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은 마음이 평온할 때 나온다
주말인데 서울 집에 가지 못했다. 이유는 백 열 가지쯤 되는데, 우선 어제 업무가 늦게 끝났다. 사실 이건 결정적 이유에 들지 않는다. 서울로 가는 길은 퇴근 직후에 많이 밀려서 일부러라도 조금 늦게 출발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도 업무가 일찍 끝나면 한두 시간은 초과로 일을 하면서 출발 시간을 조절했다. 사무실과 작별할 시간을 가늠하면서 아내와 통화를 하는데 서울엔 지금 상상을 초월하는 비가 내리고 있고 쉬이 그칠 것 같지도 않으니 안 오는 게 좋겠다고 한다. 사무실 밖은 잿빛 하늘에 금방이라도 비가 올듯한 기세다. 무엇보다 피곤했다. 빨리 자리에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서식처로 돌아와 대충 씻고 자리에 누웠다.
토요일 아침이다. 열대야를 견딘 몸이 훨씬 무겁다. 6시간 34분의 수면 시간 동안 30분은 깊은 잠을, 6시간 4분 동안 얕은 잠을, 그리고 1시간 8분 동안 깨어 있었다. 커피와 비스킷으로 아침 요기를 하고 제출해야 할 글을 쓰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았다. 글이 써질 리 없다. 500밀리 생수 한 통을 다 마실 때까지 한쪽도 쓰지 못하였다.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다. 오전 중으로 부탁받은 글을 써서 넘기고, 미뤄두었던 책 리뷰는 점심 후에 쓰고, 오후엔 느긋하게 넷플릭스 영화 한 편을 보고, 저녁엔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걸어야지 하는 암묵적 하루 설계가 있었다. 그런데 초장부터 꼬이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평소에 바쁘게 지내던 사람에게 갑자기 몇 시간의 여유가 생겼을 때, 미뤄두었던 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를 향해 신속하게 몸을 던지지 못하고... "무엇을 해야 가장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을까" 따위의 개도 물어가지 않을 사색을 하다가, 결정 장애를 일으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축냈던 기억 말이다. 그리고 남은 시간의 반은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고 고양이도 물어가지 않을 반성 따위를 하면서 소비하는 참으로 진부한 생활 말이다. 개나 고양이에게도 관심 밖인 잡생각 따위를 하느라 소비한 시간이 억울하여 이젠 진짜 뭔가 알찬 것을 해보자라고 굳게 결심했을 땐 이미 남아 있는 시간이 없었던 기억,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정말 백만 년 만에 생긴 시간이라 어떻게든 할 일 서너 가지는 끝을 보려고 한다. 그 다짐을 위해 지금 다시 시간을 들여 이 글을 쓴다. 그것이 세상의 불합리와 부조화 아니겠는가. 일 년 전까지는 페이스북에 글을 썼었다. 독자들과 소통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다가 근무처를 옮기고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쓸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 브런치에 올리는 '서정적' 사진과 짧은 글들은 그 처지의 결과물이다. 이것도 몇 개월 하니 이곳에도 단골이 생겼다. 꼬박꼬박 읽고 흔적을 남겨주는 분들은 일면식도 없지만 친밀함을 느낀다. 고마움을 전한다. 글은 사람을 이어주는 메신저다. 좋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젊었을 땐 워낙 날 선 글을 많이 썼다. 토론에서 이겨야 했고 그 때문에 늘 긴장 상태였다. 당연히 내 일상에도 자주 균열이 갔다. 그즈음 내 글에 '절제와 균형'을 언급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마음의 평정은 말은 쉽지만 실제 유지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능력을 상실했을 때 글이 사나워졌다. 긴 시간의 수련과 다짐이 필요했다. 아래 글은 글쓰기 강의할 때 썼던 <좋은 글을 절제와 균형의 산물>의 일부이다.
좋은 글은 절제와 균형의 산물이다. 덜 말하고, 덜 주장했음에도 공감은 크게 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말이 어떻게 나 중심으로만 돌아갈까. 글로 영향을 끼치고 싶다면 타자의 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깊은 공감도 표해야 한다. 글쓰기는 상호작용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잔뜩 힘이 들어간 채로 말하고 주장하면, 격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오히려 그 격한 반응은 때로 독이 되어 나를 겨눈다. 일상을 담담하게 살아내는 것은 무기력해서가 아니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일상이 진부하다고 느끼는가. 큰 격동이 없이도 차분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형성해 온 내적 역량 때문이다.
원문 보기 https://brunch.co.kr/@webtutor/263
<평온한 인내>라는 글을 쓸 당시의 마음도 비슷했다. 청년기 이전까지 내 삶은 매우 가혹했다. 사춘기 땐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셋방에서 하루하루 먹을거리를 걱정하며 혼자 살았다. 세상의 여러 유혹이 있었지만 특유의 낙관으로 버텼다. 도시에 홀로 방치된 채 공부를 이어가던 나에게 불량서클에 속한 아이들이 어울리자며 접근했다. 도시로 전학 온 시골 학생들과 친구 하자는 아이들이 없으니 스스로 외로움을 달래고 소속감을 갖기 위해 시골 출신 전학생들끼리 뭉쳐있는 서클이었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음주와 흡연을 했고 이성교제를 했으며 툭하면 싸움질을 하였다. 이들이 나에게 접근했던 이유는 아지트가 필요해서였다. 가족 없이 홀로 사는 내 방은 그들의 아지트로 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들어오는 위협 때문에 늘 불안한 생활이었다. 나는 불운했지만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인이 된 후에 가끔씩 몰려오는 어린 시절에 대한 지독한 자기 연민이 더 힘들었다. 만약 그때 처지를 비관했다면 어땠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나쁜 상황을 견디는 힘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난 어린 시절, 청소년기, 청년기를 행복하게 보내지는 않았지만 유머를 잃지 않으려 했다. 가혹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합리성으로 무장하고 논리적 인과관계를 규명하려 노력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낙천성, 평온한 인내 같은 것들이었다. 막연하게 '잘 될 거야'가 아니라 '잘 되는 쪽'을 상상하고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원문 보기 https://brunch.co.kr/@webtutor/59
세상이 각박하다. 모두가 자신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실행한다. 마땅히 누려할 여백조차 스스로, 또 타의에 의해 허락하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선택한 '좁은 소통'은 사람의 생각을 가둔다. 상황에 대한 성급한 판단과 배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어떤 날'들, 써야 할 많은 '그저 그런 글'들이 때로 공중에 부유하거나 독자의 마음을 확 사로잡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선정적 제목의 신문기사를 따라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 중심이 잡히면 그저 그런 글 역시도 진지하고 담담하게 쓸 수 있다. 내가 '평온한 인내' 혹은 '절제와 균형'을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