 했다는 티를 팍팍 내고 싶어 하는 탓에, 아이라이너가 점점 선명하게 내 눈꺼풀 위에 자리 잡게 되었다.

거기에 소아암 환우들을 위해 기부하겠답시고 길러낸 머리가 골반에 닿기 직전이었다. 정수리부터 길이를 재면 70cm가 넘어가는 길이는 보기 예쁘다기보다 약간 징그러운 감정을 실어다 주는 듯싶었다. 보는 사람들마다 머리가 너무 길다며 한 마디씩 던졌다. 물론 나도 머리가 적정 길이를 넘어가자 엉킴이 점점 심해지는 탓에 불편해져 머리를 묶고 다니곤 했으나, 빗질하다가 처녀 귀신 뺨도 칠 수 있는 길이의 까만 머리카락은 호감보다는 비호감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분명했다.


그뿐이랴. 턱 아래, 목 앞에 500원짜리 만한 크기의 문신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와 같은 공공기관에서는 당연히 아이들의 정서를 고려해 살색테이프로 가리고 간다. 그러나 그 밖의 장소에서 마주친 아이들은 대부분 손가락으로 내 목을 가리키며 그림의 정체성을 알고 싶어 한다. 이 경우엔 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을 몸에 지닌 나의 눈을 피하는 부모들을 마주할 수 있다.


거기에 음악 전공으로 평생 예민하게 살아와서 그런지(지금도 한 예민하다), 약간 신경질 적인 면모가 낯에 걸려있는 면도 없잖아 있지 않나 싶다. 누군가는 그게 바로 예술가의 기질인 카리스마라고 좋게 포장해 주지만, 내 생각에는 그건 그냥 성질머리가 맞다. 좋게 말하면 섬세함, 나쁘게 말하면 예민함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근무하는 시간대에 방문하는 회원님들은 90%가 중장년층이다. 70대도 생각보다 많다. 아무래도 아침에 일어나서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고 나가는 젊은 직장인들이 새벽같이 운동 나오기란 쉽지 않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근무지에서 어르신들을 응대하는 일이 고단하지 않았다. 첫 근무날부터 들어오는 어르신들이 새로 들어온 직원이냐며 반갑게 인사를 먼저 주실 정도로 헬스장 내 분위기가 매우 밝은 편이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언니가 들어왔다며 오래 보면 좋겠다는 아주머니 회원님들의 살가운 덕담과 관심 덕분에 내향인인 내가 근무 환경에 빨리 적응했다.

들어오고 나가시는 회원님 한분 한분에게 눈 마주쳐 인사를 하는 사이, 회원님들 가운데는 아침 일찍부터 수고가 많다며 말을 걸어주시기도 했다. 밥도 못 먹고 나왔을 나를 걱정해 떡이나 과일, 과자와 커피 등 챙겨주시는 간식들을 하나씩 받다 보면 퇴근할 때 종이봉투 하나가 채워지는 수준이 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유독 피곤한 날이 있었다. 4시 40분경에 일어나 5시 40분까지 헬스장에 출근해서 2시까지 근무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첫 끼니를 먹고서 간단히 샤워를 다시 한 후 학원으로 출근을 해서 밤 10시에 돌아온 뒤 또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행했던 날이었다.

수면시간이 엄청나게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체력적으로는 확실히 힘에 부쳤다. 근무 도중에 간식거리를 먹는다고는 하지만 사람을 응대하는 일이다 보니 사소한 것 하나하나 챙기다 보면 에너지는 금방 고갈이 되었다. 거기에 친절함을 계속 유지하려다 보니 정신적 노동력도 만만치 않게 들어 피로는 금방 내 등짝에 업혀 안겼다.

그래서였을까, 평소 잘 겪지도 않는 두통이 심했고 마치 멀미를 하듯 속이 울렁이기 시작했다. 멀미를 해본 사람이면 알 테지만, 차라리 시원하게 게워내면 좀 가라앉는 게 멀미다. 토할 듯 말 듯 밀당을 이어가는 메스꺼움이 더욱 곤욕스럽기 마련이다. 전날 저녁에는 밥보다 잠이 먼저라 굶고 잔 데다가 아침에 딱히 먹은 것도 없는 빈속인지라 토해낼 것은 없고 울렁임은 더욱 심해져 갔다. 정수기에서 받아온 찬 물만을 들이키며 간신히 컨디션을 유지하고 앉아있던 차였다.



바로 그때, 데스크 너머로 불쑥 나타난 손이 피로회복제를 두고 빠르게 사라졌다.



계속해서 2편에서 이어집니다.

.

.

.

이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라이킷’을 눌러주세요!

글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


- 브런치 작가 [지친 잉어] 올림


매거진의 이전글맨발의 러닝머신: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