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총 회장께서 한국형 원격수업 'K클래스'를 만들자고 한다. 상투적인 제안일 것 같은 느낌에 지나치려 했는데 다시 정색하고 보니 다음과 같은 주장을 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교육 대변혁에 대응하기 위해 우선 국가 차원의 표준화된 원격 수업 통합 시스템(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구글 클래스룸, 줌(zoom) 등 기능이 각기 다른 플랫폼을 사용하면 표준화된 원격 수업을 할 수 없다. 출석·학습 진도·과제 등을 종합적으로 운영·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교총 회장의 제안은 원격수업을 전통적 교수학습 방법의 연장선에서 보고 있다. 또한 교사와 학생의 입장보다는 '관리' 측면을 중요하게 여긴다. '국가 차원의 표준화된 원격수업 통합 시스템'은 필요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EBS는 상당 부분 이 같은 방식으로 운영을 했다. 그렇지만 교사들은 EBS 외에도 다양한 플랫폼을 사용했다. 만약 교육당국이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일한 것을 요구했다면 지금과 같은 원격수업은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교사들은 통일된 플랫폼을 사용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요구와 지원의 내용이 불일치하는데서 오는 혼란 때문에 힘겨워했다. 각기 다른 플랫폼을 써서 '표준화된 원격수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한 교사들은 거의 없었다. 표준화가 가진 비교육적 발상과 몰개성을 교사들은 이미 실천을 통해 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의 많은 문제가 표준화에서 비롯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으로 말하면 표준화는 고객의 기호가 아니라 기업주의 생산 편의성을 높이는 개념이다. 효율적 생산구조를 갖추는데 표준화의 대표 선수인 일관작업 열(assembly line) 만한 것이 없다. 여기서 생산한 제품은 불량품이 없을 것, 균질할 것을 목표로 한다.
근대 교육에서 표준화는 폭넓게 도입됐다. 비슷비슷한 학교와 교실의 모습, 전국적으로 통일된 교과서, 같은 문항과 동일한 답안이 있는 시험 모두 표준화의 결과물들이다. 표준화는 같은 투입으로 균질한 산출을 얻는데 쓰였다. 교육의 규모가 대량화하면서 공장 모형을 그대로 들여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교육 개선을 위해 표준화를 운운하는 것은 퇴행적이고 전근대적이다.
출석, 학습, 진도, 과제 등을 종합적으로 운영,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주장 역시 표준화의 연장이다. 이는 학습을 통하여 지식이 어떻게 쌓이는지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다. 원격수업을 지원하는 체제가 낡았다면 이를 더 유연하고 개방적인 시스템으로 개선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이다. 이를 일원적 시스템에서 운영 관리하자는 것은 학습자나 교사의 입장이 아니라 그저 관리의 편의성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모든 능력을 어떻게든 계량화하고 이를 측정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시험을 통한 선발제도를 유지시킨다. 개인의 느낌이나 주관은 평가할 수 없으니 그저 눈으로 보이는 것을 평가하여 사람을 뽑자라는 생각이 학생들을 어렸을 때부터 시험공부에 과몰입하게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기계적 공정성에 너도 나도 목숨을 건다. 개인의 느낌이나 주관을 어떻게 들여다보냐고, 그게 공정하냐고 물을 것이다. 학습자의 '견해'를 묻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교육이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교육개혁을 외치면서도 좋은 사람을 구하는 평가 전문성을 키우지 못해 그저 있는 지식 암기 잘하는 사람을 뽑아 왔다.
표준화된 지식을 암기하지 못하는 학생들만 탓할 일이 아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앎을 추구하고, 백인백색의 개성을 뽐내는 현대사회에서 대학이든, 기업이든 좋은 사람을 뽑기 위해 그 스스로의 평가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선발 체제의 전문성이 없으니 그저 종이 시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가. 표준화 논리와 교육 개선 논리는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