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섬>, 김홍모, 케이툰, 연재중
김홍모 작가는 수묵 SF라는 독특한 장르로 호평을 받았던 <항쟁군 평행우주>, 60-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년탐구생활>등을 그린 작가다. 현재는 케이툰에서 <울지않는 소년>과 <신들의 섬>을 연재중이다. 동양화 전공답게 수묵화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체로 주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2009년의 용산참사 이후에 나온 작품집 <빨간약>과 <내가 살던 용산>, 그리고 <떠날 수 없는 사람들>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 출판된 <좁은 방>은 작가가 학생운동을 하다 들어간 감옥에서 있었던 일을 그린 자전적 만화다. 현실에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독특한 필치로 그려내는 작가가 바로 김홍모 작가다.
김홍모 작가의 최신작이자 연재중인 작품인 <신들의 섬>은 <항쟁군 평행우주>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했던 고대의 인류가 멸망하고, 남은 인류는 부족의 형태로 남아 살아가고 있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강부족, 산부족, 들부족 마을의 일원들은 들소부족이 주변 부족을 정복해 세운 '무리를 이끄는 나라'의 침략을 받는다. 각 부족에는 '힘을 가진 자' 들이 있다. 산을 만들고 사람을 나무로 바꾸는 능력이 있는 초능력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힘을 앞세운 무리를 이끄는 나라는 전쟁을 통한 침략과 정복을 강행한다.
아이들은 잡아서 학교로 보내어 서로 경쟁시키고 싸우도록 만들고, 어른들은 죽이거나 힘과 공포로 굴복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고대의 힘'을 부활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 힘이란 바로 파괴의 힘. 고대 인류가 멸망했던 원인이 되었던 힘으로, 아마 핵 등 무기와 관련된 힘으로 보인다. 현재 2부가 연재중인 <신들의 섬>은 자연을 이용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부족의 사람들이 문명의 힘이라는 이름으로 살육과 폭력을 휘두르는 무리를 이끄는 나라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이 땅을 괴롭게 했던 폭력과 침략의 역사를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다.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지는 폭력에 고통받았던 역사를 생각하면, 이 작품의 무리를 이끄는 나라가 보여주는 바는 명확하다. 자신들의 전쟁을 합리화하고, 폭력과 공포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모습은 끔찍하다. 앞서 말했던 작품인 <항쟁군 평행우주>는 서구의 침략이 우리나라에 뻗쳐 지속된 다른 우주를 상상해 그린 작품이지만, 이 작품은 아마도 먼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처럼 보인다. 그리고, 세계가 멸망한 후에도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1부가 무리를 이끄는 나라의 침략 과정을 그렸다면, 현재 연재중인 2부에서는 좀 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신령한 섬인 '태초의 섬' 마저 침략한 무리를 이끄는 나라와 태초의 섬 이야기, 그리고 살아남은 부족 사람들의 반격이 그것이다. 안개 낀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태초의 섬은 비밀에 싸여있는 섬이다. 거주민들은 육지와는 다른 말을 쓰고, 다같이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사는 마을이다. 앞서 1부의 내용이 일제와 서구열강의 침략을 떠올리게 했다면, 태초의 섬은 제주를 떠올리게 한다.
열강의 침략,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신령한 섬에서의 살육은 마치 제주 4.3을 떠올리게 한다. 제주 4.3사건은 거의 7년간 제주도민 전체의 1/10이 경찰과 군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이다. 김홍모 작가는 올해 제주 4.3 70주년 단편만화 <터진목>을 그리기도 했다. 사실, 이 웹툰에 등장하는 태초의 섬이 제주와 겹쳐 보이는 것은, 이렇게 따져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작품에 등장하는 무당을 '심방'이라고 부르는데, 제주 방언으로 무당이 심방이다. 뿐만 아니라 중간에는 '궤네깃또'라는 신이 등장하는데, 이 신은 제주의 토착신이다.
전승에 의하면 강남천자국에서 온 백주또와 소천국의 자식인 궤네깃또는 무쇠상자에 담겨 이리저리 다니다가 결국 제주도로 돌아와 한군데에 자리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제주 4.3사건 이후 당주신이던 궤네깃또는 '영혼이 들끓어 살수가 없으니 매년 집을 옮겨다니겠다'고 선언해 매년 집을 옮겨다니며 머문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제주에서는 매년 돌아가면서 궤네깃또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섬의 대심방이 마을의 돼지를 모조리 바쳐 무리를 이끄는 나라를 내쫓아달라며 불러냈다.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주던 궤네깃또였지만, 결국 '고대의 힘'을 가진 무리를 이끄는 나라의 포격앞에 사라진다. 이후 학살극이 벌어지고, 무리를 이끄는 나라는 이를 "사냥"이라고 부른다.
작품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맞서 싸우다가 죽어간 사람, 재빨리 강자의 편에 붙어 아첨하는 사람, 분노를 억누르며 참아내는 사람, 그리고 반격의 기회를 노리는 사람까지. 지난 우리의 역사가 그대로 재현되는 모습은 작품을 보는 동안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남의 잘못을 비난하긴 쉽다. 그러나, 내가 잘못한 것을 깨닫고 비판하긴 힘들다.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폭력과 억압에 신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태초의 섬을 통해 제주 4.3사건의 원인을 꼬집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과 그 때문에 제대로 기억할 수 조차 없었던 역사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역사를 감추고 숨기기에 급급했다. 지금도 제주도엔 4.3 유적지와, 당시 학살에 동참했던 사람들의 비석은 물론 명령을 내린 사람들의 동상이 함께 서 있다. 2부가 한창 연재중인 지금, 이 작품에서는 더욱 심해지는 억압과 여기에 반감을 가진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반격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신들의 섬>은 바로 지금, 잔인한 4월에 꼭 보아야 할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