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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질시스터즈 Jan 09. 2021

벤야민의 대중문화론으로 본 웹툰 산업과 수용자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중심으로

2000년도 전후를 기점으로 탄생한 웹툰은 이제 대중문화 중 하나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지난 글,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으로 본 웹툰 산업과 수용자 -1"에서 대중문화가 싹트기 시작할 무렵 대중문화에 대해 논한 대표적인 사상가인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관점으로 웹툰 산업과 사용자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동시대 사상가인 발터 벤야민의 관점으로 대중기만의 웹툰 산업과 사용자에 대해 비추어보고자 한다.


발터 벤야민(1892~1940·왼쪽)과 테오도어 아도르노(1903~1969·오른쪽)

벤야민의 대중문화론: 아우라의 붕괴 그 후

과거의 예술 작품은 종교집단과 정치권력이 독점하고 필요에 따라 활용했기에 일종의 권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한 환경 속에 대중은 예술 작품으로부터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며 동시에 압도당하는 아우라를 느껴왔다. 그런데 사진을 비롯한 기술복제가 가능해진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이제는 어디서나 대중 예술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원본 예술 작품으로부터 나오던 아우라가 붕괴된 뒤의 예술은 더 이상 신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해방적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벤야민은 이러한 아우라의 붕괴를 논하며 전통예술, 즉 부르주아 시민예술의 이념이 퇴색하고 기술적 잠재력에 기반해 등장하게 된 새로운 예술 형식들을 유의미하게 설명했다. 특히 그는 대중예술의 사회적 파급력을 간파해, 이를 통해 예술의 민주적, 정치적 활용을 기대했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예술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이를테면 피카소와 같은 회화에 대해서 가졌던 가장 낙후된 태도가 채플린과 같은 영화에 대해 갖는 가장 진보적 태도로 바뀐 것이다. 여기서 진보적 태도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라보고 체험하는 데 대한 즐거움이 전문적인 비평가의 태도와 직접적이고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길(도서출판)(2007), p80-81


현재에도 유효한 시각

웹툰 산업 역시 기술복제 예술 중 하나로 디지털 기술의 발달, 스마트폰의 확산, 창작자들의 온라인 활동 등으로 기존 만화 문화를 재매개하며 웹툰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왔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웹툰 수용자들은 활발히 소통하고 참여하며 웹툰을 즐기는 또 다른 방식과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① 창작자: 웹툰으로써 일상을 예술화


네이버웹툰 <모죠의 일지> 中

벤야민의 논의에 부합되도록 설명하면 웹툰은 기술복제로 인해 많은 수용자들이 읽고, 또 생산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 대중예술이다. 이를 두고 손은하는 "웹툰은 사상화된 예술을 현실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수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겪는 일상을 예술화시키는 새로운 시도(손은하, 2017)"로 꼽으며, "웹툰에 예술의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예술이 어렵지 않다고 인식시킬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예술의 이름을 부여하기 전에 그것은 이미 우리의 소소하고 지저분하고 하찮은 일상을 예술화하고 있다(손은하, 2017)"고 주장한다.


<낢이 사는 이야기>, <슬프게도 이게 내 인생>, <모죠의 일지>를 비롯한 수많은 생활툰들이 이를 반증하며, 남일 같지 않은 우리네 이야기를 가감 없이 솔직하고 재치 있게 담아내며 이를 통한 재미와 공감을 선사한다.


② 수용자: 비평가적인 태도부터 웹툰 자율규제위원회까지

웹툰 자율규제위원회 출범식


벤야민은 기술복제로 생겨난 당대 새로운 예술인 영화를 두고 대중들이 진보적인 자세로 작품을 체험하고 비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진보적인 태도는 전문적인 비평가의 태도와 연결되어있는데, 마찬가지로 웹툰 수용자 역시 댓글과 SNS을 통해 고찰한 바를 게시하거나 패러디하며 적극적으로 작품을 향유하고 있다. 또한, 수용자들은 여성 및 노인 혐오로 논란이 된 <복학왕>, <헬퍼2: 킬베로스>의 예와 같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표현을 다룰 경우 적극적으로 작품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전체 이용가 웹툰을 더욱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며, 웹툰에 대해 시행하던 자율규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웹툰 자율규제위원회가 생겨났다. 웹툰 자율규제위원회는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웹툰의 표현이나 소재 등에 문제가 있다면 위원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구상 하에 탄생했다.


이를 두고 정부가 참여하여 규제를 지원하는 것은 공감하지만 창작자, 유통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심의하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규제의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의견이 대립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개입은 아도르노가 주장하는 저항 의식 말살을 위한 검열보다는 벤야민이 주장하는 비판적 수용을 포함하는 수용자의 능동적 태도에 가깝기에 성숙한 웹툰 문화 형성을 위한 적절한 시도로 생각된다.


③ 웹툰, 예술의 정치화

네이버웹툰 <송곳>

벤야민이 기술복제를 통해 예술에 대한 대중 참여도 향상을 통한 예술의 정치화에 대해 논한 것처럼, 웹툰 역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수용자들의 의식 변화나 개선의 여지에 대해 촉발시키는 경우도 있다. 부당한 노사환경에 대해 다룬 웹툰 <송곳>과 같이 현실 문제를 꼬집어서 수용자들이 공감하거나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처럼 기술복제는 예술이 가지고 있던 신비적 분위기를 소멸시키고 대중의 비판적 수용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신분산적 유희의 특성을 지닌 '툰'


네이버웹툰 <유미의 세포> 댓글


벤야민에 따르면 기존에는 예술작품을 심오하게 이해하기 위해 예술작품을 몰입, 침잠하는 수용방식을 선택했다면 오늘날 예술은 그저 보고 듣고 즐기기 위한 감각적인 대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하기보다는 정신을 분산시키는 방식을 사용한다.


네이버웹툰이 모바일 전용 웹툰 뷰로 사용하고 있는 '컷툰'은 웹툰을 스크롤 형식이 아닌 한 컷씩 넘기면서 열람이 가능하다. 따라서 보통의 스크롤 뷰 웹툰의 댓글이 한 회 차 전체 중 인상 깊은 부분이나 후반 부분을 중점적으로 논의한다면, 툰은 매 컷마다 댓글을 달 수 있어 한 컷을 중심으로도 활발한 의견 공유가 가능하다.


웹툰 자체만 하더라도 완결까지의 전체 내용을 여러 회차로 분절해서 제공하기 때문에, 벤야민이 논의한 몰입 및 침잠보다는 정신분산적 유희에 가까운 특성을 지녔지만, 컷툰의 방식은 그러한 정신분산적 유희의 특성을 더욱 강조한 웹툰 관람 방식 중 하나로 작품 내적인 요소 못지않게 수용자의 댓글도 작품 감상의 재미 요소로 끌어들이고 있다.


참고 문헌

발터 벤야민 (2007).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최성만 옮김). 길(도서출판).

손은하 (2017). 한중 만화·애니메이션산업과 전문인력 양성체계의 정책비교 및 전문가인식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WEBIN (2017.11.07). "'웹툰자율규제위원회' 웹툰 플랫폼 11개사,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들과 함께 3일 출범" URL: https://www.webtooninsight.co.kr/Forum/Content/4604

디지털타임즈 (2017.05.09.). “창작자 표현의 자유 보장하고...문제발생시 사회적 합의 도출...‘웹툰자율규제위원회’ 내달 출범.” URL: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7050902101231043001



글. 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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