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서, 독자가 끌리게 되는 웹툰의 요인은 무엇인지 종종 고민에 빠지곤 한다. 그중 캐릭터라는 것은 말 그대로 “미형”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사랑받기도 하는 것 같다. <낮에 뜨는 달>의 도하가 그랬고, <창백한 말>의 로즈가 그랬듯이 말이다. (물론 이 캐릭터들이 작화 이외에 아무런 매력이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잘생긴 캐릭터의 등장만으로 베스트 댓글창이 술렁이는 일은 절대 드문 일이 아니다.
다만 웹툰은 낱장의 일러스트가 아닌 서사적 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독자는 캐릭터의 작화에만 지나치게 치중하는 작품에 공감하고 몰입하기 어렵다. 캐릭터의 감정이나 생각이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메이크업을 통한 변신이라는 효과적인 소재로 국내외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네이버 웹툰의 메가 히트작 <여신강림>이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네이버 웹툰 <여신강림>
| 입체적인 그림체에 가려진 표현력의 부재
<여신강림>은 “예쁜얼굴 중심”의 구도(얼빡샷)로 서사를 이끌어 간다. 또한 획일화된 표정, 감정, 연출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캐릭터를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주경, 수호, 서준의 예쁜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장면이 자주 보인다. 야옹이 작가가 그림의 퀄리티에 가장 신경쓴다고 밝혔듯, 한눈에도 정교하고 섬세한 컷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문제는다양한 표정이나 디테일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캐릭터의 예쁜 얼굴에만 의존하여 스토리를 진행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캐릭터가 느끼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감정이 예쁜 얼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독자들은 캐릭터에게 생동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또한 전신샷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상반신이나 어깨선 위까지의 구도가 빈번히 등장하는 것 또한 얼굴에 집중한 제한된 표현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임주경의 감동, 슬픔, 당황을 표현한 장면
이처럼 동일한 방식의 표현이 반복되자, 회차가 진행될수록 캐릭터의 감정선은 단순하고 평면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여신강림>에서 이는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 나타날 때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슬픔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자세하기 표현하기보다는 예쁜 얼굴에 눈물 레이어만 추가하거나 밈을 활용해 개그화려는 시도가 빈번히 보인다. 2019년 만화평론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만화, 우리가 진짜 보고 싶은 풍경은? <여신강림>’ 평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이러한 표현력의 부재는 독자들이 등장인물의 감정에 공감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매 컷마다 화려한 작화에 신경을 쓰지만, 정작 각 캐릭터의 개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또한 표현력의 부재에서 발생한 문제점 중 하나로, 주인공 임주경조차 작중에 등장하는 다른 미녀 캐릭터들과 비슷한 외향을 보여준다. 만화전문 비평지 [지금, 만화]의 '<여신강림>, 여신 숭배 뒤의 부드러운 억압' 비평 또한 <여신강림> 등장인물의 이미지적 몰개성화를 지적하고 있다. <여신강림>에서는 화장한 주영이(주경이의 남동생)가수호와 똑같이 생긴 것도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외에도 작중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마다 말투, 행동, 표정, 심리, 가치관과 같은 요소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캐릭터만의 고유한 개성과 입체감을 느끼기 어렵다.
임주경(좌)에게 메이크업을 받은 유은혜(우)
안타깝게도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소재인 ‘메이크업’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사진을 봤을 때, 둘에게서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가? 다음 웹툰 <겟 레디 위드 미>의 주인공이 다양한 등장인물의 사연과 특징에 맞게 메이크 오버를 해주는 것과 달리, 주경이 해주는 메이크업은 모든 캐릭터를 ‘정형화’된 미인으로 만든다.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는 다양한 아름다움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만화와 현실에서 인정받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이전에 리뷰한 네이버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가 아름다움에 대해 다각적으로 고민하며 사회적 메세지를 전달했던 것과 달리, <여신강림>은 도리어 루키즘을 재생산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다. 국내외적으로 10대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인만큼, 작가의 시선이 가질 영향력을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양상은 경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얼굴을 표현하는 디테일은 대단하지만, 서사를 표현하는 디테일은 없는 <여신강림>. 이런 표현력의 부재가 아름다운 캐릭터를 화면 안에 멈춰있는 정적인 존재로 그치게 만들었다. <여신강림>은 외모에 관심이 많은 10대의 심리를 꿰뚫어 큰 인기를 얻게 되었지만, 표현력을 보완하면 좀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네이버 웹툰 <연애혁명>
순정 직진남 공주영이 세상에 둘도 없는 차도녀 왕자림에게 대시하는 이야기로 큰 인기를 끌었던 <연애혁명>. 연재 9년 차인 지금도 목요 웹툰 최고 인기작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작품 곳곳에 트렌디한 개그를 녹여내는 232 작가 특유의 센스가 연재 초반부터 젊은 독자층에게 좋은 반응을 받았다. 공주영이 왕자림에게 시전한 <사.귀.자>와 <너에게 반했음> 같은 고백 장면은 10대 독자들의 카톡 프사를 점령할 정도였다. 아마 그때만 해도 많은 독자들은 이 작품의 재미를 두 남녀 주인공이 보여줄 풋풋한 연애 스토리에서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덧 300화를 돌파한 지금, <연애혁명>을 단순히 10대의 연애물로만 보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다.
| 캐릭터를 살아 숨쉬게 만드는 표현력
<연애혁명>이라는 작품의 정체성 중 하나는 “리얼함”에 있다. 진짜 10대들이 할 법할 말투나 행동들이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어서 간혹 댓글창에 작가가 10대가 아니냐는 의혹(?)이 보인다. 10년에 가까운 연재기간동안 <연애혁명>이 우리에게 보여준 사실적 묘사는 좀 놀라울 정도다. 유행에 민감한 고등학교라는 공간에 맞게 근 10년간의 모든 밈이 완벽하게 작품 내에 녹아 있다. 이마저도 단순한 개그 장면으로 소비되기보다는 캐릭터의 개성을 강화하는데 사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점도 포인트이다. 여러모로 이러한 디테일 덕에 독자들은 정말 반에 한 명씩 있을 법한 친구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다만 한국 고등학교의 환경을 너무 잘 묘사한 탓에 국내 독자들은 완벽히 공감할 수 있는 반면, 해외 시장에서는 번역하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정말로 아쉬운 부분이다.
<연애혁명> 속 생생한 학교 묘사와 밈 활용
그렇다면 작가는 어떻게 이 리얼함을 작품에서 그려낸 걸까?
우선 <연애혁명>은 중심이 아닌 주변에 초점을 적절히 분산하며 서사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통해 서사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만화는 흔히 “인물”이 중심이 되어 스토리가 전개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대다수의 웹툰은 주요 캐릭터에 집중해서 컷을 구성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연애혁명>은 한 공간에 있는 여러 명의 캐릭터를 한 컷에 담아내는 구도를 비교적 자주 보여준다. 작품을 보다 보면 상황을 이끌어가고 있는 캐릭터 이외에 다른 캐릭터의 자세나 시선에 초점을 맞추는 구도가 흔히 보인다. 혹은 꼭 초점을 맞추지 않고도 계속해서 다른 이들의 행동거지를 한 컷에 포함시킨다. 이는 서사에 관여할 다양한 인물들의 감정선을 다층적으로 쌓아가고 추후 이어질 전개의 개연성을 확고히 쌓는 역할을 한다.
또한 <연애혁명>에서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자신만의 확고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같은 무리에 있는 공주영, 이경우, 안경민, 김병훈의 캐릭터 디테일이 얼마나 다를지 알 것이다. 표정이며 말투, 심지어 패션 스타일 하나하나까지 서로 차이점이 있다. 캐릭터의 개성은 작중에서 보이는 외양을 포함해서사가 전개될 때 드러나는표정, 습관, 행동, 심리묘사, 사고방식 등을 통해 회차가 거듭될수록 겹겹이 쌓여 형성된다. 결국 작가의 표현력에 가장 좌지우지되는 부분이랄까. <연애혁명>은 현실의 고등학교와 흡사하게 두발이나 눈동자 색에 비현실적인 색채를 사용하지 않고도 쌍꺼풀, 눈썹, 머리 모양을 통해 캐릭터의 외양을 대체로 명확히 구분시킨다. 무엇보다 <연애혁명>의 등장인물들은 일관성 있는 태도와 대사를 컷 한구석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주며타 캐릭터와 대비되는 자신의 개성을 확고히 한다.
각자의 개성에 위배되지 않도록 충실하게 서사를 배치한 탓인지,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행동을 독자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위적이거나 갑작스럽다고 느껴지지 않게 충분히 시간을 들여 서사를 풀어나간다고 할까. 작가가 이를 위한 떡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물론이다.
결론적으로 232작가의 치밀한 디테일이 만들어낸 <연애혁명>의 캐릭터와 이야기는 독자들의 공감을 극대화했다. 물론 <여신강림>처럼 서사적 표현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높은 퀄리티의 그림을 선보이는 방식이 무조건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찌 됐든 높은 퀄리티의 그림체가 많은 대중들이 가장 먼저 선택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만 위에 언급한 ‘만화, 우리가 진짜 보고 싶은 풍경은? <여신강림>’ 평론에서도 우려하듯, 글로벌적 인기를 끌게 된 <여신강림>의 파급력으로 인해 서사보다는 그림체에 치중한 '예쁜' 만화가 양산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독자들은 만화를 보며 이야기의 재미와 감동을 느끼기보다는 예쁜 그림체만 관람하는 광경이 펼쳐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