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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Jan 24. 2022

10년 걸려 쓴 책, 두 달 걸려 쓴 책

책을 쓰기로 한 예비작가들께 드리는 글

20년 동안 공저 두 권을 포함하여 열두 권의 책을 썼다. 집필 기간이 가장 길었던 것은 <교사, 책을 들다>로 10년이 걸렸다. 가장 짧은 기간에 썼던 것은 <깡통@나모 웹에디터 4.com>이라는 책인데 정확히 두 달 걸렸다. 내 생애 최초의 책이었던 <캡틴과 함께 처음으로 만드는 홈페이지>를 2000년 2월에 내고 바로 다음 책을 집필하여 4월에 퇴고했다. 후작업에 3개월이 걸렸고 그해 7월에 출간하였다.

10년 걸려 쓴 책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7860720


<교사, 책을 들다>를 쓰는 도중에 <교육사유>와, 역서인 <아이들 한 명 한 명 빛나야 한다> 등 단독 저서 두 권과 공저 두 권이 나왔다. 정말이지 <교사, 책을 들다>에는 일생을 통해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아쉬운 것은 다른 책에 비하여 잘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작가가 공을 들인 정도와 팔리는 정도는 비례하지 않는다. 20년 동안 책을 쓰면서 보통 4쇄~8쇄 정도를 찍었는데 이 책은 8개월이나 걸려서 중쇄에 들어갔다. 한편 아래 두 달 걸려 쓴 책은 일주일 만에 중쇄에 들어갔고 한 달만에 3쇄를 찍었으며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5쇄 정도를 찍었을 것이다.  


두 달 걸려 쓴 책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4757


한 가지 덧붙일 이 있다. 2000년에 낸 두 권의 책은 일종의 기술서였다. 그리고 2002년에 또 두 권의 책을 냈는데 <바람직한 ICT 활용 교육의 이론과 실제>, <인터넷에 꾸미는 온라인 학습방>이 그것이다. 이 책들은 교육과 기술을 접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가 2005년쯤 <동영상 학습 콘텐츠 제작과 활용>이라는 책을 썼다가 파일을 그대로 인터넷에 올려 무료로 배포했다. 이미 그때 전공을 바꾸어 교육학 공부를 하고 있었고, 기술서는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교육과 기술의 접목 기간을 거쳐 완전한 교육 분야로 관심 분야를 이행한 시기에 결정한 일이었다.

2008년에 <통하는 학교, 통하는 교실을 위한 교사리더십>을 썼는데 이 책은 교육분야 자기 계발서로 분류될만하다. 2010년에 나온 <수업 전문성 재개념화의 실천적 탐색>은 학위 논문을 공표용 단행본으로 낸 것이다. 2002년에 학위 과정을 시작해서 논문을 쓰기까지 7년이 걸렸다. 이 책은 그 결실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2014년에 <교육사유>를 썼다. 쉬운 책이 아니었지만 출간 일주일 만에 증쇄에 들어갔고 총 5쇄인가 6쇄인가를 찍었다. 아직도 독자들이 찾고 있다. 책을 한 권 내기 위해서는 그 몇 배 이상의 공부를 동반한다. <교육사유>는 상당 부분이 의견과 주장을 드러내는 글이어서 근거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그리고 내 의지와 무관하게 공저 두 권이 나왔다. <교육혁신의 시대, 배움의 공간을 상상하다>와 <민주시민교육 어떻게 할까>라는 책이다. 한 권은 대표 저자로 올라가 있고, 한 권은 교육전문지 민들레에 쓴 것을 다른 작가들의 글과 합철 하여 낸 것이다. 오늘 살펴보니 꾸준히 읽히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10년 걸려 쓴 책 <교사, 책을 들다>는 2011년에 기획하였다. 당시에 같이 교육학을 공부하던 분들이 있었는데 1년 동안 공부할 커리큘럼의 개요를 작성해본 것이 시작이었다. 교사들이 현장 실천을 하면서 전문성 함양을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을 선정하여 해설을 해주는 콘셉트였다. 하나를 배워 바로 써먹는 실용서들은 제외하였고 시간을 두고 발효시켜 안목과 통찰력을 키워 그 시선으로 교실과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하자라는 것이 의도였다.

선정한 책들은 몇 번 바었다. 그 사이에 어떤 책은 절판이 됐다. 마이클 애플의 <교육과 이데올로기>가 그것인데 다행히 초판의 역자가 재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또 어떤 책들은 해석 방향을 두고 갈등을 많이 겪기도 했다. 한동안 원고를 꺼내보지 않을 정도로 멀리했던 기간도 있었다. 이렇게 힘들게 책을 써서 도대체 어떤 독자들이 읽을지 회의감도 여러 번 왔다.

파일 해설서를 써서 공부 모임에 적용도 해 보았다. 물론 함께 했던 분들은 오랜 시간 교육학 공부를 하던 분들이라 저항감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은 계속 지체됐다. 그러는 사이 전직을 했고, 새롭게 주어지는 업무는 글 쓰는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주말을 온통 책 쓰는 일에 썼다. 엎어버릴까 다시 살릴까 수많은 갈등과 회의 속에서 출판사와 계약을 했고, 막바지 작업에만 2년 정도가 투입됐다. 후작업에도 5개월을 소모했다. 책이 10년이나 걸렸던 장황한 이유다.
 
반 매넌의 교육 현상학, 수호믈린스키의 전인교육론, 마이클 애플의 문화재생산, 마사 누스바움의 인간 존중 역량(Capabilities) 담론, 피터스의 분석철학, 존 듀이의 성장이론 등을 선정하였다. 앞서 밝힌 대로 중쇄에 8개월이 걸렸다는 것은 내 책 중 가장 늦은 기록이기도 하다. 읽은 사람들은 좋았다고 하는데, 표지나 제목, 그리고 선정한 책을 보고서는 '어렵게 느껴진다'는 독자도 있었다. 작년에는 2021 세종도서 교양 부분 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일단 교양서로 은 받은 셈이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조금씩, 꾸준히 팔리고 있다.

교육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그 하나는 방법론에 치중하는 경우다. 이 분들에게 책이라 함은 교수학습의 장에서 특별한 효용가치가 있어야 한다. 한국의 교실 특성 중 하나는 수많은 교수학습 방법의 시험장이라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가 중심을 못 잡고 이 방법 저 방법을 적용하다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다. 아이들 입장에서 볼 때 교사가 방법에 치중하는 것은 흥미를 끌 수 있을지 몰라도 어느 정도 위험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교육 분야 책중에는 교육방법을 다루는 책이 특히 많은데, 모든 교사에게 꼭 맞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방법은 구체적, 실천적으로 교실 차원에서 우러나는 것이라서 어떤 전문가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 자신이 주체가 되어 연구, 개발해야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왜 가르치고 배우는가'에 대한 깊은 사색이다. 교육을, 학교를, 교실과 아이들에 대한 안목과 통찰력을 키워 한층 깊어진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게 하자는 것이 <교사, 책을 들다>의 의도였다. 당장 수업을 개선할 수 있는 기법을 제공하지 않다 보니 필요에 대한 갈증은 덜 채워지고, 한편으론 어렵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를 포함하여 교육을 업으로 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선 왜(why)나 무엇(what)보다는 어떻게(how)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식이란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제공되며 교과서 안에 잘 정리되어 있다는 통념 때문이다. 그라나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하는 분들은 수시로 물어야 한다. 이 지식으로 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 이 지식은 누가 정했는지, 이 지식으로 인해 누가 이득을 보는지... 등등에 대하여 고민을 한다는 것은 가르침의 가장 근원적 질문에 답하는 방법이다. 가르치는 자가 근원적 질문을 피하면 학습자 역시 당장의 쓸모를 중시하는 기능적 어른으로 성장한다. 질문을 멈추면 생각이 멈추고 삶도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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