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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Feb 11. 2020

통제 가능한 사랑은 환상

- 로라 무차 저, <러브 팩추얼리>에 대한 서평



최근, CNN에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기사가 올라왔다. 

https://edition.cnn.com/2020/02/02/perspectives/indian-ceo-perspectives/index.html

출처 : http://m.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4457

위 기사의 작성자인 S. Mitra Kalita(senior vice president for news, opinion and programming at CNN Digital)는, 글로벌 대기업에서 인도계 CEO가 많은 이유 중 첫번째로  '변화와 불확실성의 수용'을 꼽았다.


1. An acceptance of change and uncertainty.
Every company is grappling with some form of disruption. Now picture India, a country of more than 1 billion people, dozens of languages, uneven infrastructure. At every turn is uncertainty, including whether water will emerge from the tap in the morning to brush your teeth. This breeds both an acceptance of forces beyond our control and the need to persevere, despite them. It allows innovation and patience with process to coexist in a corporate bureaucracy.
- CNN Business, <9 reasons the Indian CEO keeps coming to the rescue> 중.


이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an acceptance of forces beyond our control and the need to persevere"이라는 문구였다. 통제할 수 없는 힘을 수용하고 인내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나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가끔 감사하게도 나에 대해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다는 평을 해주시는 경우를 들을 때가 있는데, 사실 나의 성실성과 책임감은 어떠한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발휘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상황에 따라 달랐던 것이다. 특정 상황에서 나는 매우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했지만, 어떨 때는 평타도 치지 못했으며 이런 경우 종종 자괴감에 빠지고는 했다(고시생 시절에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이 학교에 들어왔으면 더 열심히 했을텐데 왜 내가 자리 하나를 차지해가지고...'라는 생각을 하기도).


그나마 운이 좋게도 인생의 중요한 순간순간에 성실성이 발휘되어서 꾸역꾸역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 공부를 안하다가 입시과정에서 중요한 순간인 중3, 고3 등 갑자기 공부에 집중해서 성과를 낼 때가 있었기 때문에, 지인들과 우스갯소리로 '3년 주기설'(3년에 한 번씩 빡세게 공부한다는 뜻)이냐고 얘기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기복의 차이는, '불확실성의 수용'여부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불확실성을 수용하고, 지금 나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불확실한 상황은 점차 확실한 상황, 통제가 가능한 상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매일의 공부, 매일의 노력이 쌓여가면서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목표에 한걸음 더 나아갔다는 확신은, 내일의 새로운 여정에서도 추진력으로 작용하였다. 매일의 계획, 매주의 계획을 달성하면서 삶이 선순환에 들어섰다고 느껴지는 순간, 목표는 이미 손 안에 들어온 것과 다름 없었다.


한편, 이와 같은 깨달음은  '사랑'에도 상당부분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애착이론은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심리학 분야들 중 하나이며 인간관계를 이해하는 데 일대 전환점을 마련해 준 이론이기도 하다. 기본 전제는 친밀감과 헌신에 관한 한 우리는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각자에겐 비교적 일관된 ‘애착 스타일’이 있고, 그런 스타일이 우리의 로맨틱한 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
- 러브 팩추얼리, p.68.


<러브 팩추얼리>에서는 1. 안정형 애착 스타일, 2. 불안형 애착 스타일, 3. 회피형 애착 스타일, 4. 미해결형 애착 스타일, 총 4가지 애착 스타일을 설명하고 있다(나는 안정형 애착 스타일과 불안형 애착 스타일이 7:3이나 8:2 정도로 섞인 애착 스타일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평상시에는 안정형 애착 스타일이 발현되지만, 앞에서 말했듯 무언가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 상황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불안형 애착 스타일이 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약 2년 전 받았던 심리상담에서도 그러한 내용을 일부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 지인분의 소개로 심리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지인분의 부인께 심리상담을 받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었는데, 여러 개의 객관식 및 주관식 질문에 대한 답을 토대로 말씀해주신 나의 성향은 다음과 같았다.

* 통제와 균형을 중요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김
* 자아강도 높음(스트레스 대처능력과 회복력이 좋음)
* 지배성(상황에 대한 통제와 지배를 좋아함)
* 남성성이 높음


상담 시점이 전여자친구와 헤어진 직후이다 보니 사랑과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도 했었는데, 상담을 통해 도출된 나의 성향을 통해 내 연애에서의 문제점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무언가 통제되는 상황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예측불가능한 무언가가 발생하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내가 바라거나 예상하는대로 상대방이 행동하지 않을 경우 갈등이 발생하였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좀 아니지 않니"라고 질책하거나, "연인이라면 이렇게 해야하지 않니"라고 당위에 호소하기도 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내가 당연히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나름 많이 참아주었다고 생각했고, 내가 바라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매너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이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비록 나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성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간과하고 나의 기준을 앞세운 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불확실한 것이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던 한 사람과 같이 삶을 공유하고,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일이다. 내가 아무리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상대방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통제할 수 없다. 

이전의 상담 과정, 그리고 최근 읽은 <러브 팩추얼리>를 통해,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불안형 애착 스타일을 잘 다스리고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랑은 오래참는 것"이라는 성경의 유명한 구절처럼, 먼저 수용하고 인내한 다음 나의 솔직한 생각을 존중의 틀 안에서 표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 같다. 이쯤에서 10년 전 감명을 받았던 한 문구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모든 이해는 세련된 오해다.

-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독일의 해석학자)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815320


#서평 #씽큐베이션 #러브팩추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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