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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ul 09. 2022

너를 위한 글

서사적 상상력과 글쓰기

"제가 읽어야 할 글을 써주셨네요. 작가님이 제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옮겨주신 것 같아요."


글을 써서 공표하고 나면 반응을 들어야 하는 과정이 있다. 어떤 글은 유독 복수의 독자들로부터 위와 같은 말을 듣는다. 글을 쓰는 자의 입장에선 참 고마운 말이다. 독자들의 마음에 공감하려 노력하는 것은 글을 쓰는 자의 숙명과도 같다. 수많은 글쓰기 지침서들이 예비작가들을 위한 처방을 내어 놓는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든가, 좋은 글은 다양한 경험에서 나온다든가, 더 나아가 치열하게 살아야 치열한 글이 나온다고 한다.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은 워낙 기본 중의 기본이라 토를 달 일이 없다. 다양한 경험은 좋은 글의 필수 요소일까.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풍부한 경험은 소재나 묘사 측면에서 좋은 글의 가능성을 한층 높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직접 경험이 작가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오로지 경험에만 의존하는 글은 한계가 있다. 인간은 그 자신이 갖는 주관의 세계 안에 경험을 구성한다. 특히 직접 경험과 자기 확신이 만났을 때 나오는 글은 이러한 주관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마사 누스바움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자기 인식에서 완벽하지 않으며, 때로는 통찰력 있는 외부자가 경험 안에 묻혀 있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마사 누스바움이 즐겨 쓰는 개념인 '서사적 상상력(Narrative Imagination)'이란 간단히 말해 내가 타자의 입장에서 느끼게 될 감정에 대하여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타자의 감정에는 기쁨과 슬픔 외에도 고통, 연민, 두려움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섞여 있다. 이를 타자의 가능한 입장에서 공감하고, 내가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까를 상상하는 마음, 이것이 서사적 상상력의 핵심이다. 직접 사태를 겪지 않아도 서사적 상상력이 풍부하다면 행위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 

공감이 바로 글쓰기 능력으로 이어지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여기서부터는 작가 특유의 표현 방식(일종의 스타일)이 필요하다. 
작가는 글로 기록한다. 기록할까.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나의 경험, 나의 생각을 문장으로 기록하여 타자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작가는 당장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가까운 혹은 미래의 독자들이 읽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록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문장 속에 담으려는 의지와 훈련이 필요하다. 

작가 A는 경험도 풍부하고 상황 묘사력도 탁월하다. 남들은 한 줄로 끝내는 상황 묘사를 한 단락, 심지어 한 페이지에 이르도록 상세하게 묘사한다. 해학과 풍자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힘도 있다. 그런데 지나치게 화자 중심이다. 대상의 입장에 공감하는 대신 본인의 감정에 충실하다. 내가 관찰한 것이 더 진실에 가깝고, 내가 묘사하고 있는 것이 더 상황에 가깝다고 확신한다. A가 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의 정당성을 보장하기 위한 주변인에 머문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욕구가 강하여 글 속의 인물들을 단순하게 소비한다. 작가 A가 넘어야 할 산이 있다면 바로 서사적 상상력에 대한 이해이다. 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 작가 A는 경험에 기초한 에세이 수준의 글을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글을 넘어서기 힘들 것이다. 


서사 예술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관광객의 가벼운 관심을 넘어, 말하자면 참여와 공감 어린 이해를 바탕으로, 보이는 상태를 거부하는 우리 사회를 분노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 이야기로 상상력을 다지는 훈련만이 내 앞에 있는 다른 사람의 몸에 내가 나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것과 똑같은 종류의 감정과 느낌과 생각이 깃들어 있다는 결론으로 이끌 수 있다.(마사 누스바움, 인간성 수업, 141 - 143쪽)


독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읽을까. 독자는 나의 처지와 사정을 작가가 이해하고 있다는 기분, 그래서 고유한 인격체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기대한다. 글 속에서 독자가, 혹은 독자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인물이 지나치게 희화화되고 있거나, 작가를 돋보이게 하는 도구로 소비되고 있음을 알게 되는 순간 독서가 가진 치유 능력은 사라진다. 글을 통하여 나의 생각을 밝히는 행위는 글쓰기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다. 다만 '나의 생각'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경험과 주관에 빠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의 생각이 타인의 사정을 포함하여 어떤 경로와 방식을 통하여 주조되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예비작가들이 거쳐야 할 어려운 관문 중 하나이다.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효과는 분명하다. 그 치유는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절차에서 생기는 것이 아닌, 글을 매개로 작가와 독자가 만나 공명하는 속에서 이뤄진다. 이미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렸을 때부터 작가는 독자와 대화를 시작한다. 이 대화는 가르침도 계몽도 아니기 때문에 승자와 패자도 있을 수 없다. 다만, 지평의 확대가 있을 뿐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글쓴이의 인격도 적어도 얼마간은 훌륭해야 한다. 더욱이 속임수는 종국에는 탄로 나기 마련이므로, 글쓴이의 인격이 겉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좋아야 한다. 책을 집필해서 펴내는 사람들은 이따금 본인이 깨닫는 것보다 더 많은 방식으로 본인을 대중에게 드러낸다.(루카스, 좋은 산문의 길 스타일,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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