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77 아이큐 77 제1화 05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by 이윤영

아이큐 77


05


고칠이는 엄마에게 무지막지하게 아침부터 혼났다. 학교 선생님한테 전화가 온 게 화근이었다. 고칠이 담임선생님은 황당한 이 말부터 시작하셨다.

"고칠이 아빠의 성은 이 씨 인데, 자꾸 고칠이가 자신의 이름이 '김고칠' 이라고 우겨서 확인해 보려구요…….”

엄마는 이 말을 들으시고, 얼굴을 잔뜩 찌푸리시고 말았다.

“죄송해요. 고칠이가 장난끼가 좀 많아서요. 호호."

그러시더니 엄마는 전화를 확 끊으시더니만, 거실 구석에 있는 제법 커 보이는 빗자루를 들고 고칠이한테 달려오시는 거다.

고칠이 엉덩이는 어느새 빨갛게 피멍이 들었고, 저녁 때 아빠가 들어오시더니 고칠이 얘기를 들으셨는지, 아무 말도 안 하시고 한숨만 내쉬셨다. 체념한 듯 엄마와 아빠는 조용히 안방에 들어가 문을 천천히 닫으셨다.

고칠이는 근데 내가 왜 혼났는지, 모르는 눈치다.

‘이고칠은 이름이 좀 이상하고 김고칠이라는 이름은 좀 강해보이고 멋있어서 그걸 쓰고 싶은데.’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거다. 성씨에는 박씨도 있고, 최씨도 있는데, 지금도 고칠이는 왜 유독 김씨만이 멋있어 보여 고집했는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거다.

‘고자가 그 고자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지금이야 늦게나마 이해라도 되지만 말이다. 문맥, 상황에 따른 판단력. 그것이 부족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서로를 스쳐지나갔다.

"할아버지는 고칠이가 태어날 때 일곱 칠(七)자는 행운을 불러일으킨다며, 이름에 칠자를 넣은 게 문제였어요. 이름이 웃겨서 고칠이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고 고민했었는데, 고칠이가 자신의 이름을 마음에 안 들어 하나 보네요."

엄마의 작은 음성이 안방에서 이렇게 슬며시 새어나왔단다.

나는 고칠씨의 눈치를 살폈다. 김씨인지 이씨인지는 이젠 고칠씨도 이해하는 모양이라서 다른 얘기를 꺼내봤다.

“고칠씨의 엄마와 아빠가 고민한 게 뭐냐면, 그건 할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기 어려웠다는 겁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그걸 마음에 안 든다고 바꾸겠다고 하는 건 당시만 해도 상상이 안됐던 거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는 유교전통으로 웃어른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게 큰 덕목이었어요. 이것이 세상 사는 데 절대적인 객관적인 기준이 되었거든요.”

나는 그가 가만히 듣고만 있어 설명을 이어갔다.

“절대적 윤리설도 이와 같아요. 절대적 윤리설에는 일단 윤리가 확립되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윤리에 대한 권위와 확신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그러나 이 윤리설은 시대변화에 둔감해서 자칫 잘못하면,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인간을 배출하게 될 겁니다. 상대론적 윤리설에선 시대나 사회 환경에 따라 다르게 적용됩니다. 사람들마다 주관적인 여러 행동기준들이 나타날 게 뻔합니다. 또한 윤리규범의 필요성도 유용성이란 입장에서 수용하겠죠. 여러 윤리가 난립하여 혼란스러운 도덕적인 무정부상태가 올지도 몰라요. 고칠이 부모님은 당시 걱정이 많았을 듯싶네요.”


“하지만 엄마 아빠는 결국 나의 고칠이 이름에 대해선 할아버지 말씀을 따랐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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