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글쓰기를 돕는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하겠지만,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겐 좋은 글을 쓰기까지 여러 고비가 찾아온다. 문장력과 묘사력, 그리고 나만의 스타일까지 갖추었다면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조건을 갖춘 것이지만, 그렇다고 글이 막 나오는 것이 아니다. 빈번하게 찾아오는 '소재의 고갈'은 예비작가나 기성작가를 막론하고 글 쓰는 사람을 괴롭힌다. 쓰고 싶은 욕구는 넘치는 데 무엇을 소재로 쓸지 막막한 경우, 이를 탈출할 방법을 하나씩 가져야 한다.
소재가 고갈됐고, 상상력도 빈곤할 땐 차라리 글쓰기 욕구가 없는 것이 좋다. 문제는 이 상태에서도 글쓰기 욕구는 넘친다는 것인데, 그럼 몹시 괴로울 것이다. 이른바 '작가적 고뇌'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로 내가 추천하는 방법이 '혼자 걷기'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혼자 걷기는 여러 유익함을 선사한다. 산문을 쓰든 소설을 쓰든 시를 쓰든 작가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기에 혼자 걷기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혼자 걸으면 계절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발바닥을 통해 전달되는 땅의 질감은 걷기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체험이다. 겨우내 얼었던 땅을 비집고 나오는 풀포기를 보라. 그 자체로 봄에 대한, 생명에 대한, 대자연의 순환에 대한 글감이다. 비 오는 날 혹은 눈 오는 날에도 혼자 걷기의 독특한 맛이 있다. 하늘과 대지의 느낌, 공기의 미세한 흐름, 기온의 차이 등등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놓치지 말라. 계절의 변화는 참으로 오묘하여 관찰하고 상상하는 가운데 다양한 글감이떠오른다.
동행이 없는 혼자 걷기는 주변의 사물과 대화하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그리고 사색과 고독을 즐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물론 혼자 자동차를 운전하여 목적지까지 가는 것도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독립적 공간에서 생각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 있다. 하지만 자칫 한눈을 팔다간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운전이란 행위는 기본적으로 '긴장'을 유지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깊은 사색에 빠질 수 없다.
걷기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건강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물 위를 걷는 것도 기적, 땅 위를 걷는 것도 기적이라 했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마음은 일단 글쓰기에서도 균형과 절제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런 재충전과 사색의 절차 없이 오로지 모니터 앞에 앉아 글만 쓰는 것은 어떤가. 이런 글쓰기는 즐거움은 고사하고 몸과 마음을 축내는 지름길이다.
나는 주말 오후에 걷는 시간이 좋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그림자가 길어질 때, 부드러운 빛이 잠시 지속되는 때는 놓칠 수 없는 시간이다. 강가를 걷다 잠시 멈추어 심호흡을 하고, 좋은 풍경을 만나면 사진도 찍으면서 느릿하게 걷는 맛이 있다. 위에 올린 사진도 지난 일요일 초저녁에 찍은 것이다.
더 잘 쓰고 싶은가. 어렵지 않다. 지금 집밖으로 나가서 걷기 시작하라. 소재 고갈은 당신의 게으름에서 나온다. 믿기 힘드신가. 그럼 걷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