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정신과를 가다.
버티지 말걸,
돈이 뭐라고 끝장을 보냐.
아끼지 말걸
비싸게 주고 산 옷, 새 신발
걸쳐보지도 못했다.
배가 고프다.
늘 혼자 있고, 대화할 수 없다.
언젠가는 죽잖아.
너무 악착을 떨었어.
내가 떠는 악착은 생각 안 했던 거야.
내가 바라는 삶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쓰고.
그것뿐이었는데,
그것이 왜 이리도 힘들었을까.
내게만 주어지지 않는
다인용 식탁, 맛있는 음식, 웃음소리
그날의 일기 中
방구석에 앉아 먹고 싶은 메뉴를 시켜 먹고,
낮에 자고.
밤에 깨어 있다가.
정리해야 할 것들을 한 아름 내다 버렸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을까.
<말이 하고 싶어.>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안 보면 그만일 낯선 사람에게
기왕이면 전문적인 말을 해줄 수 있는 상대에게.
그렇게 찾은 곳이 신경정신과였다.
기대라기보다..
나름의 노력은 다 했다 정도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나.
어쩌면 지푸라기를 잡고 싶었는지도.
그곳에서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게 되었다.
높은 불안도에 대해서.
그것으로 파생되는 신체화 증상에 대해서
같은 이유로 생겨나는 인간 갈등과 업무 방해, 내장기능 결함은 타인의 너그러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오래된 병변이 변화시킨 성격에 대해서.
"내과적 소견에는 이상이 없었답니다. 정신에 문제가 있나 해서 왔어요. 이게 마지막 같아요."
의사가 말했다.
"사실과 본인의 느낌을 구별하는 것.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치료의 중점이 될 겁니다."
"말하지 않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전 저의 직감을 굉장히 신뢰하는데요."
"직감을 뒷받침할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
흘끔거리는 눈빛과 비껴가는 이동경로, 속닥이며 지나가는 풍경.
여기에 객관성이라는 가닥을 어떻게 붙일 수 있나.
묘하게 달라진 공간 속에서 내가 느끼는 긴장감을 물증이 없다는 명목으로 따로 떼어내도 되는 것인가.
인간관계에서 객관적인 인과 사건이 몇이나 되나.
"약물치료와 상담을 병행해 봅시다. 음... 특정상황이나 비슷한 사람을 접할 때 자동적으로 드는 어떤 메커니즘을 끊어내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본인 같은 사람이 굉장히 많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처방약을 조금 복용해 보는 걸로 하죠."
약은 3가지였다.
항불안제, 소화제, 베타차단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