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륨 올려, 아니 올리지 말고 내려

헬스장 클럽에서 만나요 #15

by 지친 잉어

헬스장 FC가 주도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바로 음악이다.

회원님들의 운동 사기를 만땅으로 올려드리는 데에 있어 음악 선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볼 수 있다. 가령, 헬스장에서 이별을 이야기하는 발라드 노래가 흘러나온다고 보자. 달리다가도 기운 빠져서 다리에 힘이 풀릴지도 모른다. 반대로 힙합이나 여자 아이돌이 부르는 상큼 발랄한 노래를 틀어놓으면 내면에서는 콘서트장이 열려서 도파민이 팡팡 터져 힘이 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케이팝을 딱히 즐겨 듣는 편은 아니다. 아주 극히 소수의 곡, 그것도 10년도 더 된 곡들을 어쩌다가 한번 기분 내킬 때만 듣기에 최근 유행하는 곡이 어떤지, 누가 대세인지도 잘 모르는 늙은 삼십 대이다. 그래도 요즘같이 유튜브에 최신 TOP100 음악을 플레이리스트로 묶어놓았으니 나같이 트렌드에 뒤처지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매일 출근을 하면 재생할 음악부터 선정한다.

몸이 가자는 대로 걷다 보면 버스에 올라타 있는데, 근무지에 도착해서도 뇌는 아직 반쯤 잠든 듯한 좀비 상태로 멍하다. 이런 상태에서 전날 등록했던 회원 명단을 보면서 원장 계약서를 꼼꼼히 따져보고, 금액이 맞게 정산이 되었는지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면 맞게 되어있는 것도 틀렸다고 볼 때도 있다. 돈과 관련된 전산 계산은 특히나 실수가 없어야 하다 보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어쩌랴. 아무리 세수를 하고 화장까지 마친 상태라 하더라도 뜬 눈으로 자고 있는데.

벌레를 잡기 위해 일찍 일어난다는 그 새도 아직은 자고 있을 시각, 나를 비롯해 운동하러 나온 모두의 잠을 깨워주고 활력을 넣어주기 위해 나는 어느 운동할 때 듣는 플리를 재생시킨 후, 시스템 볼륨을 30으로 맞춰둔다. 그제야 본격적으로 업무를 보기 시작한다.





6시 10분. 이 시간에는 사실 헬스장이 바글바글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진 않는다. 오픈 런을 대기하는 특정 회원님 10분 정도만 계실 뿐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좀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을 받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때, 어느 할아버님 회원님이 데스크로 다가오셨다. 큰 턱과 처진 볼살이 마치 불도그를 닮은 인상이셨다. 이른 오픈부터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내게 하실 말씀이 뭘지 괜히 긴장되었다.



"음악 소리."

"네? 음악 소리 더 키워드릴까요?"

"아니 아니, 조금 내리라고. 지금 건물이 다 조용할 시각인데 음악이 이렇게 크면 어떡해?"



살짝 어리둥절했다. 이 건물에는 헬스장을 제외하고 병원과 약국, 그리고 학원이 들어선 있는 종합상가였다. 건물이 다 조용한 건 우리 헬스장 말고는 아직 오픈할 시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병원과 약국은 9시에나 열었으며 학원은 방학도 아닌지라 꼭두새벽부터 공부하러 나오는 학생도 가르치러 나오는 강사도 없다. 즉, 헬스장을 제외한 다른 볼일로 이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은 애당초 없다는 말과도 같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헬스장에 입장한 사람들이 많이 고여 있을 텐데, 그즈음엔 인기척이 많아져서 여러 가지 소음이 발생해 음악이 묻히므로 어찌 됐든 다시 볼륨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이건 내 사정일 뿐, 굳이 반박해서 무어하랴. 다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그저 움직이라는 대로 요구하는 말놀림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처량한 마리오네트 신세다. 내 손가락은 유튜브 창으로 가서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 볼륨을 살금살금 끌어내렸다. 할아버님은 데스크에 한쪽 손으로 짚고 다른 손은 허공에서 손을 상하로 지휘하듯 휘저으셨다. 그렇다. 그는 나를 무선 리모컨처럼 조절 중이었다. 그의 섬세한 손짓에 맞추어 마우스로 포인터를 살살 조절했다. 그는 집중하기 위해 두 눈을 꼭 감고서 매우 신중하게 음의 조화를 맛보기 시작했다. 손짓이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어느 지점에서 멈추었다. 그리고선 눈을 떠 천장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여 들어보시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볼륨에 다다랐을 때 고개를 주억거리셨다.


"그래, 이 정도가 딱이네. 딱 이만큼만 틀어."


딱히 많이 줄이지도 않았는데, 만족하셨다니 매우 기쁘네요. 앞으로도 오늘과 같은 음악 볼륨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힘쓰는 헬스장이 되겠습니다!

음악 조절을 잘한다는 칭찬 리뷰를 남겨주신다면 얼마든지 답글을 남겨드릴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할아버님은 엄한 표정을 짓느라 눈썹과 입술을 코로 쏠려 놓은 채 자리를 떠나셨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침잠이 없으신 할머니 할아버지 회원님들부터 직장에 나가지 않는 50대 아주머니들까지 엘리베이터가 쉬지 않고 한두 명씩 사람들을 실어다 날랐다. 열중하며 숫자와 씨름하던 내게 나비가 그려진 어깨를 훤히 드러낸 아주머니께서 수건을 챙겨 지나가면서 한마디 툭 던졌다.



"음악소리가 이게 뭐야? 하나도 안 들리잖아. 볼륨 좀 높여봐."


내 이럴 줄 알았다. 잘못 기입된 부분을 수정하던 차에 갑자기 들어온 주문사항에 머리도 손도 굳었다. 내가 뭐라고 작성하려고 했더라. 이미 멈추어진 손, 마우스로 옮겨서 다시 볼륨을 조절했다. 40으로 올렸다. 조금 과한 것 같았지만 오전 8시까지는 끊임없이 회원님들이 입장하실 걸 알기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젠 내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겠지. 양도받는 회원님에게 옮겨드려야 하는 남은 일수 계산, 날짜 계산을 다시 들어서려던 찰나였다.


"거, 음악 소리가 왜 다시 커진거야?"


아까 그 할아버님이었다. 집중의 문을 통과하려던 순간 다시 유턴해서 빠져나온 나의 자아가 올려다본 시야에는 아랫입술이 부루퉁하게 튀어나오고 메기처럼 처진 입꼬리를 하고선 불만스럽게 날 내려다보고 계셨다. 난감했다. 누구는 음악소리가 작다 그러고 누구는 크다 그러고. 대체 나는 어느 장단에 맞춰서 풍악을 올려야 하는가.



"운동하는데 귀가 아파아. 내가 아까 좋았다고 한 만큼 다시 줄여!"



그는 정말로 귀가 아프다는 듯이 찡그린 채, 귀 주변에 손을 대고 바르르 떠셨다. 그렇게 난 또, 한번 볼륨을 건들 수밖에 없었다. 대충 하는 시늉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자신의 귀에 확실하게 괜찮다 싶은 수준이 아니면 데스크 앞을 떠나갈 기색이 전혀 없어 보여 확실하게 볼륨을 낮춰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날, 나는 하루 종일 소리에 대한 컴플레인으로 오전 내내 귀를 막고 싶어졌다.




2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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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 작가 [지친 잉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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