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같은 봄날이다. 겨우내 말랐던 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순은 딱딱한 껍질을 뚫고 나온다. 이파리가 돋고 이내 햇볕과 교감하여 그 크기를 키운다. 한 계절의 순환은 변화무쌍하고 시끌벅적하다. 때로 그늘이 되고 때로 우산이 돼주는 나이 먹은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림자도 말없이 곁에 머문다.
봄날 풍경은 분출하는 에너지의 향연이다. 그 속에 생명이 있다. 인간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때이기도 하다. 그런 느낌이 강하고 오래 가면 썩 건강한 삶이다. 내게도 봄날이 있었을까. 아니면 아직 도래하지 않았나. 혹시 지금이 인생 최고의 봄날인데 나만 모르고 있나.
지리멸렬한 삶도 그 안에 스토리와 의미가 있다. 가끔씩 느끼는 허무감도 내 삶의 원천이다. 걷고 또 걷다 보니 한 달 평균 일만 이천 보쯤 걸었다. 걸음마다 생각이 쌓였기를 바란다. 내 인생에 들어올 자리가 없었거나 이미 지나갔을지 모를 봄날에 기대 자기 연민에 빠지기 싫다. 지금은 대체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