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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봄 Nov 01. 2017

소년이 된 나는, 어제보다 어지럽다

쥬드 프라이데이, 진눈깨비 소년(네이버웹툰, 2014~연재중)

    쥬드 프라이데이 작가가 <길에서 만나다>이후 2014년부터 연재중인 작품인 <진눈깨비 소년>은 <길.만>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이다. 서울, 파리, 제주도를 비롯한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주인공 정우진과 송해나를 중심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지나고 있는 어느 시절을 비춘다.


    주인공인 송해나와 정우진은 고교시절 운명처럼 만난다. 지각을 해서 벌을 받다가 도망쳐 함께 설탕커피를 마신다. 설탕커피는 아주 달 것 같은 이름이면서도 쓴 맛이 난다며 웃던 둘은, 입시에 지친 해나가 우진을 밀어내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우진은 전학왔던 파리로 돌아가고, 해나는 대학에서 경영을 부전공으로 배워 회사생활을 하는 평범한 어른으로 자라게 된다.


    진짜 이야기는, 이 둘이 해나가 일하는 회사에서 우연히 마주치면서 시작된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둘은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지만, 마치 알아보지 못한 척을 한다. 지난 10년이 넘는 세월이 어색해서였을수도, 떨리는 마음을 인정하면 안될 것 같아서, 또는 상대가 또다시 도망갈까봐여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운명처럼 이들은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급하게 떠난 일본 출장에서 합류해 온천에 가는 길에 춤을 추기도 하고, 서로를 알아보았다는 고백과 함께 밤새도록 눈내리는 일본의 어느 료칸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언뜻 낭만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사실, 이 웹툰은 상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 송해나는 아버지를 잃었고, 자신의 꿈을 쫓는 삶을 포기해야 했다. 정우진은 화목한 가족을 가져본적이 없었고, 자신을 구원해준 친구를 잃었다. 다른 등장인물도 마찬가지다. 첫사랑을 포기해야 했던 주강재, 암으로 투병중인 장혜원, 아직 서로를 좋아하지만, 서로를 잃어버렸던 시간에 망설이고 있는 찰스와 수연. <길.만>에서도 등장했던 하승진과 나혜영은 이제 서로를 놓아주어야 하는 시간을 맞는다.

삶은, 그래도 계속된다. 마침표를 찍는 게 아니니까.

    사실 생각해보면, 상실은 삶의 쉼표와 비슷하다. 막힘없이 읽어 내려가던 글을, 쉼표를 보는 순간 잠시 멈추었다가 읽어야 하니까. 상실의 순간에도, 상실의 순간이 지나간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겠지만 우리는 그곳에 잠시 멈춰서서 상실을 돌아보아야 한다. 쥬드 프라이데이 특유의 따뜻한 필치와 섬세한 문장, 따뜻한 수채화로 이루어진 이 웹툰은 이 잔인한 현실을 물감을 덧칠하듯 여러 겹 너머로 보여준다.

은퇴자의 별에서 떠나는 노신사의 두칸짜리 열차

    은퇴자의 별이라는 곳에서 20년간 지켜오던 자리에서 한순간에 쫓겨난 노신사는 2억을 내면 프랜차이즈의 별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뚝딱뚝딱 열차를 만들고, 은퇴자의 별에서 탈출하기도 한다. 모든것이 끝난 줄 알았던 순간에도, 삶은 계속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반복해서 보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결정에 우리는 크게 공감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도록 듣고, 그 사람이 마치 내 주변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되니까. 작가는 무책임하게 등장인물들의 등을 떠밀지 않는다. 꿈을 쫓고 싶다가도 현실의 벽 앞에 타협하는 사람들을 조롱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아첨꾼에게도 '그 사람의 실력'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작가는 사람을 존중한다.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다.


    때문일까, 독자들은 <진.소>를 '힐링 웹툰'이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진눈깨비 소년>은 결코 힐링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실과 상실해가는 과정, 그리고 상실한 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실은 우리를 아프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치유를 받는다. 그들이 상실을 안고 한걸음을 뗄 때 같이 울기도 하고, 그들이 상실에 주저앉을 때 같이 절망하기도 한다. 


    작품의 등장인물들에 이렇게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등장인물들 모두가 우직하게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신뢰의 비용은 비싸고 한번 쌓인 신뢰가 무너지기는 쉬울지 모르나,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매력을 느낀다. 3년을 연재하며 단 한번도 도망치지 않고, 우직하게 작품을 연재하는 작가에게 우리가 깊은 신뢰를 보내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이 작품을 사랑하고 있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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