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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l 10. 2019

삶에 새 출발이란 없다

인생도 컴퓨터처럼 리셋할 수 있을까.

엊그제 생일이었다. 어떨 때는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 야속할 때도 있으나 대체로 50살을 넘긴 후부터는 내 나이에 무심하다. 타인의 나이 또한 별로 궁금하지 않다. 새로 시작한 브런치에 올린 글을 보고 20대인 줄 알았다는 독자도 있었다. 내 글에서 나이 느낌이 안 나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한 친구가 '샘 글에선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권위의 찌꺼기는 아직도 상대의 나이를 궁금해한다. "당신 몇 살이야?"와 같은 질문만큼 한심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출근길에 '뉴스공장'을 들었는데, 뉴스 초입부에 '김어준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뉴스룸으로 말하면 앵커 브리핑 같은 것이다. 뉴스의 생명은 팩트를 전달하는 데 있다. 뉴스에서 앵커의 생각을 먼저 밝히는 것은 "나는 이런 생각으로 뉴스를 진행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뉴스를 듣는 동안 청취자는 진행자가 앞서 말한 견해로 인해 종종 선입견을 가진다. 오늘 진행자가 한 얘기는 적어도 나에게는 매끄럽게 소화되지 않았다. 내용인즉,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라 한국의 시민들이 불매운동 같은 것을 하는데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으니 이해해주자"라는 취지였다. 


사실 한일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한일 청구권의 완성 여부를 다투는 국제법상의 문제이면서 외교문제이다. 그런데 그 표출 방식은 경제문제로 나타나고 있는 독특하고도 복잡하게 얽힌 문제다. 나아가 어느 나라가 더 성숙한 시민성, 세계시민의식을 갖고 있는가 비교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두 나라의 개인당 국민소득은 이제 3:4 정도로 비슷해지고 있다. GDP는 1:3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인구 차이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선진국 내지는 신생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로 긴장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는 물어볼 필요조차 없는 사항이다. 감정대응보다 '상황관리 역량'이 필요한 이유이다.


시원하게 대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 그러나 우리네 인생이 그렇지 않다. 내 인생이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저 얽힌 실타래를 평생토록 풀어가면서 조금씩이나마 진전되는 것이다. 이게 불만스럽다고 소란스럽게 티를 내면 꼭 탈이 나고 후과가 있다. 상대가 있는 모든 관계들이 그러하다. 나만 깔끔하게 승리하는 관계란 없다. 상대와 승부를 다툼에 있어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지만 다시 살아갈 여력은 남긴 정도라면 나쁜 관계가 아니다. 승부를 내면서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관리하고 유지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삶이다. 


나이 이야기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대체로 경력을 드러내야만 자기 의견이 먹힐 것이라는 생각, 다시 말해 현재적 발화로는 별로 설득력이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나이나 왕년을 들먹이게 만든다. 그러나 과거든, 미래든 지금 여기에서 현재화할 능력이 없다면 그건 사유 능력의 부재일 뿐이다. 답답한, 혹은 애잔한 꼰대로 머물지 않기 위해선 과거의 영화 따위는 가능한 한 빨리 잊는 것이 좋다.


젊게 사는 비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몸을 가꾸고, 늙지 않으려 갖은 노력을 하고, 유행 따라 옷을 입어도 생각이 젊지 않다면 마치도 노인이 아이의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다. 어른이고 싶지만 드러나는 것은 미성숙한 상태이다. 생각을 젊게 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 쉽지 않다. 오늘 갑자기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어야 한다.


그러므로 생체 나이는 먹어도 마음의 나이는 항상 청춘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그것은 5-60대 어느 시점에 갑자기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그렇게 살아온 경험의 누적이 말해주는 것이다. 인생도 컴퓨터처럼 리셋하고 싶겠지만, 애초부터 삶에 새 출발이란 없다.


"지금 이 시간부터는 젊은 생각을 유지해야지"라고 마음먹는 것이 그나마 가장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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